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제목이 꼭 사람과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하는 매개로서의 시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교육의 힘이라는 것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것을 시를 접할 때마다 느끼지만 그 느낌을 지울 수 있도록 교육의 방향은 그리 쉽게 전환되지는 않을 것 같다. 시험지를 앞에 둔 학생들은 항상 사지선다나 오지선다의 질문지 앞에서 갈등한다. 해석과 해석의 사이에서 도대체 누구의 해석을 따라서 가야할지를 고민하다 참고서에서 제시하는 답을 떠올리고는 그에 상응하는 답을 찾아서 답을 고른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마음에서 느껴져 오는 답인지 아닌지는 알지 못한다.
시를 너무도 아끼고 사랑한 나머지 학교에서는 시를 해석하고 추궁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정작 시를 쓴 본인이 자신의 시로 만든 문제를 풀어내지 못하고 작가가 생각하지 않았던 엉뚱한 답을 답이라고 여기도록 교육은 진행되고 있지 않은지 궁금할 뿐이다. 시가 읽는 순간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것인 한, 시인이 누려야 할 모든 영광은 오로지 독자의 것이어야 한다고 엮은이는 말하고 있다. 시를 읽을 때는 오로지 시를 시로서만 읽어야 할 것이다. 많은 시인들의 시를 엮어 놓았다고는 하지만 지은이를 생각하지 않고 시를 읽다보면 시집 속의 모든 시들이 함께 춤을 추는 듯하다. 엮은이의 취향이나 성격이 반영되어 시들은 꼭 한 사람이 쓴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이 시집에는 없지만 정호승 시인의 “풍경 달다”라는 시를 한 번 읽어보자.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 데서 바람 불어와 /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 찾아간 줄 알아라
생각할 필요 없이 그저 읽기만하면 시가 몸속으로 들어와 온 몸으로 번져나간다. 이제 우리는 시를 읽을 때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상한 답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지 말고 시를 시로서 읽고, 읽혀지는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을 희망해 본다. 그러다보면 시와 가까워지게 되고 어느 순간 스스로 시를 찾아서 읽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서점에서 가장 팔리지 않는 책을 들라면 단연코 시집이라고 하는데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대한민국에서 시인들이 설 자리는 없는 것 같다. 있을지라도 아주 좁다. 물론 시인들의 독자들과 교감하고 같이 호흡하고자 하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고 할 것이다.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친구들과 놀고 싶어서 담 너머로 친구를 부를 때 친구 아버지 이름을 부르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 친구 아버지와 눈이 마주치면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난다. 그렇게 친구 아버지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외우기도 했다. 그 시절에는 몰론 시집을 사서 읽지는 못했지만 교과서에 나오는 시의 어느 대목을 대화의 중간중간에 장난스럽게 끼워 넣기도 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시와 가까워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요즈음의 시들은 그렇게 끼워넣을 만큼 쉽게 가슴에 와 닿을만한 시가 없다.
산문시가 대부분이고 알아들을 수 없는 난해할 글자들의 배열을 외워서 누군가에게 들려줄 만큼 가슴에 와 닿는 시를 발견하지 못한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하면 시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자들의 하소연이라고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짧은 문장으로 긴 여운을 남기도록, 그래서 생각하고 생각할수록 다른 의미들이 새롭게 솟아나는, 상황에 따라서, 읽는 시간에 따라서, 계절에 따라서 시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는 경험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시집은 시와 함께 시인의 짧은 말 한마디를 함께 실었다. 그래서 보다 해독이 쉽도록 시의 길을 밝혀준다. 160페이지 최정례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긴 시간이었지만 사실은 순간이었다. 우린 그 순간을 멍청히 바라보는 관객이었다.”고 이야기 한다. 시인의 시“표현”에서 “엄마, 나 몇 살 때 4월이었어?” 라고 묻는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순간순간의 시간들이 모여서 이야기가 된다. 시 한 편이 한 편의 소설이 될 수도 있고 또 소설의 한 단편이 될 수도 있다. 그 단편들이 모여서 한 편의 소설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표현으로 따진다면 오히려 소설 속에서 시적인 표현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 박성우 시인이 시가 그대에게 번지고 그대는 시에게로 스민다고 했듯이 길지 않으나 오래 마음을 흔들어 일렁이게 하는 아름답고 아프고 따스한 시편들이 “우리는 다시 만나고 있다”라는 제목 안에서 모였다. 한편 한편의 시들이 외로운 사람들과 동행하면서 따뜻한 길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올 여름 그 지루했던 무더위 속에서도 가을이 만들어지듯이 다시 고개를 돌려 한 편의 시를 읽으며 아름다운 생각의 선을 잡고 만추의 한복판으로 걸어갔으면 좋겠다.
16페이지 박후기의 사랑이라는 시를 한 편 읽어 본다.
침묵은/말없는 거짓말,/내 귀는/거짓말을 사랑한다/ 살아야 하는 여자와/살고 싶은 여자가 다른 것은/연주와 감상의/차이 같은 것/건반 위의 흑백처럼/운명은 반음이/엇갈릴 뿐이고/다시 듣고 싶은 음악은/다시 듣고 싶은/당신의 거짓말이다
시인의 말/얼마나 많은 씨앗의 악몽이 모여 해바라기의 표정을 만드는가.
광고의 한 카피처럼 내 가슴에 시가 들어오는 계절 가을. 감히 시를 사랑할 수 있는 계절로 인도하는 한 권의 시집으로서 안성맞춤이다. 이 책을 팔아서 자전거 월부를 갚으려 한다고 사람들아 책 좀 사라고 하던 소설가 김훈의 말이 생각난다. 시를 쓰는 사람은 글자로서 사랑이라고 쓰지만 사랑을 느끼는 것은 오로지 읽는 사람의 몫이다. 이번 가을에는 시집 좀 사서 온 마음에다 사랑이라는 글자를 새겨보아야겠다. 그래서 웃을 때마다 입술에서 비질비질 사랑이라는 글자가 비어져 나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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