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풍경876 봄 봄 잎사귀 하나 남기지 않고마른 가지로만 견디는 계절아무 희망도 없는 듯갈색 가지에는 바람도 머물지 않는다매년 다가오는 나목의 시간계절이 지나가는 동안꽃눈을 품고 침묵한다대책 없는 희망이라도가지에 걸어두고무작정 견뎌야 하는 시간봄은 멀지 않았다고봄은 기어이 오고야 말 것이라고 2025. 2. 6. 얼굴 얼굴 복사기에 얼굴을 대고 버튼을 눌렀더니 놀랍게도 주름 가득한 얼굴이 시커멓게 복사되었다 보이지 않던 주름이 험상궂은 무늬를 이루고 있었다 복사한 얼굴을 복사할 때마다 얼굴은 더욱 일그러져갔다 과거에 복사했던 얼굴을 지금 만난 사람에게 복사해 주었다 복사를 할 때마다 일그러져가는 얼굴은 많은 세월이 지난 후에 나도 알아볼 수 없는 전혀 다른 얼굴이 되어 버렸다 매일 늙어가는 얼굴 매일 늙어가는 생각 가면을 쓰고 있으면 늙은 생각을 감출 수 있을까 젊은 생각 뒤에 얼굴을 감추고 내가 아닌 듯 숨죽이며 걸어가는 세월 2025. 1. 2. 물결 물결 저 아름다운 물결을 보라고여있는 물을 밀어내고당당하게 확고하게 세상을 향해 소리치는저 거센 물결을 보라화염병 돌멩이와 촛불로 밝혔던 세상을 넘어응원봉으로 세상의 희망을 응원하는저 참신함을 보라매캐한 연기에 흩어지던 청춘은 전설이 되고맑은 목소리와 응원봉으로 밝힌 불꽃은흩어지지 않는다청춘의 끓는 피로 밝힌 물결은얼마나 아름다운가 2024. 12. 31. 눈물 눈물 아무리 걸음이 힘들어도아무리 더위를 참을 수 없어도아무리 추위를 견디지 못해도밤과 낮은 소리치지 않는다 바람은 부르지 않아도 왔다가 가고소리 없이 눈도 내리는데눈을 감았다 뜨고꾸역꾸역 끼니를 챙기는 것이 부끄러울 때가 있다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영문도 모르고 비가 내리고 아직도 울지 않는 자들은끝내 눈물을 보이지 않고살아서 반성하지 않는 자는죽어서도 반성하지 않는다 죽은 자 앞에서 눈물 흘리는 사람들눈물에서는 돈 냄새가 풍긴다 2024. 12. 23. 비 오는 날 비 오는 날비 오는 날은 먼지가 보이지 않아서 청소하기 좋지그동안 방으로 거실로 화장실로 다니면서 눈에 거슬렸던 것들을 떠올리며 치우고 버리고 보이지 않는 곳으로 위치 이동을 한다청소 시간은 허리에 통증이 느껴질 때까지마당에는 아직도 비 내리는 소리 들리고무료함을 메워 줄 피아노곡을 찾아 몇 초간 듣다가 다른 곡을 또 몇 초간 듣다가 그냥 꺼 버린다비 오는 날에는 막걸리라는 술꾼들의 합리화를 바탕으로 부침개를 구워 막걸리 한잔 걸친다 부침개 익는 소리는 비 오는 소리와 같다고 생각해야 한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니까비 오는 날 부침개를 구우면 소리도 냄새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먹을 수 있다문득 부침개를 구우며 어질러 놓은 부엌을 본다 청소하기 전보다 더 어지럽다얼큰해진 몸은 빗소리를 .. 2024. 11. 26. 바위 바위 화사했던 벚꽃 머리카락 스치던 날도 검푸르게 왕성했던 나뭇잎도 폭설로 뒤덮인 세상 속에서 속절없이 스러져버렸다 숨을 가다듬을 시간도 없고 어디로 가야 할 지도 몰라 방향을 잃어버린 채 서 있었다 방향을 잃어버린 말이 비틀거리지 않도록 말이 되지 못하는 말을 말이 되게 하라고 부딪치다 깨어져도 말에는 말로 부딪쳐 본다 동서남북 말세례 퍼부어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 저 꿋꿋함 계란으로 바위를 쳐도 요동칠법한데 원망도 부탁도 협박도 통하지 않는 바위처럼 차가운 고집 된서리에 모두 얼어붙을 것 같아도 어느 때보다 붉게 물든 단풍잎 구름마저 얼어붙은 하늘을 보며 여리고 여린 미소를 띄운다 2024. 11. 24. 이전 1 2 3 4 ··· 14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