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대한 생각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면 사회활동 범위도 넓어지고 그에 따라 아는 사람도 많아지게 마련이다. 사십대 중반을 넘어선 요즈음 사흘이 멀다 하고 결혼식, 장례식, 동창회, 체육행사, 개업식 등 많은 행사들을 접하게 된다. 무심히 지나가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심각하게 생각하면 또 심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여러 행사장에 진열되는 화환이나 화분이 그것이다. 물론 이러한 용도를 위해서 키워지는 꽃이라고는 하나 꽃이 너무 혹사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각자의 지위나 이름을 쓴 리본으로 단장한 화환이나 화분은 잠시 넥타이를 맨 신사처럼 서 있다가 강제로 넥타이가 풀려지고 어디론가 자취를 감춘다. 그리고 그 리본도 명부에 누구라는 이름이 적히고 나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고 만다.
특히 상가(喪家)에 진열되는 삼단화환은 더욱 기구한 운명을 경험한다. 리본만 남겨둔 채 어디론가 사라지는가 하면 장례행렬을 따라갔다가 불에 태워지기도 한다. 누군가의 손에 의해 씨앗에서부터 몇 번의 옮겨심기, 그리고 비료를 섭취하고 꽃이 피기까지 정성껏 가꾸어진 대가가 이토록 허무한 결말을 맞이하기 위해서일뿐인지?
어느 스님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잘 가꾸어진 잔디밭을 보고 참 아름답다고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토록 푸르고 아름답게 가꾸어지기 위하여 잔디를 제외한 다른 풀들은 얼마나 뽑혀 나갔을까. 어떻게든 세상에 나와 자기만의 고유한 자태를 뽐내고 그 풀만이 피울 수 있는 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까. 이 모든 것이 무시당하고 무참하게 뽑혀나간 풀들을 생각하니 잔디밭이라는 것 자체가 공해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 비하면 우리가 일상에서 소위 눈도장 찍기 위하여 무참하게 버려지는 꽃들의 생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더욱 우스운 것은 리본에 씌어진 사회적 지위의 높고 낮음에 따라 화환의 위치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위치에 서 있던 화환은 장지까지 따라가서 리본과 함께 불에 태워진다.
방에서 화분 한 개 정도를 가꾸는 것은 관상용으로 뿐만 아니라 방안의 습도를 유지하기도 하는 기능이 있다. 화분이 있으면 아무래도 행동 자체가 조심스러워지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족이나 친구, 동료들 간에 어느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꽃의 종류에 관계없이 한 송이 정도로 마음을 전달하는 것은 너무 허전할 뿐인가?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어느 계절 어느 골짜기에 가면 무슨 꽃이 피고 무슨 열매가 연다는 것을 알면 그 시기에 맞춰 그 장소에 가서 보면 되는 것 아닌가. 혼자 즐기기 위해 꽃을 꺾어와 화병에 꽂아 둔 꽃은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시들어 버린다. 단 며칠간의 즐거움을 위해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 꽃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말았다. 무심코 저지른 일이라지만 극도의 이기주의가 아닐 수 없다.
하천 주변에 무더기로 핀 유채꽃이나 인위적으로 조성된 국화꽃 단지나 장미를 소재로 한 축제의 장 등 자연과 함께하는 어울리는 꽃물결의 광경은 얼마나 아름답고 황홀한가. 하지만 꽃꽂이나 어느 행사장에 장식되기 위하여 무참하게 잘려진 꽃들의 모습은 왠지 처량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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