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 프레드릭 배크만
이제 막 여덟 살이 되려는 소녀와 이제 막 일흔여덟 살이 되려는 할머니, 그리고 엄마, 그리고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여덟 살이 되려는 손녀인 엘사가 세상과 소통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어린 소녀의 눈을 통해서 사람들이 화해해 가는 과정을 쳐다보는 이야기다. 어린 소녀의 힘으로 그들 간의 갈등을 해결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너무도 총명한 소녀는 능히 그들의 화해를 이끌어낸다.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이야기가 할머니가 남긴 편지를 전해주는 과정에서 눈 녹듯 풀려나간다. 어린 시절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해결해주기 위해 딸을 두고 떠나버린 할머니. 그 할머니의 딸이 엘사의 어머니다. 할머니는 엘사가 태어나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손녀에게 정성을 쏟는 할머니가 어머니의 눈에 질투를 유발시키기도 하지만 할머니가 전해달라는 메시지로 인하여 갈등이 풀어지고 사실은 어머니가 할머니의 모든 것을 이해한다고 고백한다.
엘사는 암에 걸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머니와 혹은 엘사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편지를 전해주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꼼짝하지 않았던 갈등관계를 풀어가게 된다.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할머니의 편지에 미안하다고 적혀있다고 한다.
할머니와 엘사만 아는 비밀 왕국인 깰락말락 나라에는 여섯 개의 왕국이 있는데 그 중 미아마스에 자주 간다. 미레바스 왕국은 꿈을 지키고 미플로리스 왕국은 슬픔을 저장하며 미모바스 왕국은 음악을 만들고 미아우다카스 왕국은 용기를 만든다. 미바탈로스 왕국에서는 끝없는 전쟁에서 무시무시한 그림자들과 맞서 싸운 용맹한 전사들을 양성하는 왕국이다.
현실과 이상을 넘나드는 황당한 이야기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현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이다. 누구든지 꿈을 꿀 수 있고 복잡한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을 것이다. 그 꿈은 소설 속의 어린아이와 할머니를 통해서 실현된다, 소설은 알게 모르게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슬픔을 저장하는 미플로리스 왕국이 원래는 가장 조그만 나라였는데 끝없는 전쟁 이후에 가장 넓은 왕국이 되었고 할머니가 가장 드나들기 싫어했던 곳이 된다. 손녀에게 슬픈 현실을 물려주기 싫은 마음이 표현되어 있다. 물론 손녀 엘사에 국한된 것은 아니고 모든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인류에게 왜 할 일없이 전쟁을 하느냐고? 물어봐야 할 것 아닌가?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이 왜 갑자기 그토록 비참한 현실에 맞닥뜨려야 하는지를 누구든지 생각하겠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전쟁의 도가니 속에 있을 뿐이다.
그 대답을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 “죽음의 가장 강력한 힘이 사람의 모습을 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게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사랑밖에 없다.
울프하트는 엘사와의 대화에서 이야기한다. 울프하트 엄마의 모국어로 미아마스는 사랑한다는 뜻이고 미플로리스는 슬퍼한다, 미레바스는 꿈꾼다, 미아우다카스는 도전한다, 미모바스는 춤춘다, 미바탈로스는 싸운다는 뜻이라고 한다. 왕국의 이름에서 세상에서 드러날 수 있는 모든 감정들을 생각하게 해 준다. 어떤 것은 드러나지 않았으면 좋겠고, 어떤 것은 더 깊은 곳에 숨겨 두고 싶은 것들이 있다. 하지만 숨겨 두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모두 이야기하는 것이다.
할머니는 편지로서 모두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한다. 사랑하는 손녀를 두고 가면서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손녀를 부탁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담았다. 소설을 읽는 사람은 할머니와 함께 상상의 나라를 여행하던 소녀가 할머니를 떠나보내고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며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다. 할머니가 남긴 편지는 사람들에게 기적으로 다가간다. 기적이라고 해서 아주 특별한 것이 아니다. 사소한 것으로 소원해졌던 관계를 되돌려 놓고 하도 웃지 않아서 웃음을 잃어버렸던 사람이 웃게 되고, 또 눈물 흘릴 수 있는 세상을 보여준다, 그것도 남이 가져다 준 것이 아니라 엘사의 이야기와 할머니의 편지와 함께 스스로 답을 찾아간다. 기적이 일어났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주 특별한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들이다.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만든다면 그것으로서 다가올 날을 행복하게 할 수 있고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되돌아보는 과거는 바로 지금 이 순간 행복을 찾고 있는 현재일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한 덩어리이고 시간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소한 것들이 해결 되었을 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또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해결되어 있는 것처럼 이웃과 또는 동료와의 관계가 소중한 관계가 되었을 때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살아가는 일들이 모두 알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부끄러워 이야기하지 못하여 일어난 오해를 풀어가는 과정이다. 소설은 아마도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소한 것들의 모음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가끔 아주 가끔 복잡한 일에 부딪쳤을 때 잠시 숨을 고르며 깰락말락 나라에 한 번 가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책을 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는 다시 만나고 있다 / 박성우 신용목 엮음 - 창비시선 400 기념 시선집 (0) | 2016.09.14 |
---|---|
라플라스의 마녀 / 히가시노 게이고 (0) | 2016.07.26 |
몽화 / 권비영 (0) | 2016.06.18 |
남쪽으로 튀어 / 오쿠다 히데오 (0) | 2016.06.14 |
그 여자네 집 / 박완서 (0) | 2016.0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