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플라스의 마녀 / 히가시노 게이고
많은 사람들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고 나면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작품을 검색하게 될 것 같다. 그 중에서 마녀라는 글자가 눈에 띄게 될 것이고 별다른 생각 없이 곧 그 책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마녀라는 글자 속에는 뭔가 일반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들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마도카는 외갓집에 놀러갔다가 엄마와 함께 외할아버지를 모시러 가던 중 갑자기 들이닥친 토네이도에 휩쓸려 한순간에 엄마를 잃게 된다. 뇌의학계의 권위자인 아버지 우하라 박사는 같이 외갓집에 가기로 했으나 한 소년의 수술 일정이 잡혀 병원에 남게 되고 토네이도를 피하게 된다.
8년이 지난 뒤 마도카의 경호를 맡게 된 전직 경찰 다케오는 그녀에게 예지 능력이 있다는 것을 간파하지만 계약 상 질문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궁금증을 억누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 무렵, D현의 온천지에서 황화수소 중독으로 육십 대의 영화 프로듀서가 사망하고 그로부터 300㎞ 떨어진 또 다른 온천지에서도 유사한 양상의 황화수소 중독 사망 사고가 일어난다. 지구화학 전문가 아오에 교수는 이 사고의 원인 규명을 위해 온천지 주변을 둘러보던 중 두 현장에서 아마카스 겐토라는 청년을 찾고 있는 마도카와 마주치게 된다.
아마카스 사이세이는 겐토의 아버지다. 자신이 남긴 블로거에는 가족들이 모두 모범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왜 자살을 시도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고 혹시라도 자신의 소홀했던 점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동안 자신이 몰랐던 가족의 생을 찾기 위해 가족들의 주변을 수소문하여 그들이 살아왔던 발자취를 찾아 블로거에 기록으로 남기게 된다. 식물인간이 된 사랑하는 아들이 회생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사이세이는 먼 길을 떠난다. 그리고 블로거 게시 또한 끝낸다.
하지만 사이세이의 블로거에 올라있는 글은 모두 지어낸 이야기다. 사이세이는 완벽을 추구하던 사람으로 그와 함께 가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명성에 걸 맞는 모범적이고 완벽한 가족이 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사이세이는 그의 처와 딸, 아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천재적인 영화감독인 그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가족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8년이 지난 후 다시 나타난 사이세이는 자신이 남긴 블로거의 내용을 일부 차용하고 그 후 알게 된 사실을 더하여 책을 출판하고자 했다. 그 전체적인 내용은 딸 모에가 사실은 어머니의 부정에 의해 태어난 딸이고 가끔 어머니와 함께 친아버지를 만나는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황화수소를 이용하여 자살을 시도했는데 어머니는 딸을 구하러 가다가 복도에서 쓰러져 죽었고 아들 겐토는 3층에 있었기에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식물인간이 된다는 이야기다. 이것을 영화로도 만들고자 했다.
결국 사이세이는 가족들을 황화수소에 중독되어 죽게 만들면서도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이 스스로 죄책감에 의해 자살한 것으로 사건을 꾸미게 된다. 친딸임에도 사생아로 만들어 죄책감으로 자살했다고 꾸민 그는 선천적으로 부성애가 결핍된 인물이다. 그것은 아들 겐토에게도 나타나는 성향이다. 유전된 것이다. 하지만 겐토는 황화수소 중독으로 마비가 되고 식물인간처럼 되었지만 모든 기억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모두에게 기억상실증이 걸린 것처럼 행동하게 된다.
마도카의 아버지이자 뇌의학 관련 천재 박사 우하라 젠타로는 수술을 통해서 겐토의 의식을 회복하게 한다. 원래 천재인지 아니면 수술에 의해서 천재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겐토는 악마처럼 모든 물리적인 현상을 빠른 시간 내 계산해 낸다. 주사위를 던지는 순간 주변의 공기의 흐름, 던지는 속도, 습도, 주사위가 닿는 표면과의 관계 등 모든 파악할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을 계산하여 정확하게 무슨 숫자가 나올지 예측해 낸다.
연구진은 과연 이 현상을 누구에게 적용시켜도 같은 결과를 나타낼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보다 발전된 결과를 얻기 위해서 상대가 있어야 한다는 문제점 등으로 고민하던 중 마도카가 라플라스의 마녀가 되기로 자청하고 나선다. 그렇게 마녀와 악마 커플이 탄생하게 된다.
온천지에서 일어난 황화수소 중독 사고는 겐토의 계략에 의한 사건이다. 돌연 연구소에서 사라진 겐토는 오랫동안 계획해 왔던 복수를 실행에 옮긴다. 가족의 살인에 가담했던 자들을 죽이면서 아버지인 사이세이가 이 사실을 인지하고 겐토 앞에 등장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재력만을 보고 수십 년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결혼하였으나 우연한 교통사고로 위장하여 접근한 겐토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남편의 살인에 가담한 치사토. 그녀는 남편 살해의 대가로 두 사람을 더 죽이는데 협조하게 된다. 첫 번째는 도마테 온천에서의 영화배우 중독사건이고 두 번째는 사이세이를 범행 현장에 데려오는 것이었다.
날씨와 모든 물리적인 현상을 관찰한 후 아버지 사이세이의 마지막 작품의 무대가 되었던 폐허의 건물에서 겐토와 사이세이는 마주하게 된다. 겐토는 이미 그 장소에서 적난운 아래에서 냉기를 동반한 격렬한 하강기류인 다운버스트가 나타날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 장소에서 같이 죽어가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하지만 뒤를 쫓아 온 마도카가 타고 온 승용차를 적당한 위치에 두게 되고 바람이 시작되면서 자동차가 건물의 벽을 뚫고 날아가면서 바람의 방향과 속도를 정상적인 다운버스트가 아니게 만든다. 결국 두 사람은 죽음을 면하게 된다. 겐토는 그 장소에서 사라지고 골절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 중이던 사이세이는 병원에서 자살하게 된다. 소설은 사이세이가 자살을 결심하는 심적인 상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보디가드 다케오는 마도카에게 질문 하나 해도 되는지 묻는다. 마도카는 어떤 질문도 괜찮다고 하며 꼭 한 가지만 물어보라고 한다. 다케오는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묻는다. 마도카는 모르는 게 행복할 것이라고 대답한다.
우리는 이 소설에서 파우스트를 떠올려도 될까.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모두 알게 된다면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지만 아무리 전지전능한 악마라 할지라도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들 마음대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소설은 이야기하고 있다. 다운버스트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견한 장소에 마도카가 자동차를 갖다놓아 방해할지를 그도 몰랐던 것이다.
사이세이라는 인물이 선천적으로 부성애가 없는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 또한 현대사회, 특히나 고독하게 일에만 열중하는 일본 사회를 비판하는 은유적 기법은 아니었을까. 바쁜 일상에서 집은 그저 잠만 자는 곳이고 모든 의식주를 바깥에서 해결하는 동안 아내와 아이들은 남편이자 아버지인 사람과 별개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 결국 가족들은 아버지에 의해 버림받아 죽은 거나 다름없으며 그러한 남편 또한 쓸쓸하게 혼자서 죽어갈 수밖에 없다는 무서운 이야기를 이러한 이야기의 틀에 얹어서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일에 대한 비판일 것이다. 겐토는 악마적 성향으로 복수를 하지만 그와 똑같은 쌍둥이라고 할 수 있는 마도카는 살인을 막는다.
모든 물리적인 현상을 관찰하여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진정한 행복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중에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은 하나의 원자로서 취급할 수 있는데 그 개개인은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겠지만 그들 하나하나가 모여 사회는 거대한 물결을 이루며 유기적으로 생존해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도 개별적인 개인들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하며 각자가 제자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코 천재적인 한두 사람이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악마의 유혹을 뿌리치고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 행복이 아닌가.
※ 라플라스는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이며, 수학적 물리학자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수치계산을 통해서 미래가 예견이 가능하다고 했다. 모든 원자의 현재 위치와 운동량을 파악해내는 지성이 등장한다면 그 존재는 물리학을 활용해 그러한 원자의 시간적 변화를 계산할 수 있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고 미래까지 완전하게 예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존재가 나중에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별명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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