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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지금 이 순간 / 기욤 뮈소

by 1004들꽃 2016. 10. 22.

지금 이 순간 / 기욤 뮈소

 

1991년 보스턴. 6월 들어 처음 맞이하는 토요일 오전 10시 쯤 아서는 예고도 없는 아버지의 방문을 맞는다. 스물다섯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아서는 아버지와 소원하게 지내고 있던 터였지만 아버지는 매일 만나 다정하게 지내는 부자처럼 행동한다. 낚시를 하러 가자는 아버지에 이끌려 간 곳은 조부인 설리반 할아버지가 1954년에 구입한 24방위 바람의 등대다. 그런데 설리반 할아버지는 등대와 집을 별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대대적인 수리를 하던 중 1954년 가을에 갑자기 종적을 감춘다.


아버지는 이 등대를 아서에게 유산으로 물려준다. 아서는 등대에 얽힌 비밀을 풀기 위해 아버지가 30년 전에 벽돌로 막은 철문을 연다. 철문에 들어선 아서는 갑자기 불어 온 얼음장같이 차가운 바람을 맞고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첫 번째 시간여행에서 분홍색 물방울무늬 팬티만 달랑 입고 진흙투성이의 스탠스미스 샌들을 신은 채 도착한 곳은 뉴욕 5번가에 있는 세인트 파트리크 대성당의 성가대석 한가운데다. 아서는 경찰을 피해 도망을 가지만 추적해 온 여경에게 체포되어 파출소 유치장에 갇히게 된다. 유치장에 갇힌 노숙자의 신문에 적힌 1992716일이라는 날짜를 보고 깜짝 놀란다.


취조실에서 간단한 조사를 받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던 중 할아버지를 뉴욕 루스벨트섬의 블랙웰 정신병원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할아버지가 사라진지 24년 만인 1979년 맨해튼의 중앙역에서 발견해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경찰서에서 나와 24방위 등대에 들렀다가 자신의 아파트로 가기 위해 타게 된 엘리베이트 안에서 다시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도착하게 된 곳은 뉴욕 어느 여자의 집 욕실, 알몸의 여자 앞이다. 급히 도망을 나와 신문에서 확인한 날짜는 1993914일 화요일. 신분증이 들어있는 지갑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그 여자의 아파트 욕실에 가서 신분증을 찾고 아무도 없는 집을 둘러보다가 그녀의 이름은 엘리자벳 에임스, 스무 살에 줄리아드 연극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파트를 나오며 벽에 붙어 있는 사진 중 유일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떼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정신병원에서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병원에서 탈출시켜 줄 것을 제안 받고 시간여행의 저주에서 풀려나는 방법 또한 할아버지를 탈출시키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클럽에서 일하는 엘리자벳을 찾아가 간호사 역을 해 줄 것을 부탁한다. 할아버지를 탈출시키는 것은 성공했지만 아서는 병원 경비원에게 붙잡히고 만다. 독방에 갇힌 아서는 다시 오렌지 꽃향기를 맡게 되고 1994510일의 소호에 있는 어느 아파트에서 깨어난다. 욕실에서 물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두 손목을 긋고 욕조의 물속에 누워 있는 여자를 발견한다. 응급조치를 취하고 얼굴을 확인한 아서는 깜짝 놀란다. 여자는 다름 아닌 리자 에임스였던 것이다. 리자의 애인인 데이빗이 약물 과다복용으로 죽자 리자도 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리자의 아파트에서 할아버지의 흔적을 찾던 중 전화번호 수첩에서 설리반이라는 이름을 찾아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아 전화를 끊었는데 잠시 후에 전화벨이 울린다. 할아버지의 전화다. 할아버지가 알려준 주소로 찾아가 단정하게 차려입은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할아버지는 1954918. 등대 타워의 물새는 곳을 막느라 지쳐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마음먹었는데 10시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 왔고 등대의 최초 소유자이며 2년 전에 죽은 호로비츠가 피투성이가 된 채 나타나 철제문을 절대 열지 말라고 하며 죽었다고 한다. 다음날 할아버지는 호로비츠를 매장하고 철제문을 열게 되는데 195512월의 어느날 뉴욕 미트패킹 지역의 어떤 건물 지붕의 물탱크 옆에서 깨어났으며 24시간 후 다시 증발하여 195610월 택시 뒷좌석의 여자 승객 옆에서 깨어나게 된다. 이러한 일을 24년 동안 반복했다고 한다.


아서는 병원에 있는 리자를 찾아가 시간여행을 떠나기 전에 리자에게 편지를 썼고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전해 달라고 하지만 시간여행을 떠나면서 할아버지가 편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것을 보게 된다. 이미 시간여행을 떠나고 있는 아서는 말릴 방법이 없다.


1995115. 뉴욕의 지하철 안에 도착한 아서는 건달들에게 죽도록 매를 맞고 소지품과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손목시계까지 몽땅 털린다. 리자의 아파트에 찾아가니 리자가 반갑게 맞아주며 상처를 치료해 준다. 자기에게 준 편지가 너무도 고맙다고 하고 자주 꺼내 읽는다고 한다. 분명히 할아버지가 찢어버리는 것을 보았는데. 리자의 아파트에 찾아간 아서는 리자가 외출한 후 그녀의 침실에서 네 조각으로 찢겼다고 다시 붙인 편지를 발견한다. 리자가 돌아온 후 사랑을 나누고 창밖의 새벽하늘은 보는 순간 다시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


다시 깨어난 곳은 해가 쨍쨍 내리쬐는 직사각형의 방이다. 텔레비전에서 오늘이 199684일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란다. 19916월 시간 여행을 한 뒤 5년이 흘렀고 199684일은 아서의 서른 번째 생일이었다. 창고에 있는 캐비닛을 뜯고 그 안에 있는 옷들을 이용해 로프를 만들고 가까스러 창고를 탈출한다. 다시 리자를 찾아간 아서는 문전박대를 당하고 만다.


할아버지 집에 잠시 들렀다 한 여름 밤의 꿈 공연을 하기 위해 들라코르트 극장에 가 있는 리자를 찾아간다. 공연을 하기 위해 천사드레스를 입고 있는 리자에게 아서는 모든 것을 털어 놓고, 리자는 아서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는 순간 시간여행이 시작된다. 아서는 천사 드레스를 입고 있는 리자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모습을 본다.


1997831. 전통 방식으로 빵을 굽는 베이커리에서 깨어난다. 다시 리자의 집으로 가 초인종을 눌렀다. 리자가 나타났다. 첫 번째 시간여행에서 분홍색 물방울무늬 팬티만 달랑 입고 경찰에게 쫒기던 모습을 리자가 우연히 보게 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주어진 하루, 사랑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시간 여행을 떠난다.


19981031일 도심의 어느 아름다운 주택의 정원이다. 다시 리자를 찾아가지만 리자는 아서를 1년 만에 만나는 것이고 아서는 겨우 몇 시간 만에 리자를 만나는 것이다. 아쉬움만 남기고 사라지는 남자이지만 모든 것을 기억한다. 새벽이 되어 떠나야 할 순간, 인생이 이렇게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자신을 기억한다.


1999년에 도착한 곳은 극지방의 유령선들의 집하장이다. 추위를 벗어나기 위해 20분 정도 달려 택지에 다다랐다. 낙엽을 태우고 있는 노인을 만나 집안에 들렀다가 텔레비전 자막을 보고 19991231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많은 시간을 소요해 리자의 집에 도착한다. 집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도심 곳곳에 연말을 맞은 캘빈클라인 광고판의 모델이 리자인 것을 보게 된다. 옆집의 레나 할머니에게 리자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하지만 알려주지 않자 할머니는 복도에 세워두고 할머니의 집에 강제로 들어가 문을 잠가버린다. 리자의 전화번호를 알아내고 전화를 하지만 리자의 반응은 그다지 반갑지가 않고 오히려 가슴에 못을 박는 소리만 하고 전화를 끊어 버린다. 경찰이 도착하고 아서는 체포된다.


2000년 폭설이 내린 뉴욕의 거리에서 다시 할아버지를 만나 러시아 터키탕으로 간다. 리자는 베네치아에 화보촬영을 갔다고 하고, 둘이 헤어진 것은 현명한 결정이라고 한다. 지난 3년 동안 할아버지는 주식 투자를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한다. 모두 아서를 위해 보관해 두었다고 한다. 할아버지 집에서 대화를 나누다 적십자사 파커를 입은 채 시간여행을 떠난다.


2001911. 리자는 스물여덟 번째 생일을 맞게 되었고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남자를 침대 위에 내버려두고 화보촬영을 위해 배터리파크로 향했다. 화보촬영을 맡은 오드리와 함께 잠시 기다리는 동안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월드 트레이드 센터 쌍둥이 빌딩의 북쪽 건물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된다. 소형비행기가 건물에 충돌한 것이라 여기고 있는데 다시 항로를 벗어난 비행기가 북쪽 건물을 향해 돌진했고 CNN방송에서 세 번째 비행기가 펜타곤에 부딪쳤다는 소식을 전하자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어마어마한 굉음이 들려오는 곳으로 몸을 돌린 리자는 쌍둥이 빌딩 남쪽 건물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목격했다. 콘크리트 잔해에 묻혀 죽을 것이라고 생각한 순간 오드리의 손길을 느꼈고, 저녁 8시에는 아파트에서 두 블록 떨어진 엠파나다 파파스의 카운트에 앉아 있었다. 만약 잔해에 깔려 죽었다면 누가 가장 슬퍼할 것인지. 죽는 순간 누구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인지를 생각한 순간 그 얼굴은 누구도 아닌 아서 코스텔로의 얼굴이다. 1년에 단 하루만 함께 할 수 있는 남자. 지독한 외로움이 밀려올 때 어깨를 빌려줄 수도 없는 남자. 그 남자가 지독하게 보고 싶어서 열 살 때처럼 두 손을 깍지 끼고 기도를 한다. 그 순간 주방에서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적십자사 파카를 입은 웬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 나온다.


2002612. 아서는 프랑스에서 깨어난다. 할아버지가 챙겨 준 달러와 여권 덕분에 무사히 뉴욕에 도착하고 리자의 집에 가 보았으나 리자는 없었다. 곧장 할아버지 집으로 간 아서는 대문 노커에 끼어 있는 편지를 발견한다. 네 녀석이 곧 아빠가 되니 11초도 지체하지 말고 벨뷰병원 산부인과로 오라는 할아버지의 편지다. 병원에 도착해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고 이름을 벤자민이라 짓기로 했다. 이제는 아기를 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참을성과 맷집을 길러야 한다고 결심한다.


매번 시간여행을 떠날 때는 따뜻한 옷과 튼튼한 구두, 충분한 돈을 준비했다. 그리고 즉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달려갔다. 1년 동안 찍은 사진과 동영상으로 아이가 크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200710월에는 리자의 부모를 만나기도 했다. 20085월에 만났을 때 리자는 두 번째 아이를 임신했고 8개월째였다. 딸아이 이름은 소피아로 정했다. 2010년 어느 봄날 벤자민은 언젠가 모든 게 정상으로 된다는 게 사실이냐고 묻는다. 아서는 2015년이 되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아서는 2011<맘마미아>를 공연하는 브로드웨이 윈터 가든 극장에 와 있다. 극장을 나와 집으로 가니 리자는 없었고 메모지에 적힌 레스토랑 불리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보고 리자를 찾아간다. 레스토랑에서 남자와 마주앉아있는 리자를 발견한다. 시나리오 작가인 니콜라스와 드라마 배역에 대하여 이야기 중이었다. 집으로 돌아가 기다리라는 말에 분이 풀리지 않은 채 식당을 나와 마침 주차하려는 자동차 주인이 주차 담당자에게 건네려는 차 열쇠를 낚아채 보스턴으로 가는 주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아버지 무덤을 찾아가서 넋두리를 하는 동안 또다시 오렌지 꽃향기가 다가왔다.


2012. 1950년대 풍의 이스트 할렘의 한 이발소에서 눈을 뜬다. 탁자 위에는 2012224일자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지가 놓여 있다. 표지모델은 드라마 주인공 리자 에임스이다. 이발소 거울 속의 자신을 보고 연륜이 묻어나는 얼굴에 경악한다. 면도를 끝내고 누워 있는데 설리반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발사 지브릴과 할아버지는 60년째 알고 지내는 사이란다. 리자는 촬영 때문에 소피아와 캘리포니아에 가 있고 벤자민은 뉴욕에 있다고 한다. 학교에서 문제아로 변해버린 벤자민과 시간을 보내달라는 리자의 말을 듣고 마침 할아버지가 구해 준 농구티켓을 들고 농구경기장에 갔지만 대화는 심드렁했다. 집으로 돌아와 벤자민은 자신을 기쁘게 해 주는 것은 아빠가 시간여행을 가서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아빠가 해 준 것이라고는 가족을 슬픔에 빠지게 해 준 것뿐이라고. 또 시간여행이 끝나는 3년 후에 소피아와 벤자민은 죽을 것이라고 설리반 할아버지가 말했다는 것이다. 벤자민을 달래주고 3년 동안 잘 견디어 달라고 부탁하고는 다시 시간여행을 떠난다.


2013415. 뉴욕 시립도서관 열람실에 도착한다. 도서관을 빠져나와 먼저 설리반 할아버지 집에 들렀다. 노커에 안 좋은 소식을 전하는 편지가 끼어 있었다. 할아버지가 벨뷰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이다. 폐암말기다. 할아버지도 아버지 프랑크를 데려간 몹쓸병을 앓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지독히 담배를 좋아했기에 가족력이라기보다는 가족의 연속성이라고 해야 옳다는 생각을 한다. 할아버지는 24방위 바람이 지나고 나면 너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거라고 한다. 리자도 소피아도 벤자민도.


절망감이 극에 달하면 목숨을 끊으려 시도하게도 되는데 너는 절대로 그러지 말고 반드시 살아남겠다는 집념을 가져야 된다고 한다. “혼자가 되면 죽는거야라는 말이 할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시간여행이 진행되는 동안 할아버지 머리맡에 놓아둔 2009년 여름 어느날 가족 다섯 명이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한다. 경련이 시작되는 동안 그 사진을 재킷 주머니에 넣었다.


201422. 차이나타운의 음력설을 축하하기 위한 축제의 현장에 도착한 것이다. 콜럼버스 공원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있는데 아빠라는 소리가 느닷없이 들려온다. 소피아다. 소피아에게서 가족들이 니콜라스의 집에서 살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아서는 소피아가 그린 그림을 받아 주머니에 넣고 공원을 나선다.


니콜라스의 집에 도착하여 거실을 살펴보던 중 서재 한쪽에 작가의 사인을 기다리는 책무더기가 눈에 들어온다. 소피아가 준 그림을 꺼내 보니 그림을 그렸다고 했었는데 손으로 적은 글자뿐이었다.

책 표지는 <러버> 니콜라스 스튜어트 헐 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빠 비밀 한 가지를 알려줄까?

작가는 아빠야.

이해가 되지 않아 다시 표지를 본 순간 글자들이 자리를 바꾸더니 아서 설리반 코스텔로가 되었다. 다시 책을 들고 뒤표지를 살펴보니 니콜라스 헐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 사진 속 인물이 바로 아서였다.


인기척에 돌아보니 도플갱어가 물끄러미 아서를 쳐다보고 있었다. 도플갱어는 무엇이든 절대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 등대의 진실이라고 한다. 주어진 대로 살아가면서 더 이상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가족들을 이미 잃었다며 빈정대는 도플갱어를 그냥 둘 수 없어 아서는 페이퍼 나이프로 도플갱어의 복부를 여러 차례 찔렀다. 그는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설탕 태우는 냄새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순간, 너무나 명백한 진실이 눈을 후벼 팠다. 이제껏 믿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사라지는 건 내가 아니라 바로 내 가족들이었다.


현실에서 20141229일 아서는 교통사고로 두 아이를 잃고 그 죄책감으로 실제로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201544일 아서는 등대가 있는 돌집 거실에서 소설을 완성하고 리자가 찾아 왔을 때 술에 취해 소파에 누워있었다. 리자는 아서가 쓴 자전적 소설을 읽으면서 아서의 죄책감과 후회에 대하여 절실히 공감하게 된다. 아이들을 두 번 죽게 만들지 않도록 소설을 끝내지 말라고 한다. 아이들이 없어 넷이 될 수는 없지만 다시 둘은 될 수 있다고, 그리고 어쩌면 다시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도 있다고.


24번의 시간여행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작가는 쏜살같이 지나가버리는 인생을 이야기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살아가다보면 내일 하지 뭐라고 하며 미루어 버리는 일이 점점 많아지게 되는데 너무 많은 일을 동시에 하기 때문에 감당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계속 미루어지는 일이 있을 수 있겠고 게으름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미루어져 버리는 일도 있을 수 있겠다. 소설의 제목 같이 <지금 이 순간>은 누구에게도 빌려 줄 수 없고 빌려 받을 수도 없는 오로지 나에게만 주어진 시간이다. 아서가 죄책감에 시달려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것도 리자를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했던 의심 때문이었고, 이 소설을 완성시킨 것 또한 잘못을 돌이키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24방위 바람이 지나고 나면 너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거라는 설정과 같이 돌이킬 수 없는 일은 항상 우리들 곁을 맴돈다.


소설의 마지막은 <2015년 스물네 번째 날 나는 눈을 뜬다. 나는 ……>으로 끝나 있다. 술에 취하여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리자는 소설을 끝내지 못하게 한다. 어쩌면 다시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도 있다는 리자의 말로 지나간 일은 아무것도 남지 않게 하는 24방위 바람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좋은 일들은 언제나 과거에 속하는 것 같다는 제임스 샐리스의 말처럼 지난 일들이 다 좋을 수는 없지만 지난 일속에 주저앉아 있는 모습은 가장 보기 싫은 모습일 것이다. 과거의 어느 순간이 아닌 지금 이 순간만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