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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무작정 나들이

by 1004들꽃 2010. 12. 3.

2010년 11월의 마지막날

연가를 내고 하루를 놀기로 했다. 오후 두 시가 조금 넘어서 집을 빠져나와 의령을 벗어나기로 했다. 가다보니 순천까지 갔다. 내친 김에 낙안읍성으로 갔다.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오후 4시 50분 정도에 도착했다. 읍성 안의 초가집은 민박을 주로 하는 것 같았고 주변의 주막들은 거의 문을 닫았다. 민박과 함께 살림집으로 활용하는 집이 대부분이었다. 촌에서 저녁을 짓기 위해 피우던 불냄새가 동네 전체에 자욱하게 번졌다.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렸고 노인과 할머니가 구들방에 불을 땔 것인지 마당에서 썩은 대나무와 나뭇가지를 꺾고 있었다.

 

사람들이 없는 마을은 그저 시골의 초가집 군락에 지나지 않았다. 가끔씩 성곽 위에 올라가 초가마을 전체를 카메라에 담기 위하여 오르락내리락하는 사진작가 몇몇이 보일 뿐이었다.

 

ㄱ자로 동쪽의 해를 잘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된 기와집은 그 옛날 동헌을 관리하던 관리들이 살았을 것이었다. 요즈음의 집들이 그저 밋밋하게 일자로 짓거나 옥상을 활용하기 위하여 지붕을 편편하게 만드는 집과는 차원이 다른 집이다. 북쪽의 창을 열면 남북으로 바람이 통하게 되어 있어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창을 막아 바람을 통제할 뿐만 아니라 남쪽에서 비스듬히 누워서 마루로 깊게 찔러 들어오는 햇살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구조다. 요즈음의 주택도 저러한 방식으로 짓는다면 우리 민족의 가옥 풍속을 이어나가는 일이 될 것이다.

 

성곽은 마을을 에워싸고 있었고 성곽 위에 올라가 빙 둘러보면 마을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성의 남문 외곽에도 초가집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성 안에서 살 수 없는 사람들이었을까? 성 밖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성 안의 사람들과는 차별되었을 것이다. 농민이나 천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본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서울 사는 사람들과 지방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지방에서는 지방의 소재지와 외곽에 사는 사람들의 차이와 비슷할 것이라고 하면 비유에 맞을까? 현대사회는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지만 땅값이 비싼 중심부에 살고있는 사람들과 그 반대인 사람들의 선은 어느 정도 드러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둑어둑해진 읍성 마을을 벗어나니 벌써 인가에는 불이 켜졌다. 자동차 시동을 걸자 전조등이 환하게 켜졌다. 캄캄한 밤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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