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 이야기

천천히 가면서 볼 수 있는 것

by 1004들꽃 2008. 5. 28.
천천히 가면서 볼 수 있는 것

생활 속에서 편안함에 젖어있는 동안은 그 실체의 중요성과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실체가 없어졌거나 변형되었을 때는 엄청난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옥상에서 집안의 수도꼭지로 내려오는 물의 압력을 높이기 위한 모터가 고장 났을 때 집안의 분위기가 확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든 것이 천천히 움직인다. 양치질을 할 때도 컵에 물을 받을 때까지의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설거지를 할 때도 그릇에 묻은 거품을 씻어내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물의 압력이 약하여 샤워기로는 도저히 머리를 감지 못하고 물을 양동이에 받아서 해결해야 한다. 생활 속에서 조그만 변화가 이토록 생활의 리듬을 바꾸어 놓는다.
요즈음 느림의 미학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정보를 접한 적이 있다. 이미 휴대전화로부터의 구속에서 해방되어 나름대로의 생활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그런 사람들이 약속날짜나 시간 등을 꼼꼼히 기억하게 된다는 점에서 일정관리에 보다 적극적인지도 모르겠다. 휴대전화에 의지하다보면 약속을 잊고 있다가 전화가 오면 수동적으로 움직이거나 시간이나 장소를 정확하게 모르는 부분에 대하여 언제든지 전화를 하여 물어 볼 수 있으니 상대적으로 일정관리에 소홀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의사소통이라는 것이 꼭 상대방의 필요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연결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생은 자신의 것이지 남의 것이 아니니까. 때문에 사전에 정해지지 않은 약속은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할 뿐이다.
얼마 전 미국인들의 행동양식을 체험할 기회가 있었다. 택시를 기다리는 행렬이 여섯 줄로 S자 모양을 그리며 돌아가고 있었지만 모두가 빨리 타야한다는 생각을 숨기고 있는지 서두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 하나하나가 기다리는데 익숙해 있는 것 같았다. 사실은 질서를 지키는 모습의 이면에 지키지 않으면 그에 상응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기다릴 수밖에 없도록 체질이 변화된 것이라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기도 했지만.
어쨌든 택시기사는 하나같이 내려서 손님의 짐 싣는 것을 도와주었고 그러한 행동에서도 서두르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그 느린 모습들이 한편으로는 답답하기까지 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 200년 남짓 짧은 역사를 가지고 어떻게 오늘과 같은 문명을 이루었는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느리고 기다리는데 익숙해져 있는 민족. 곡식이 여물기도 전에 베어버리는 급한 성격보다는 한 가지를 하더라도 완벽하게 마무리 지어 가는 것이 보다 빨리 가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반면에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한국인의 특성을 가장 잘 이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일본이 100년 만에 이루어낸 자동차 산업을 한국은 30년 만에 이루어 냈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다. 무엇이든 장단점이 있겠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자신에게 맞도록 행동하는 것이 최선이 아닌가.
정보통신의 발달로 좋아진 점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참을성을 빼앗은 것 같다. 우리나라에 휴대전화가 이렇게 발달하게 된 것은 한국사람 특유의 “빨리빨리”가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시원스럽게 나오지 않는 수돗물을 보며 참을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천천히 가면서 볼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다고 본다. 우리가 너무 빨리 와 버리지는 않았는지 그러면서 꼭 가져와야 할 것들을 두고 와 버리지는 않았는지 천천히 왔을 때 다른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여행(2005. 8. 27 - 9. 5)  (0) 2008.05.28
의령문인협회 2007 문학기행  (0) 2008.05.28
꽃에 대한 생각  (0) 2008.05.28
행복에 대하여  (0) 2008.05.28
약속에 대하여  (0) 2008.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