미국여행(2005. 8. 27 - 9. 5)
비행기 삯을 아끼기 위해 일본을 거처 태평양을 건너 미니아폴리스에서 입국 수속을 마치고 다시 덴버행 비행기를 타고 가야했으며 덴버 국제공항에서 다시 승용차로 이동하여 목적지인 오로라시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한국인이었기 때문에(그들에게는 후진국) 일본에서 소지품 검사를 받아야 했고 미니아폴리스 공항에서는 두 시간이 넘도록 아무런 이유 없이 잡혀 있어야 했다. 일본인들은 미국인처럼 별다른 검색없이 통과하는 것을 보고 국력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미니아폴리스 공항에서 잡혀있는 동안 가죽점퍼를 입은 흑인도 함께 잡혀 있었는데 그 더운 날씨에도 저렇게 긴 가죽점퍼를 입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그랜드 캐년
라스베가스에서 차로 약 2시간 정도를 달리면 그랜드 캐년에 도착한다. 그랜드 캐년은 4억년이 넘는 세월동안 콜로라도 강의 급류가 만들어낸 대협곡으로 446Km에 걸쳐 펼쳐져 있고, 해발고도가 2,133m에 이른다. 미국 애리조나주에 자리잡고 있는 국립공원으로 미대륙의 광활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세계적 명성의 관광지이다. 빙하기에 시작해 현재에 이르는 무구한 세월 속에서 형성된 그랜드캐년은 장구한 지구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로키산맥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이곳에 이르게 되며 애리조나주의 북부, 동에서 서로 흐르는 콜로라도강의 총 길이 347Km 중 170Km가 그랜드캐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1919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자연을 자연 그대로 관리한다'라는 취지 아래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오는 관광객의 수는 미국 국립공원 중에서도 가장 많다고 한다. 이 지역은 인디언 보호구역으로서 다섯 부족의 인디언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도 유명하다고 하는데 하늘 위에서 보니 군데군데 인디언들의 주거지로 보이는 곳이 있었으나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곳으로 보였다. 헬기를 이용해 관광을 했는데 오후의 기온이 섭씨 45도를 넘어선 관계로 착륙하지 못하고 한 바퀴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덕분에 착륙하지 못한데 대한 비용을 환불 받을 수 있었다.
눈으로 보이는 대협곡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보려 했으나 카메라와 눈의 감각차이 때문이었는지 마음먹은대로 화상을 잡아들이지 못했다. 헬기 옆 좌석에 앉은 덕택으로 계기판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는데 계기판보다는 여자 조종사의 다리가 더 매력적으로 나왔다.
특이한 것은 어느 지역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듯한 사막에 마치 컴퓨터 속의 각종 카드(그래픽카드 등)를 평면으로 나열해 놓은 듯 네모 반듯하게 자로 댄 것처럼 정리가 되어있었는데 마치 바둑판을 보는 것 같았다. 지역 간의 이동을 대부분 비행기로 하다 보니 어느 도시를 방문하든지 첫인상은 반듯하게 구획 정리된 모습과 시원하게 뚫린 도로였다.
관광과 도박의 도시 라스베가스
미국 네바다주의 남동부 사막 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도시로 그야말로 휘황찬란 그 자체였다. 공항에서 내려 출입문을 나서는 순간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든다. 마치 불 속으로 들어간 것 같은 기분. 온도가 높은데도 습도가 없어서 그런지 땀이 그렇게 나지 않고 덥다는 생각보다 신기하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호텔마다 카지노장이 마련되어 있고 카지노장의 천장은 밤하늘처럼 장식되어 있었는데 밤인지 낮인지 분간할 수 없고 시끌벅적했다. 각 호텔마다 쇼를 보여주고 있는데 벨라지오 호텔 앞에서 벌이는 음악 분수쇼는 그 중 하나이며 가스폭발로 물을 쏘아 올리는데 20미터 이상 쏘아 올리며 음악에 따라 물줄기를 여러 가지 형태로 변화시켜 장관을 이루었다. 카지노에 들어가지 않고 그 분수쇼를 10번 정도 보았던 것 같다. 우리가 묵은 "뉴욕뉴욕호텔"에는 자유의 여신상을 세워 놓았고, 각각 호텔마다 파리의 에펠탑이나 물의 도시 베네치아를 재현하는 등 호텔마다 각각의 특색을 살리고 있었다.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와 "오션스 일레븐"은 라스베가스를 무대로 제작되었는데 오션스 일레븐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분수쇼가 바로 벨라지오 호텔 앞 호수의 분수쇼이다.
희안한 것은 거리마다 삐끼같은 족속들이 여자 사진이 들어있는 명함을 "탁탁" 소리가 나게 치면서 행인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불법이라고 하지만 단속하는 경찰은 보이지 않았다. 어쨌거나 사막 한가운데 이러한 도시를 건립했다는 자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카지노 등 도박 일색인 도시가 나의 성격과 맞지 않는 터라 별 흥미는 느끼지 못했다.
마침 여행기간 중에 아내의 생일이 끼어있어 조촐한 생일파티를 하게 되었는데 날짜 상으로 한국과는 하루정도가 차이가 나기 때문에 제대로 된 날인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조촐한 촛불 의식을 치르게 되었고 그날은 한국인이 경영하는 횟집에서 한국 소주로 하루를 마감했다.
에스테스 park & 로키마운틴 국립공원
덴버에서 북서쪽으로 1시간 정도 가면 로키산 국립공원 입구인 에스테스 park에 도착한다. 중부지역 전체가 해발이 높은 지역이기 때문이어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습도가 없고 하늘은 맑고 공기도 신선하지만 햇빛은 강열했다. 썬그라스를 껴야하는 이유를 몸소 느낀 셈이다. 하늘은 우리나라에서 맑은 한겨울에나 볼 수 있는 눈부시도록 푸른색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 했다.
동물보호와 관련하여 야생동물에게 먹이도 함부로 주지 못하도록 되어 있고 만약 허가된 먹이가 아닌 먹이를 주다가 걸리면 벌금을 내야 한다고 한다. 눈이 많이 오기 때문에 동물들이 스스로 먹이를 찾을 수 있는 본능을 빼앗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다람쥐나 새들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사람 주위를 맴돈다. 이곳을 지나면 로키산 국립공원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
미국 중부지역인 콜로라도주의 덴버 지역이 한라산 높이인 해발 2,000미터 정도이고, 이곳 해발은 보통 3,500미터에서 4,000미터에 가깝다. 자연히 경사진 곳을 오르면 숨이 가빠온다. 고산증의 일종인가 보다.
산의 형세가 들어가기 전 멀리서 보면 산으로 보이는데 막상 산으로 들어가 보면 잘 닦여진 신작로를 가는 기분이다. 도로 주위가 평야지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넓기 때문에 산이 아닌 것 같은데 멀리 다른 쪽 산봉우리를 보면 우리가 서 있는 곳보다 낮은 산인데도 하얗게 반짝이는 만년설을 볼 수 있다. 그 만년설을 보고 산이 붕괴되기 때문에 콘크리트를 부어 산의 붕괴를 막는다고 하면서 옥신각신했었다.
신들의 정원
바위의 색깔이 붉은색을 이루고 있으며 쭈삣쭈삣 솟아있는 모습이 신들의 형상처럼 신비롭기까지 하다. 멀리서 보면 잘 가꾸어진 정원처럼 한가롭게 보인다. 신들의 정원을 벗어나 도로를 달리는데 도로가에 우편함이 무리를 지어 즐비하게 놓여있다. 대부분 산 중턱에 집이 있기 때문에 우체부가 일일이 배달하지 못하고 길가에 설치되어 있는 우편함에 우편물을 넣고 간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다리(Royal Gorge Bridge)
1907년에 지어졌다는 다리인데 계곡과 계곡을 연결하여 만들었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계곡물로부터 약 320여 미터 높이에 지어졌으며 길이 380여 미터, 너비 약 5.5 미터로 자동차도 다닐 수 있으며 상판은 통나무판으로 제작되어있다. 통나무판 사이로 아래의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데 뛰어내리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힐 것 같은 심정이다. 실제로 이곳에서 뛰어내린 사람도 있다고 하며 여름에는 번지점프를 위한 시설도 설치하여 관광객을 끌고 있다고 한다. 계곡을 따라 레일을 설치해 놓았는데 계곡 아래를 돌아서 계곡의 전체적인 모습을 구경할 수 있으며, 다리 옆으로 케이블카를 설치하여 케이블카 안에서 다리 전체 모습을 보면서 지나갈 수 있다.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 - 옐로스톤(Yellowstone) 국립공원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밤을 이용하여 거의 12시간을 달려 새벽에야 와이오밍주 끝에 걸린 옐로스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영화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곳 바로 그 풍경이었다. 군데군데 설치된 경고 안내판은 곰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하라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었고 12시간 만에 여름에서 겨울로 접어든 상태라 체감온도는 더욱 심했다. 가지고 간 옷을 겹겹이 껴입어도 추울 정도였다.
신이 미국 땅에 내려준 최고의 선물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장엄하고 아름다운 옐로스톤 국립공원. 와이오밍주(州) 북서부와 몬태나주, 아이다호주에 걸쳐 있으며, 총 면적이 약 9,000 ㎢에 달한다.
1800년대 초 탐험가들에 의해 알려진 후, 1872년 당시 미국의 대통령인 그랜트가 ‘옐로스톤 국립공원 설치를 위한 법률’을 제정하면서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이 되었고, 1978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록되었다.
옐로스톤에는 뜨거운 지하수를 내뿜는 간헐온천을 비롯해 약 1만여 개의 온천이 있으며, 그중에서 올드페이스풀 간헐천과 매머드 온천이 특히 유명하다. 4만 리터의 온천수가 1시간 간격으로 4분씩 40∼50m 높이까지 솟아오르는 올드페이스풀 간헐천은 발견 당시부터 거의 일정한 시간, 간격, 높이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막 도착했을 때 마침 온천수가 솟은 후라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으므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옐로스톤이 아름다운 또 하나의 이유는 자연 속에 공존하는 야생동물 때문이다. 수렵이 금지되어 있어 곰, 엘크(큰사슴), 들소 등 다양한 야생동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편 옐로스톤은 지난 1988년 발생한 대형 산불을 통해 생태계 복원의 신비를 증명해 보였다. 1988년 6월, 번개 때문에 발생한 대형 산불은 강풍을 타고 번져 공원 면적의 3분의 1을 태워버렸다. 산불을 잡기 위해 엄청난 인력과 장비가 동원되었지만 정작 불길을 잡은 것은 그해 9월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눈이었다.
관광협회는 경관이 좋지 않다며 인공조림을 간청했지만 미 정부는 ‘관심속의 무관심이 생태계 복원의 지름길’이라며 그대로 놔두기로 결정했다.
그 후 옐로스톤은 멋진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키 큰 나무들이 없어지자 햇빛을 듬뿍 받은 풀들이 무성하게 자랐고 목초지에는 분홍바늘꽃, 양지꽃, 제비꽃이 화려하게 피어났다. 초식동물의 개체수가 증가하고 더불어 육식동물의 수가 늘었으며, 옐로스톤의 생태계는 산불 이전보다 훨씬 풍부해졌지만 아직도 군데군데 산불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특이한 것은 우리로 치면 산꼭대기인데도 거대한 호수가 곳곳에 있었고 차로 한 시간을 달려도 끝나지 않는 거대한 호수는 바다처럼 파도가 치고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 들소들이 도로를 가로질러 가는 광경을 볼 수 있었는데 도로에 차들이 지나가는 것에 상관하지 않고 어미와 새끼들이 한데 어울려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다. 그에 맞추어 차들도 들소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면서 경적을 울리지 않고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의 민주주의와 이상을 상징하는 러시모어 산
마운트 러시모어에 새겨진 대통령 얼굴은 조지 워싱턴(초대), 토머스 제퍼슨(3대), 에이브러햄 링컨(16), 시어도어 루스벨트(26대) 등 4명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만들고 융성시킨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1927년에 시작해 완공(1941년)까지 17년이 걸렸다. 미국인들은 이곳을 ‘민주주의 전당’으로 부른다. 미국 역사의 자부심과 긍지의 상징이다.
전망대 아래 박물관이 있다. 러시모어 암벽 인물상의 탄생 과정과 의미를 담고 있다. ‘실현 불가능한 꿈의 결실’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바위 얼굴을 조각한 거츤 보글럼(Gutzon Borglum)에 대한 설명문이었다. 러시모어는 보글럼(1867∼1941)의 삶 자체였다.
처음에는 워싱턴, 링컨, 제퍼슨 세 명만 새기려고 했다. 공간이 하나 남아 있었다. 네 번째 인물 선택은 논란이 많았다. 시어도어 루스벨트(재임 1900∼1907)는 그 시점에서 역사적 평가가 끝나지 않았지만 파나마 운하 건설, 혁신 시대를 이끌면서 노동자의 권익을 향상시켰다는 점이 최종 선정 배경이었다.
1927년 8월 착공식에서 보글럼은 이렇게 자신의 야망을 표시했다.
“미국의 역사가 끝없는 능선을 따라 영구히 펼쳐질 곳이다. 위대한 지도자들의 말과 얼굴을 이곳의 하늘 가까이 높이 새기자. 그 기록은 ‘바람과 비’만이 닳게 할 뿐 영원할 것이다.”
보글럼은 1941년 3월 숨졌으며 최종 완성을 하지 못했다. 아들 링컨 보글럼이 그 작업을 계승했다. 그는 12세 때 아버지를 따라 러시모어에 온 이래 충실한 조수 역할을 했다. 1941년 10월, 아들은 산에서 내려왔다. 완공된 것이었다. 2차대전의 소용돌이는 대역사의 마무리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공식 제막식은 50년 뒤에 열렸다. 1991년 6월 조지 부시 대통령(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이 주재했다. 보글럼의 아들(1986년 숨짐)도 제막식을 보지 못했다.
미국의 국립공원이나 소규모 공원 할 것 없이 화장실에는 청결한 화장지가 준비되어 있었으며 화장실 자체가 깨끗했다는 것이다. 대부분 수세식이지만 도시와 많이 떨어진 공원이나 산에는 수세식이 아니었음에도 향수를 사용하고 있었고 화장실 밑바닥은 톱밥 같은 재료를 섞어 자연 발효할 수 있도록 조치해 냄새를 중화시켜 불쾌한 감정이 생기지 않도록 하였다.
또한 어느 도시 어디를 가나 1회용품이 풍족했으며, 가정에서도 1회용품의 사용량은 많았고 분리수거의 개념이 없었으며 구역별 쓰레기통이 설치된 곳에는 들어가기만 하면 장롱도 버릴 정도였는데 그만큼 쓰레기 버리는 것에 대하여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쓰레기 수거는 청소차에 달린 기계적 장치를 사용하여 사람이 내리지 않고 자동으로 처리되었다.
언제 어디서나 큰 컵 같은 용기에 담긴 음식물을 먹고 있는 모습을 접할 수 있고 먹는 양도 거의 우리의 두 배 가량 되었다. 식당에서 음식을 시키면 먼저 물을 주는데 한국 음식점에서 주는 물잔의 세 배는 되었다.
집들은 거의 단층이거나 2층이었고 새로운 도시가 형성된 곳은 3층으로 건축된 곳도 많았다. 예외적으로 관공서는 10층 이상의 빌딩도 많았고 건축물 주변은 담장이 없었으며 잔디와 나무로 조경을 하여 도시 전체가 푸른 공원을 연상시키게 했다.
평소에는 도로가 밀리는 현상은 없었으나 출퇴근 시간에는 밀리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평상시에는 고속도로나 국도 어디를 가든지 도로비를 내는 곳이 없었고 자연히 도로비 때문에 길이 막히는 곳은 없었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주변에는 푸른 평지가 펼쳐져 있고 소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다. 도로상에는 운이 좋으면 거의 10분 이상을 달려도 차 한 대 볼 수 없을 정도다. 여름이었기 때문인지 캠핑카가 가끔씩 보이고 GMC 픽업 트럭은 힘이 좋은지 자기보다 세 배 이상 되는 컨테이너 박스 같은 것을 달고 다닌다. 그 안에 숙박을 할 수 있는 시설이 되어있다고 한다. 캠핑카도 오토매틱 차량이며 연료는 휘발유를 사용하는데 그곳에서는 휘발유를 "개스"라고 한다. 처음에 그곳 사람들에게서 "이 곳 차는 모두 개스를 사용한다"는 말을 듣고는 휘발유를 사용하지 않고 LPG 가스를 사용하는 줄 알았다.
여행 일정 동안 뉴올리언즈에 허리케인 카타리나가 상륙하여 물의 도시가 되었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중부지방이었던 덴버에는 하늘만 맑고 딴나라 이야기로만 들렸지만 텔레비전 뉴스에는 온통 카타리나 이야기로 장식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귀국 일자가 다가오는데 일본 쪽에 태풍이 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생긴 것은 먼저 미국에서 비행기가 뜨지 않으면 어떡하느냐이고 일본에 도착했는데 착륙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느냐였다. 하지만 일본행 비행기는 무사히 뜨게 되었고 일본 나리타 공항에의 착륙도 순조로웠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습한 기운이 벌레처럼 몸에 달라붙는 것이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문제가 생긴 것은 태풍으로 인하여 일본 - 부산 간의 비행기가 뜨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계획에 없던 일본에서의 하룻밤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는 손짓 발짓으로 어떻게든 말이 통하는 것 같았는데 정작 한국과 가까운 일본 사람들하고는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비행사에서 정해준 호텔로 이동하여 하루를 더 체류하게 되었는데 달러를 다 써 버린 상태에서 원화를 사용하지 못하는 일본에서의 저녁식사가 문제였다. 지갑과 주머니에 있는 달러를 긁어모아보니 겨우 저녁을 떼울 만큼 되었다. 메뉴 중에서 "미소라면"을 시켰는데 짜서 먹지 못할 정도였다. 면만 건져 먹고는 식당을 나와 버렸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미소라면"은 우리나라식으로 치면 된장국물에 면을 넣어 만든 라면이었다.
다음날 예정대로 비행기에 탑승하여 대한민국으로 향했다. 부산공항에서 입국수속을 밟는데 여권만 보여주고 바로 통과했다. 왠지 서운한 느낌마저 드는 건 어찌된 일인지? 신발까지 벗고 검사를 받았던 외국의 공항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이 도망(?)가지 않고 다시 대한민국의 땅으로 돌아오는 것은 환영의 뜻인지 아니면 갈 곳 없어 돌아왔으니 외면하는 것인지. 다시 돌아온 대한민국은 여전히 더웠다. 하지만 따끈한 햇볕과 적당한 습기는 푸석푸석했던 피부를 다시 윤이 나게 했다. 제자리로 돌아왔다고나 할까!
미국인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리숙하고 멍청하게 보였는데 - 내 눈에만 그렇게 보였을 것인지 모르지만 - 덩치가 큰 탓인지 행동이 느리고 어슬렁거리는 듯 보였다. 과연 그들이 세계의 전쟁을 지배하는 민족인가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들은 그들의 생활에만 열중하고 정치는 정치인들만 하는 것인가. 내면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200년밖에 되지 않는 그들만의 역사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최고로 가꾸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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