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을 읽고

몽화 / 권비영

by 1004들꽃 2016. 6. 18.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영실의 아버지는 주재소 순사를 두들겨 팬 이후 만주로 떠났고, 얼마 후 어머니조차 아버지를 찾으러 만주로 떠나면서 영실은 이모네에 맡겨진다.


이모네 집 앞에는 개천이 흐르고 있었는데 개천의 동쪽은 게딱지같은 집들이 서쪽으로는 기와집들이 늘어서 있었고, 그 개천의 양쪽은 나무다리로 이어져 있었다. 기와집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두 집이 있었는데 서쪽의 기와집은 영실 또래의 갈래머리를 땋은 여학생이 아침마다 자동차를 타고 나가는 앞잡이의 집이고, 동쪽 게딱지같은 집들이 끝나는 지점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기와집은 화월각이라는 기생집이다.


영실은 어느 일요일 기와집을 구경하다 갈래머리 소녀 정인이와 친구가 된다. 기생집 화월각으로 국밥을 배달하는 것을 보고 정인이 다가와 기생집 마당까지 들어다 준다. 기생집에서 영실 또래의 여자애 서은화를 만나게 된다. 아지트에서 만난 셋은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며 손가락을 걸며 우정맹세를 했다. 그해 첫눈이 오는 날 정인은 불란서로 떠났고 은화는 태선어미의 패물을 훔쳐서 간호부에 지원할까 생각한다는 편지를 남기고 화월각을 떠난다. 은화는 거리를 방황하던 중 화월각에서 만났던 김 사장과 마주친다. 김 사장은 은화에게 일본의 방직공장을 추천했고 은화는 일본으로 가기로 했다. 김 사장의 약속과 달리 일본으로 간 은화는 허름한 숙소에 갇혔고 거기서 강 씨에게 순결을 잃는다. 결국 위안부로 잡혀온 것이다. 위안부 생활을 하던 정인은 1호실의 여자가 자살을 하고 나서 삶의 목표를 탈출로 정했다.


영실의 이모는 나카무라에게 영실을 일본에 보내 공부할 수 있도록 부탁하고 나카무라는 흔쾌히 승낙하며 단, 일을 하며 공부할 것을 조건으로 내 세운다. 일본으로 간 영실은 나카무라의 동생 마코토와 세츠코 부부의 화과가게에서 일하게 된다. 이모와 편지로 연락을 하던 중 아버지가 일본의 탄광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혼자서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가 정인의 집에서 일하던 칠복이와 희망여인숙에서 일하던 점순이를 만나게 된다. 사흘 후 태일이 그곳에 찾아온다. 영실은 태일과 함께 화과가게로 돌아온다.


정인의 아버지는 부녀자들 연행의 선봉에 섰다. 정태와 정인을 불란서로 유학시킨 것 또한 그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정태대신 강제징용을 간 것은 칠복이었다. 자식을 보호하기 위한 역겨운 부정이었지만 정인은 그런 아버지를 부끄러워했다.


정한우는 노무의 조수가 발을 삐어 운전을 못하게 되자 노무가 빼돌리는 석탄차를 대신 운전하게 되어 칠복을 조수로 데리고 나간다. 정한우는 노무가 빼돌리는 석탄을 팔아 둘이서 튀자고 한다. 도망을 가다가 배가 고파 끼니를 해결하러 마을로 내려가던 중 배탈이 난 칠복이 설사를 해결하는 동안 앞서가던 정한우는 헌병에게 잡힌다. 정한우는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돈을 훔쳐 달아난 칠복을 잡으러 왔다고 하며 신호를 보냈다. 정한우는 헌병에게 잡혀 가고 칠복은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목적지인 하카타 방향이 맞는지도 모르고 마냥 걸었다. 산속에서 지친 몸을 누이고 잠시 잠이 들었는데 도망친 위안부를 찾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산길을 벗어나면 하카다로 가는 큰길이 나온다는 말을 남기고 사내들은 포기하고 돌아갔다.


장사를 접은 화과가게에 영실은 혼자 남겨졌고 가게는 덧문까지 모두 닫았다. 어느 캄캄한 밤 가게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칠복은 은화를 부축하여 데리고 왔다. 칠복은 영실에게 아버지는 조선을 돌아갔다고 거짓말을 한다. 조선으로 가는 배표를 구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부두를 서성이던 칠복은 암표 장사를 하는 정한우를 발견했다. 죽은 줄 알았던 정한우에게 같이 조선으로 돌아가자고 하지만 정한우는 조선에 기다리는 사람도 없으니 그냥 일본에 남겠다고 한다. 배표 세 장을 부탁하고 집으로 돌아온 그 날 저녁 은화는 사라진다.


영실이 떠나고 화과가게로 돌아와 긴 머리카락을 자르고 중년 부인처럼 원피스를 차려입고 부두에 서성이는 은화를 정한우는 유심히 쳐다본다. 일자리를 구하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고 술 취한 남자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때 정한우가 나서서 구해준다. 정인에게서 온 편지 때문에 영실과 은화가 아는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미군이 주둔하게 되면서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은화의 보호자로 자청하고 둘은 화과가게에서 함께 살게 된다.


부산항에 도착한 후 잠시 쉬었다가 칠복과 영실은 이모집에 가지만 어디론가 떠나고 없다. 칠복은 영실에게 이야기한다. 아버지는 조선에 없다고. 하지만 죽었다는 이야기는 차마 하지 못한다. 둘은 다시 부산으로 간다. 칠복은 영실 아버지를 꼭 모셔 오겠다고 약속한다.


영실은 아버지에 대한 거짓말을 듣고 칠복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디까지 믿어야 되는가를 생각하지만 정작 칠복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한다. 그러던 영실은 자기 손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오겠다고 결심하고 무모하게도 안개 짙은 날 일본으로 가는 상선에 몸을 숨긴다. 배가 출항하고 뭔가를 찾으러 내려온 젊은 선원에게 들킨 영실은 도망가다 막다른 선미에 도착하자 망설임 없이 바다로 뛰어 내렸다. 가까스로 구출된 영실은 바늘을 허리에 꿰어 쓸 수 없듯이 차근차근 준비하기로 결심한다. 언제 또 분노한 파도가 밀려올지 모르는 현실 앞에서 암흑 같은 세월이 힘들고 더디게 흐르고 있었다.


영웅으로 전해져 오는 누군가의 이야기도 아니다. 오히려 다큐멘터리 한 편을 시청한 것 같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한국광복군의 한사람으로 있었던 사람도 있고, 취직을 시켜주겠다고 일본으로 데려가 위안부를 만들어버린 소녀도 있고, 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갔지만 제대로 된 공부는 못하고 장사를 도와주면서 허송세월만 보내버린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세월 속에서도 프랑스 유학을 가서 즐기다가 미국 유학을 한 사업가와 결혼을 하는 어려운 일이라고는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앞잡이의 딸도 있다. 그들은 지금도 잘 살고 있고 일본에 묻은 아버지의 뼈를 아직도 찾아오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세 소녀와 주변 인물들을 통하여 그 시대를 다시 돌아보는 시간여행을 할 수 있었다.


몽화라는 소설을 통하여 얼마 전 개봉한 대한민국 사람들 모두가 함께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영화 <귀향>을 통해서도 생각해 보았을 위안부들의 이야기들을 다시 접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을 우습게 보는 사람들은 한국 사람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비록 경제적인 부족함이 있더라도 한국 사람이라면 일본이 저질러 놓은 만행은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소설을 읽고 독자들이 바라는 것은 어쩌면 행복한 결말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데 몽화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현재 진행형인 이야기여서 그런지 행복은 요원한 것 같다. 현해탄은 영원히 건너지 못할 장벽 같고 칠복이는 늙어서도 영실 옆에서 배삯을 모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일제 강점기 가녀린 소녀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들의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그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한 발씩 한 발씩 나서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는데 그들을 짓밟고 일어선 사람들도 있고 그들을 이용해 자신들의 배를 불린 이들도 있다. 풀 한 포기밖에 되지 않는 미미한 존재들이지만 그들이 시장에서 국밥을 팔고 공장에서 미싱을 돌리면서 세상은 변해왔다. 정신 차려야 할 사람들이 많이도 있지만 그들의 정신과 민초들의 정신은 서로 다른 곳에서 태어나 각자의 길로 가는 것이라 서로간의 이해는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있는 것은 최근에 발간된 소설<천연당 사진관>이나 영화<암살> 같은 속 시원한 이야기들이 우리들 곁으로 계속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