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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남쪽으로 튀어 / 오쿠다 히데오

by 1004들꽃 2016. 6. 14.



남쪽으로 튀어 / 오쿠다 히데오



초등학교 6학년 우에하라 지로는 아버지 이치로와 어머니 사쿠라, 4학년인 여동생 모모코 그리고 누나 요코와 함께 한 집에서 살아간다.
지로는 밥을 한 끼에 네 공기 씩 먹을 정도로 식욕이 왕성하다. 밥도 알아서 차려 먹을 줄 알고 설거지도 하며 집안일을 도운다.


아버지는 늘 집안에서 빈둥거리고 있고 어머니는 작은 찻집을 운영하며 집안을 책임지고 있다. 아버지는 스스로 책을 쓰는 작가라고 하지만 지로는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지로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프로레슬링 한 판 할까? 하며 다가온다. 지로는 싫다며 도망을 가지만 가끔 잡혀서 헤드록에 걸리기도 한다.


그러던 아버지가 출판사와 계약을 했단다. 곧 책이 나올 것이라며 등단의 꿈을 꾸지만 결국 출판사에서 시대적 상황과 맞지 않다며 출판을 거부한다. 콧구멍을 후비며 빈둥대면서도 콜라와 캔 커피는 미국의 음모며 독이라고 하여 금지시키고 학교 같은 거 다니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며 학교는 현재 체제를 유지시키기 위한 사람을 양성해내는 기관일 뿐이라고 한다. 체제니 착취니 초등학생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소리를 해대며 나라에서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조건 적개심을 나타낸다. 주위의 시선 따위는 조금도 의식하지 않고 경찰에게 <국가의 개>라고 하며 욕을 퍼붓기도 한다. 연금을 들라고 하는 국민연금 공단 직원이나 관청은 벌레보다 싫다느니 하면서 상대를 곤경에 빠뜨린다. 가정방문차 집에 들른 담임선생님에게도 놀리듯이 곤란한 질문을 해 댄다. 결국 학교에서 청구하는 수학여행 경비가 부당하다는 주장을 하게 되고 지로는 담임선생님과의 관계도 곤란하게 된다. 수학여행 부당성에 대해서는 후일 이리오모테 섬으로 이사를 간 후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온 편지에서 밝혀진다. 그 와중에 불량 중학생 가쓰에게 걸려서 돈을 갖다 바쳐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잠시 지로의 집에 머물게 된 아버지의 후배가 조직간의 불화를 해결하기 위해 상대 조직의 분파 대장을 살해하고 만다. 그 사건을 계기고 지로네 가족은 도쿄에서의 생활을 접고 남쪽 오키나와 근처 이리오모테 섬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물론 지로를 괴롭히던 중학생 가쓰 또한 통쾌하게 때려눕히고 떠난다.


이리오모테 섬의 빈집을 수리해 들어간 우에하라 가족에게 섬의 모든 주민이 먹을 것이라든지 여러 가지 기계나 공구 등을 나눠준다. 돈이 필요 없을 정도다. 하지만 얼마 후 그 집의 법적 소유주인 리조트 개발업자에 맞서 싸움을 벌이게 된다. 환경 파괴로 이어질 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도 싸움에 동참하게 되고, 연일 텔레비전 방송에 보도 되면서 아버지는 영웅으로 부각된다. 몸 하나만으로 싸우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결국 패배하고 체포되지만 탈출하여 또 다른 섬으로 튄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떠난 후 지로는 사귀던 유부남과 헤어진 후 섬을 찾아 온 누나 요코와 동생 모모코와 함께 공동주택에서 생활하게 된다. 전혀 일하지 않고 빈둥거리던 아버지가 섬에 오면서 완전히 달라져 어머니와 함께 열심히 일하면서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끝까지 굽히지 않고 지켜나가는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그간의 투쟁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지로는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면서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라는 아버지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그로테스크하게 변질된 사회가 너무 싫은 아버지다. 7, 80년대 학생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정치권에 편입되었다. 자칭 아나키스트인 지로의 아버지 눈에는 순수한 운동만 하던 사람들은 그저 기성세대로 편입되어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착실히 수행해 나가는 반면 소위 우두머리 집단으로 분류되었던 자들은 그로테스크한 변질을 통해 새로운 권력집단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보였는지도 모른다. 충실한 학교교육을 받게 만들고 체제가 요구하는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국가에 대하여 반감을 가지고 일본 사람이기는 하지만 국민이 되기는 싫다는 아버지. 태어나자마자 국민이 되어야 하고 세금을 내야하고 학교에 다녀야하고 하기 싫은 의무를 수행해야하는 것 자체가 싫은 사람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을 오쿠다 히데오는 초등학교 어린이의 눈을 통해 쉽게 풀어내고 있다. 거창한 슬로건을 내세우지 않고 그저 살아가는 일상에서 찾아낸 것은 어쩌면 행복이라는 두 글자가 아닌가 생각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리오모테 섬에서 세 남매는 행복하게 보이고, 정착하게 되면 꼭 데리러 오겠고 하며 배를 타고 떠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도 너무 행복하게 보인다. 사회에서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사회에서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여 초등학생 때부터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과외를 하고 그 과정을 거치면서 누군가의 배를 불려주기 위한 직업을 선택하고 그것이 행복인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들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다.


이름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생각해 보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위한 숱한 노력들. 연예인들은 인기가 떨어지면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고 하는데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그저 꾸준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물론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혼자일 수 있는 방법.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지만 그 속에서도 이해관계를 떠나 아름다운 이야기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너와 나가 아닌 그저 우리로만 있을 수 있는 관계.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을 읽으면 그가 이야기하는 세계로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된다. 한여름 무더위를 잠시 날려 보낼 수 있는 이야기가 그 속에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느 시대를 살아가든지 이런 소설가는 있지 않을까. 소설가들이 있기에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은 그 자체로서 행복이다.




지워진 이름


들여다보면 떠올랐던 얼굴
지워진 후에 다시 보지 않는다
이름이 없어진 것과
사람이 없어진 것은
같은 일이라고 하는 것일까
김춘수 시인은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된다고 했다
이름으로 세상은 구분되고
지워진 이름으로는
누구에게도 다가갈 수 없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살아갈 수 있다
매일 이름을 지운다
그 누군가의 명부에 씌어 있을
나의 이름을 지운다
그의 이름을 지운다
이름이 없어진 후에
비로소 자유를 찾을 수 있다
누구에게도 떠오르지 않을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