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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행복에 대하여

by 1004들꽃 2008. 5. 28.

 행복에 대하여

 

살아가는 일이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가끔씩 가져본다. 아침에 일어나 직장으로 향하고, 일을 마친 후 퇴근을 하여 모임을 갖든지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는 반복되는 일상의 연속이 보통 사람들의 겉모습이다. 겉모습이 전부인지 아니면 각자의 내면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광범위한 생각이나 계획, 또는 끊임없는 사색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인지.

 

언젠가 시를 쓴다는 것은 끊임없는 사유에의 접근방식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생각과 생각을 거듭하여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리하여 가장 행복한 길로 접어들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방법으로서의 시에 대한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행복이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정의되어야할지 알지를 못한다.

 

일전에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이라는 제목으로 아침 편지에 담겨 온 내용이 떠오른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혼자 지내본 적이 거의 없었던 한 주부에 대한 이야기다. 이박 삼일 일정으로 남편과 아이 모두 시골에 벌초를 하러 떠났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자유롭고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무력감과 외로움이 몰려들었고, 결국 아이로부터 울먹이는 전화를 받는 순간 머릿속에 확 와 닿는 그 무엇. 자유라는 것은 아무렇게나 붙일 수 있는 단어가 아니라 삶 속에서 책임과 맡은 바 역할에 충실했을 때 그 속에 숨어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진정한 자유란 몸이 아니고 마음, 곧 정신의 자유로움이 참 의미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결국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이 가장 행복한 순간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직장과 가정간의 이동거리가 늘어나는 실정이다 보니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생각만큼 그렇게 많지는 않다. 그만큼 아이들에게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많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동안 아이들은 아무런 통제나 간섭 없는 무관심 속에서 각자의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나친 관심으로 아이들을 구속하는 것도 부담을 주겠지만 사랑과 진실이 담긴 관심은 자녀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의 척도는 개인별로 각각 다른 것이어서 도시에서 많은 사람들 속에서 많은 문화적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골의 맑은 공기와 청정한 자연 속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것이 더 행복하다고 할 수는 없다.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현대사회는 개인간의 지나친 경쟁을 유발시켜 인간성을 잃어가도록 만들고 있다. 남들보다 인정받고 더 빨리 승진하는 등 겉치레만 중요시하면서 잃어버린 것은 얼마나 많을까.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둔 부모들은 이야기 끝에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내곤 한다. 요즈음 성적이 어떠냐? 대학은 어디로 보낼 건가? 어디에 가면 족집게 과외도사가 있다는 등 오로지 성적에만 관심이 있다. 겉으로는 독서를 많이 해야 된다, 공부보다는 행복이 먼저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결국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시골보다는 도시에 나가야 된다는 결론에 이르는데, 과연 그 아이는 코피 터져가며 공부해서 대학엘 가긴 하지만 대학 4년 동안 취업준비로 허송세월을 보내고 만다. 대학을 졸업한 후 운 좋게 직장이라도 잡게 되면 그것도 잠시, 경쟁에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하여 상사 눈치 보며 세월을 보내는 비참한 생을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은 자아가 생기기도 전에 점수 전쟁에 나서게 되고 부모는 아이들의 행복이라는 가면을 쓰고 점수에만 집착을 한다. 누구를 위해 점수를 올려야 하는지 모르는 아이들은 그 자체가 인생인 것으로 착각을 하며 살아가게 된다. 부모들은 모든 것을 이루고 나서 보상 받으면 될 것이 아닌가하고 이야기할지 모르겠지만 그 속에 내 자식이 무엇이 되었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한 마음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은 것인지? 학교교육이 문제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을 용기는 없다. 교육을 국가의 백년지대계라고 하지만 교육정책이 얼마나 자주 바뀌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바뀌는 정책에 따라서 우왕좌왕하는 아이들은 마치 무리지어 날아다니는 겨울 철새들처럼 쓸쓸해 보인다.

 

휴일이 되면 산을 오르며 땀을 흘리고 가끔씩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땀을 식히면서 수채화처럼 펼쳐진 산의 풍경에 취해 보기도 한다. 큰 산도 있고 작은 산도 있지만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풍기는 맛이 다르다. 산을 오르려 할 때 보통사람이라면 아무리 빨리 오르고 싶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남보다 빨리 오르기 위해 급히 가다보면 절반도 오르지 못해 포기해야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살아가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은 아닐지?

 

정상에 올라보면 주변으로 끝없이 펼쳐져 산과 산을 이어주는 산맥을 볼 수 있다. 정상에 올랐으니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는 생각보다는 산맥으로 둘러싸인 산의 품에 안겼다는 생각이 더 짙게 다가온다. 오르막과 내리막, 나무와 흙과 바위, 그 모든 것들과 함께 산의 가장 깊고 따뜻한 품에 안긴 것이다. 품을 벗어나 산을 내려와도 산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산을 사랑하는 방법은 산을 이루고 있는 나무와 바위와 흙과 함께 산의 깊고 따뜻한 품을 느끼며 산과 어울리는 것이다. 산에서 굴러 떨어진 돌멩이는 이미 산이 아니다. 이름 없는 돌멩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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