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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2009년 보길도 문학기행

by 1004들꽃 2009. 10. 1.

2009년 보길도 문학기행(2009. 6. 13 ∼ 6. 14)

 


기행을 떠나며

 

떠난다는 것은 언제나 설렌다. 일상을 먼발치에 밀어버리고 낯선 미지의 땅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언제나 설렌다.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궁금증은 상상 속에서 미리 여행을 떠나게 하고 부풀려진 상상은 설렘을 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여행이란 것은 그 상상 속에서의 설렘을 현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번 여행의 주 목적지는 조선시대의 문인 고산 윤선도가 은거생활을 했던 보길도이다. 6월13일, 14일. 1박 2일 동안 수평선 너머에서 불어오는 비릿한 바다 냄새에 취해 어쩌면 화려했을지도 모를 한 인간의 삶을 몸으로 느끼기 위한 것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것은 다를 것이고, 눈으로 들어오는 풍광 또한 마음이 받아주는 것만 받아들이는 것이 사람이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 해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있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눈앞에 보이는 불편함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외면해 버린다. 배려라는 말이 있다. 베풀어 보지 못한 사람은 남이 주는 베풂을 알아보지 못한다.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손해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손해와 베풂은 다른 것이다. 반대급부적 보상을 바라고 베푸는 것은 손해가 따르고 보상을 바라지 않는 순수한 베풂은 행복과 사랑을 가져다준다. 사회참여와 회피는 어떻게 다른가? 중이 살아가는 방식과 사회운동가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어떻게 다른가? 어떤 것이 옳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고산 윤선도의 삶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저 정치적 숙청의 방식에 의하여 홀로된 자가 혼자만의 유희를 즐기기 위해 시를 쓰면서 유유자적했던 것일까? 그의 삶은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그의 글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의 방편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그를 과대평가하고 재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어차피 자신이 선택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살아가는 도중 마음에 쏙 드는 이야기를 듣고 방향을 바꾸는 것 또한 자신의 선택이 아닌가. 어쨌든 그가 살아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지금의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우리의 문학기행은 출발부터 뭔가 어수선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15인승 승합차를 빌려서 갔는데 이번에는 총 18명이 참여하여 버스를 빌려야 할 형편이었다. 1박 2일 동안 차량을 빌려야하고 운전기사를 대동해야 하고 식사와 잠자리까지 제공하게 된다면 차량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생각에서 회원들의 승용차를 이용하기로 합의를 했다. 차를 운전하는 회원에게는 미안하고도 고마운 심정이지만 달리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다.


1박 2일의 여행에 앞서 떠나기 전날에는 가급적 술을 자제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떠나야 하는데 술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탓인지 숙취가 가시지 않아 머리가 띵하고 뱃속도 울렁거려 출발부터가 좋지 않다. 출발 장소인 충익사에 도착하니 어찌된 일인지 가만히 서 있는데도 길이 움직이는 현상이 나타났다. 마치 버스를 타고 있는데 옆에 있는 버스가 움직이면 내가 타고 있는 버스가 움직이는 느낌을 받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약속 시간이 되자 회원들과 차량이 속속 도착한다. 특히 이번 기행은 비용을 아끼기 위해 식사는 회원들의 요리솜씨를 발휘하여 해결하기로 했다. 그러다보니 짐도 만만치 않았다.


김성찬 회원의 차에는 최윤업, 장인숙, 이미순, 허영옥 회원까지 총 5명이 출발하고, 정영길 회원의 차에 박래녀, 김양채, 신동환, 황순영, 김영곤, 서창은 회원으로 총 7명이 출발을 하였다. 윤재환 회장의 차에는 한삼수, 이광두 회원 그리고 특별 출연한 향우문인 강명자 씨 등 총 4명이 타고 진주까지 가서 박현철 회원을 만나 곽향련 회원과 함께 박현철 회원 차에 환승하여 섬진강 휴게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렇게 총 18명이 차량 세 대에 나눠 타고 2009년도 보길도 문학기행을 나선 것이다.


어수선한 출발이었지만 의령에서 출발한 차량은 제각각 출발하여 제각각 이야기하면서 제각각 섬진강 휴게소에 도착할 것이었다. 혼자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썰물처럼 의령을 빠져나가는 일은 어쩌면 처자식을 남겨두고 돌아올 기약 없이 떠나는 나그네의 뒷모습을 보는 것처럼 처량한 일같이 느껴졌다.


가슴 속에 다져넣었던 설렘은 실타래에서 실이 풀려 나가듯 지나가는 곳마다 흘러내렸다. 설렘은 설렘으로 남아있지 않고 기억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희미해져 갔고, 설렘이 빠져 나가는 만큼 그 자리는 허전함으로 채워져 공허해졌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이 먼 길을 나선 것일까? 떠나는 것을 목적으로 떠난 것인지. 사람들이 그리워 순수한 만남을 목적으로 떠난 것인지. 행선지에 정해져 있는 것처럼 윤선도의 발자취를 더듬기 위해 떠난 것인지. 개개인의 마음에 들어가 보지 않은 다음에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차 안에서는 어느 누군가가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 소리가 듣기 싫어도 듣지 않을 재간이 없다. 귀를 막아도 들리는 소리를 온전하게 막을 수 없고 그렇다고 달리는 차에서 뛰어 내릴 수도 없다. 한 때 관광버스에 관하여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관광버스만 타면 어떻게 된 것이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신분 여하를 막론하고 트로트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마시기 싫은 술을 억지로 마시게 한다. 진정 뛰어내리지도 못하고 그야말로 요즈음 젊은 층에서 사용하는 인터넷 용어로 한 마디 하면, 즐! 하지만 의령문인협회 회원들이 함께 여행을 하면서 주고받는 이야기를 ‘즐'이라고 해서는 안 되겠지.

 


경상도를 벗어나면 서로 경쟁하듯 밀고 밀리던 차들이 어디로 갔는지, 신기할 정도로 고속도로가 한산해진다. 섬진강 휴게소는 의령에서 출발하여 약 100킬로미터 정도. 우리가 탑승한 차량은 제일 먼저 섬진강 휴게소에 도착한다. 맑은 하늘에서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햇빛이 눈부시다. 햇빛이 몸 속으로 스미고 몸은 스며들은 햇빛의 양만큼 땀을 밀어낸다. 엊저녁 과음 탓인지 햇빛의 무게에 눌려 어깨가 축축 처지는 기분이다.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

 

전라도로 가는 방향이어서 그런지 휴게소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다. 먼저 도착한 회원들은 커피를 마시면서 도착하지 않은 회원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휴게소에는 어디로 가는 사람들인지 행동들이 제각각이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 점심인지 아침인지 모를 음식을 먹는 사람, 담배 피우는 사람, 화장실을 드나드는 사람들. 사람 구경을 하고 있으니 김성찬 회원의 택시가 도착한다. 휴게소에 차들이 끝없이 밀려오고 밀려온 만큼 또 빠져나가는 형국이 모든 움직이는 것들의 움직이는 방식과 닮아있다.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간 음식물이 에너지로 발산되고 근육을 만들고 피를 만들면서 살아있게 하고 필요 없는 부분은 배설작용을 통하여 몸 밖으로 내 보내듯이, 연료를 채운 자동차들도 연료를 태우면서 바퀴를 돌려 차를 이동시키며 음악을 들려주고 배기통을 통하여 자동차가 움직이는데 필요 없는 배기가스를 내 보낸다. 사람들이 편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만들어 낸 것들은 몸의 움직임을 대신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진주에서 환승하여 출발한 박현철 회원 차가 도착하고 문학기행을 기념하는 단체사진을 찍은 후 다산초당을 향해 출발했다. 사진을 찍고 보니 우동/라면/김밥 문인협회 단체사진이 되었다. 다산초당까지는 약 130킬로미터 정도.


배꼽시계가 점심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리자 가는 도중 적당한 곳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도로변의 ‘다산꽃쉼터’라는 조그만 공원에 도착하여 회원들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 회원들이 속속 도착하고 두 평 남짓 비좁은 원두막 위로 올라가 사람들끼리 포개고 앉아 점심 보따리를 풀었다. 점심 메뉴는 김밥과 돼지머리 눌린 것. 그리고 덤으로 한삼수 회원이 집에서 가져온 김치이다. 모두들 김치맛에 반한 듯한 눈치다. 김밥에 딸려 온 단무지는 도무지 팔릴 생각을 하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니 큰 통에 가득 담아온 김치통은 어느새 반으로 줄어있었다.

 


신동환 사무국장이 특별히 준비한 포도주와 맥주를 섞어 마신 탓인지 다시 술기운이 돈다. 말 못해 죽은 귀신이라도 있는지, 말하기 경쟁이라도 하는 것인지 모두들 말이 많다. 커피를 한 잔 씩 마시고 각자 타고 온 차 속으로 기어들어가 대장차(윤재환 회장이 타고 있는 박현철 회원 차)를 선두로 하여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한다. 정영길 회원은 운전 때문에 마시고 싶은 술을 마시지 못한 모양이다. 개인 승용차로 문학기행을 하자는 결정에 공헌 아닌 공헌을 한 나로서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욱 미안한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럭저럭 다산초당에 도착했다. 정다산유적丁茶山遺蹟은 사적 제107호로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에 있다. 다산초당으로 가다보면 前 강진군수이자 다산초당지기인 윤동환 씨를 만날

수 있다. 윤동환 씨는 ‘다신계 전통찻집’이라는 차방을 운영하면서 초당으로 가는 사람들에게 다산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해 주고 있었다. 그의 저서로는 “삶 따라 자취 따라 다산정약용”과 “해설 목민심서”가 있다. 그의 말을 빌자면 정약용은 초기 18년 동안은 벼슬을 하였고, 두 번째 18년 동안은 이 곳 다산 초당에서 유배 생활을 하며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마지막 18년 동안은 고향으로 돌아가 저술에 힘썼다. 그의 방대한 저술활동은 그가 남긴 5백 여 권에 이르는 저서가 말해 준다.


무릇 사람은 통 트기 전에 일어나야 하고 기록하는 것을 생활화해야 한다는 정약용 선생의 말씀을 전하는 윤동환 씨의 이야기를 등에 업고 다산초당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초당으로 향했다. 초당으로 가는 길 옆에 다산의 제자였던 윤종진의 묘를 만날 수 있다. ‘다신계 전통찻집’을 운영하는 윤동환 씨는 윤종진의 증손

자라고 한다.


초당에 도착해보니 다산초당은 초당이 아니고 와당瓦堂이다. 하긴 이 바쁜 시절에 비용도 비용이려니와 초가집을 관리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가진 지식의 한계 때문에 다산의 향기를 느낄 수 없어 안타까운 심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기념사진을 찍고 천일각으로 이동한다. 천일각에서 바라다 보이는 곳이 구강포라고 한다. 그곳에서 아홉 개의 물길이 만나 바다로 스민다고 하여 구강포라고 한단다. 그곳은 탐진강의 끝이고 아홉 물길의 끝으로 이 강은 강진만과 만나 물은 비로소 바다가 되고 강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다에게 내어준다. 바다가 된 강은 바다가 되기까지 겪었던 숱한 역경을 바다에 풀어 놓는다. 강물과 바닷물이 섞여 온전한 바다가 되기까지 물은 바다와 겹치는 부분에서 자신을 열어 놓고 산산조각이 난 물이 바다에 스미기까지 인고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겹치고 겹쳐서 하나가 되기까지의 시간은 다시 태어나기 위한 숭고한 희생의 과정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보길도를 향해

 

아쉬움을 뒤로하고 땅끝마을로 향한다. 다산초당에서 땅끝마을까지는 45킬로미터 정도. 차는 부지런히 달려 땅끝마을 선착장에 도착했다. 우리가 타고 갈 보길도행 배는 5시 50분에 출발한다. 출발시간까지는 약 한 시간 남짓 남아 있었다.


전망대까지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갈까 생각했지만 모노레일을 타기위해 기다리는 데만 30분이 넘게 걸린다고 하여 걸어서 땅끝탑까지만 가보기로 했다. 땅끝탑에서 마주 보이는 곳이 진도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이내 돌아 나왔다. 정유재란 당시 조선 수군의 배 13척으로 왜선 133척을 부순 신화의 현장, 명량해전의 울돌목 전경을 보고 싶은 마음은 꿀떡 같았지만 아쉬움은 아쉬움으로 남을 뿐 갈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전투에서 죽지 않고 굶어서 죽고 병들어 죽은 병사들의 울음소리가 서쪽 끝에서 환청으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당시 사람들은 이 물목에서 짐승의 울음소리로 물이 운다고 하여 울돌목이라 불렀다고 한다. 지금은 울돌목이 세계적인 상용 조류발전의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올해 5월 14일 조류발전소 준공식을 가졌는데 그 규모는 가로 16m, 세로 36m, 높이 48m, 총중량 1,350톤에 시간당 1,000k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이며 앞으로 더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진도에는 명량해전을 기념하기 위한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기단부 15m, 동상부 15m로 총 30m의 규모로 세워져 있으며, ‘세계 속에 울리는 명량의 북소리’라는 주제로 명량대첩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동상의 규모를 보면 완도군의 청해진 옛터에 세워진 장보고 대사의 동상은 동상 높이가 15.5m이고 좌대까지 포함하면 31.7m로 동양 최대 규모라고 한다. 의령에는 임진왜란 당시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 홍의장군이 있다. 1970년대 각급 학교마다 세워진 방공소년 이승복의 동상은 전국에서 가장 많이 세워진 인물상이었다.


이제 지방자치제가 정착되고 있는 과정에서 의령관내 각급 학교에 홍의장군의 기마상이 세워진다면 그와 함께 그 분의 정신을 고양하는 일이 될 것이고 가장 지방적인 색깔을 찾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가장 지방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내친김에 함안에서 들어오는 의령관문 주변에도 완도의 장보고 대사의 동상보다 더 큰 규모로 정암진을 내려다보고 있는 홍의장군 기마상을 세워 놓는다면 그 옛날 정암진 전투를 상기시킬 수 있는 상징이 될 것도 같다. 새롭게 조성될 광장 주변으로 함께 왜적과 맞섰던 18장군의 동상과 의병동상들이 조화를 이룬다면 그 또한 진풍경이 아니겠는가? 또한 다도茶道를 통하여 신선이 되었던 곽재우의 다도를 경험하고 그가 남긴 37수의 시를 감상할 수 있는 찻집 거리가 들어선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드디어 보길도행 배에 오른다. 선착장을 떠나 배는 바다 한가운데로 나아간다. 배가 지나간 초록의 바닷물 위에 하얀 거품이 길을 만든다. 물결은 하얀 거품의 바닷길 옆에서만 출렁거리고 감히 거품길을 침범하지 못한다. 흰 거품길은 배를 따라 보길도까지 같이 갈 모양이다. 보길도까지 예정된 시간은 약 한 시간가량. 객실에 들어가 피곤한 몸을 기대고 쉬기로 한다. 그런데 배가 출발한 지 약 30분가량 지났을까? 배가 멈추고 전라도 말소리로 빨리 내리라는 고함소리가 들린다. 배가 고장이 났을까? 의심 반, 궁금증 반으로 배에서 내려 물어보니 종착점이란다. 둘러보니 노화도 선착장이다. 노화도에서 보길도까지는 노화대교가 연결되어 10킬로미터 정도 차량으로 이동하면 된단다. 노화도蘆花島의 노화는 갈대꽃이라는 뜻이다.

 

 

 

 

 

시원의 시간부터 한반도의 땅끝을 지키고 있는 바위의 얼굴은 차라리 무표정하다고 해야 옳을 것 같다. 무표정한 그의 얼굴에서 입은 굳게 다물어져 있다

 

 

 

문학의 밤은 깊어가고

 

미리 예약해 둔 완도군 보길도 예송리에 있는 ‘갯돌사랑’민박집으로 향한다. 민박집은 예송해수욕장 입구에 자리하고 있었다. 약 여덟 시간 동안의 긴 여정을 마치고 여장을 풀자마자 저녁 준비에 들어갔다. 저녁은 바닷가에 나가 삼겹살 파티를 하기로 했다. 상추와 깻잎을 씻고 된장국 끓일 준비를 하고, 15인분의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불을 올리고 모두 바닷가로 향했다

.
바닷가에 도착해보니 아주 특이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여태껏 바닷가에 있는 돌은 동글동글한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곳의 돌은 납작하고 반들반들했다. 해수에 쓸리는 방법이 다른 것인지, 바람의 방향이 다른 지역과 다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복잡한 생각은 일단 접어두고 우선 주린 배부터 채우기로 했다.

 


삼겹살이 익어가는 만큼 술잔도 익어가고 피로에 젖은 몸은 흐느적거리고 얼굴은 술의 양만큼 붉게 물든다. 제각각 이야기꽃이 피고 어느새 불을 중심으로 두 패로 나뉜다. 한 쪽은 숯불로 다른 한 쪽은 가스렌지 위에 프라이펜을 올리고 삼겹살을 구웠다.


어느새 해는 지고 해변에는 어둠이 짙게 깔렸다. 밤하늘의 별은 육지에서 보던 별보다 훨씬 가까워 보였고 선명했다. 북두칠성이 머리 위에서 선명했고 북극성은 모든 별들의 중심에서 별들의 중재역할을 하느라 힘이 부쳤는지 붉은색으로 희미해지고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마땅히 저러해야 하리라. 사람이 나이가 들면 양기가 입으로 올라온다고들 하는데 그럴수록 입을 굳게 다물고 북극성처럼 중용의 미덕으로 은은하게 빛나야 할 것이다.


특이하게도 언제부터인가 의령문인협회의 회의에는 회장 인사말이 없어졌다. 회장은 회장으로서 역할만 할 뿐 권위를 내세우지 말라는 의미에서였을 것이다. 시간과 비례하여 술은 취해가고 밤은 깊어 가는데 누군가가 문학기행을 기념하여 아무나 건배 제의를 하라고 했다. 아무도 일어나는 사람은 없어서 초대 회장인 김영곤 회원이 대표로 건배 제의를 했다. 모두 ‘위하여’를 외치며 컵에 있던 잔을 비웠다. 다음 순서는 특별출연한 강명자 시인에게 건배 제의를 부탁했다.


내친 김에 전부 돌아가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 건배 제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본의 아니게 건배를 핑계로 술을 먹이는 악역을 맡게 되었다. 다음 순서는 회원들 중에서 가장 연세가 많으면서 부처같이, 깊은 강물같이 모든 것을 다 품고 맑음으로 정화시키는 우리들의 영원한 큰 행님 최윤업 시인. 회원들의 안전을 책임지며 아무런 불평 없이 운전을 해 주셨고 언제 어디서나 유익한 정보를 폭풍처럼 쏟아내어 살맛나는 세상을 만드는 김성찬 시인. 뼈 속까지 스미는 술의 유혹을 물리치고 의령에서 보길도까지 손수 운전을 하였고, 시인의 향기에 화가의 멋으로 장식하여 여성의 눈길을 끌어가는 정영길 시인. 남다른 차림과 새로운 세상을 향해 젊음을 몸으로 추구하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년 박현철 시인. 그리고 도청에 근무하고 창원에 살면서도 기꺼이 자리를 해주신 말이 없으면서도 끊임없는 자신만의 웃음보따리를 간직하고 있는 황순영 시인. 작년까지 승합차를 운전하며 회원들의 문학기행을 빛내 준 윤재환, 한삼수 시인. 의령문인협회 회원 중 가장 목소리가 높은 자칭 귀염이 허영옥 시인. 가장 매력적인 멋으로 몸을 아끼지 않는 솔선수범의 표본 서창은 소설가. 어머니같이 누이같이 언제나 힘들 때 기대고 싶은 언덕 같은 박래녀 소설가. 긴 키와 미모에 영화배우 같은 차림으로 자신만의 가치를 높여가는 곽향련 시인. 노인이 되어 경로당에 살다가 비상 탈출하여 숙녀로 변신한 장인숙 시인. 술과 담배를 즐겨하면서 요즘 말 수가 무척 적어진 이광두 시인. 가장 젊기에 가장 많은 일을 묵묵히 해내는 착한 총무 신동환 시인. 항상 밝은 얼굴로 이것저것 챙기며 회원을 가슴으로 품고 가는 부회장 이미순 시인의 건배 제의를 마지막으로 모두 어깨동무를 하고 영원한 우리들의 노래 아침이슬을 부르면서 1부를 마무리하고 김영곤 회원의 사회로 2부 순서인 시낭송 순서로 들어갔다.


시낭송과 함께 특별순서로서 윤재환 회장의 기타연주 순서를 마련했다. 그동안 갈고닦은 기타연주를 듣고, 한삼수 회원의 하모니카 연주도 듣는 동안 술이 다 떨어지고 그만 자리를 이동하여 강명자 씨가 특별 후원한 양주파티를 하기로 했다. 강명자 시인은 그 외에도 그냥 참여하기가 부담스럽다며 금일봉도 찬조했다. 받는 우리가 더 부담스러웠으나 성의를 무시할 수가 없어 고맙게 받기로 했다.


시낭송 시간을 가지는 동안 소리 없이 사라진 몇 사람이 있었으니 박현철, 최윤업, 허영옥 회원이다. 낚싯대를 가지고 방파제 쪽으로 사라진 것이다. 3부 순서로서 다시 방으로 들어가 양주파티에 들어갔다. 양주를 가운데 두고 문학과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방향이나 문학에 임하는 태도 등 문학관련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토론의 시간은 술병이 비는 시간 까지. 시간은 흘러 술병에 별이 떨어지고, 낚시하러 간 회원으로부터 물 반 고기 반이라는 전화를 받고 회원들은 우루루 방파제로 몰려갔다. 토론의 시간은 진지한 가운데 진행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술과 함께 증발해 버렸는지 텅 빈 기분은 어찌할 수 없다.


해변의 갯돌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밤하늘의 별을 끌고 방파제 쪽으로 걸어가는 동안 다른 회원들은 차를 타고 방파제로 가버렸다. 카메라로 밤하늘의 별빛을 끌어 내리려고 했지만 가엾은 카메라는 별빛을 끌어당기지 못하고 막막한 어둠만 가득 담고 말았다. 머쓱해진 카메라를 주머니에 넣고 돌아보니 별 하나가 내려와 내 곁에서 걷고 있었다. 별과 함께 걸으며 몇 백 년 전 어느 캄캄한 밤바다를 홀로 걸었을 나그네의 고독을 생각해 보았다. 그 때도 별은 바다와 갯돌과 나그네의 어깨위로 무진장 쏟아져 내렸을 것이다. 감당할 수 없이 쏟아져 내리는 별빛으로 마음 깊숙이 엎드리고 있는 외로움을 달랬던 것일까. 세상을 모두 버리고 자유를 찾아 해변으로 왔지만 나그네는 자유를 찾지 못했다. 자유를 찾았더라면 먹을 갈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 모두 버리고 유유자적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모두 머리 싸잡아 매고 글을 쓰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방파제가 가까워지자 회원들의 고함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별과 함께 걷고 있는 나를 시기하는 회원들이 야유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방파제에 도착해 보니 서창은 회원과 정영길 회원이 가게 문을 두드려 꿈나라로 간 주인을 세상으로 데려와 술을 사왔고, 낚은 고기는 서창은 회원이 회를 뜨고 소주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날 밤 낚은 고기는 총 7마리. 하나도 남김없이 먹어치우고 잠자리로 돌아오려 했으나 차의 전조등을 켜 놓고 낚시를 하는 바람에 박현철 회원의 차 배터리가 방전되어 방파제 위에 차를 세워둔 채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해가 중천에서 고함지르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보니 박래녀 회원만 있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몇 명은 배고픔을 참지 못해 부두의 식당으로 가서 아침을 해결하고 돌아왔고, 몇 명은 민박집 뒷산으로 등산을 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한삼수 회원이 새벽에 일어나 등산 가자고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더란다. 덕분에 긴 잠을 잘 수는 있었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시 길을 떠나며

 

등산을 마치고 돌아온 회원들과 함께 바닷가로 나가 아침 식사시간을 가졌다. 아침 메뉴는 강명자 씨가 집에서 끓여 온 닭개장이다. 간밤에 숙취로 널브러져 있던 창자에 숨을 불어 넣는다. 집에서 끓여온 국을 생각하니 예전에 동인들과 함께 등산을 가면서 집에서 끓인 개장국을 가져갔던 생각이 난다. 모두들 하는 이야기가 등산을 가면서 개장국 끓여 오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고.


아침식사를 마치고 민박집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둘째 날 첫 목적지인 보족산(일명 뾰족산)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의 특이한 점을 꼽는다면 카메라를 가져 온 회원이 많다는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카메라는 한 두 명이 가져왔는데 이번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가져왔다. 모두 사진 찍느라고 분주했고 모든 관심은 사진 찍기에 집중되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하긴 옛말에 남는 게 사진 밖에 없다고 하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이번 기행에서 사진 찍는 일을 보고 “사진질”한다고들 했다. 어디를 가든지 사진 속에서도 ‘사진질’하는 모습이 찍힐 정도로 우리 회원들은 ‘사진질’에 열심이었다.


해안도로를 따라가다가 망끝전망대는 스쳐 지나고 우리가 도착한 곳은 보족산 아래의 공룡알 해변이다. 공룡알 해변에서 보족산을 바라보면 말 그대로 뾰족하게 바위산으로 솟아있다. 보족산 옆에는 울창한 숲이 조성되어 있는데 그 수종이 동백나무라는 회원도 있고 아니라는 회원도 있었다. 나무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기가 막히는 일이다. 이럴 때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공룡알 해변에는 공룡알이 없다. 공룡알 처럼 둥글둥글한 갯돌들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어쩌면 공룡알 화석이 무더기로 솟아 오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공룡알 해변을 돌아 나와 어촌후계자가 경영하는 젓갈전문집에서 회원 몇몇은 젓갈을 사기도 했다. 참석하지 못한 회원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참석하지 못한 회원 수만큼 말린 다시마를 샀다. 젓갈집에서 마주보이는 산을 쳐다보니 마침 해무가 산을 휘감아 돌아가는 광경이 펼쳐졌다. 산의 뒤쪽에서 원뿔형으로 솟은 산 표면을 핥으면서 휘감아 돌아왔다. 뒤쪽에서부터 돌아 나온 해무는 산의 앞쪽에서 무너져 내리며 안개가 되어 산 전체로 산개한다. 유월의 햇살이 덥힌 바다 표면의 물기를 안은 공기가 높은 산으로 치닫고 산의 높은 곳에서 차가운 공기를 만나 원뿔형 산의 표면을 핥으며 짓눌려 해무이면서 운무가 되어 산의 골짜기마다 겹쳐져서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한참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카메라를 들이댄다.


다음 목적지인 세연정으로 향했다. 세연정은 주변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라는 뜻이며 고산 윤선도 선생이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숨어살던 유서 깊은 곳이다. 병자호란의 국치와 추잡한 당쟁의 소용돌이를 피해 부용동의 아름다운 절승에 의탁하여 어부사시사 40수와 수십 편의 한시를 창작한 곳으로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학문에 몰두하고 제자를 가르치면서 세상의 근심을 잊었다. 그가 지은 어부사시사의 추사秋詞에서는 들은 말이 없으니 귀를 씻어 무엇할 것인가 하는 불우한 정객으로서의 비감을 노래한 심경을 읽을 수 있다. 어부사시사 중에서 추사秋詞 10수를 감상해보자. 현대어로 번역된 버전이다.

 


물외(物外)의 맑은 일이 어부 생애 아니던가
배 띄워라 배 띄워라
어옹(漁翁)을 웃지 마라 그림마다 그렸더라
삐그덕 삐그덕 어기여차
사철 흥취 한가지나 가을 강이 으뜸이라

강촌에 가을이 드니 고기마다 살쪄 있다
닻 들어라 닻 들어라
넓고 맑은 물에 실컷 즐겨 보자
삐그덕 삐그덕 어기여차
인간세상 돌아보니 멀도록 더욱 좋다

흰 구름 일어나고 나무 끝이 흔들린다
돛 달아라 돛 달아라
밀물에 서호(西湖) 가고 썰물에 동호(東湖) 가자
삐그덕 삐그덕 어기여차
흰 마름 붉은 여뀌꽃 곳마다 아름답다

기러기 날아가는 밖에 못 보던 산이 보이는구나
배 저어라 배 저어라
낚시질도 하겠지만 내가 취하려는 것이 바로 새로운 자연을 즐기는 흥취로다
삐그덕 삐그덕 어기여차
석양이 비치니 온 산이 수놓은 비단이로구나

커다란 물고기가 몇이나 걸렸느냐
배 저어라 배 저어라
갈대꽃에 볼을 붙여 골라서 구워 놓고
삐그덕 삐그덕 어기여차
질흙병을 기울여 바가지에 부어다고

옆 바람이 곱게 부니 다른 돗자리에 돌아
돛 내려라 돛 내려라
어두움은 가까이에 오되 맑은 흥은 멀었도다
삐그덕 삐그덕 어기여차
단풍잎 맑은 강이 싫지도 밉지도 아니하다

흰 이슬 내렸는데 밝은 달 돋아온다
배 세워라 배 세워라
궁전(宮殿)이 아득하니 맑은 빛을 누굴 줄꼬
삐그덕 삐그덕 어기여차
옥토끼가 찧는 약을 호걸에 먹이고 싶구나

하늘 땅이 제각긴가 여기가 어디메뇨
배 매어라 배 매어라
바람 먼지 못 미치니 부채질하여 무엇하리
삐그덕 삐그덕 어기여차
들은 말이 없으니 귀 씻어 무엇하리

옷 위에 서리 오되 추운 줄을 모르겠도다
닻 내려라 닻 내려라
낚싯배가 좁다 하나 속세와 어떠한가
삐그덕 삐그덕 어기여차
내일도 이리 하고 모레도 이리 하자

솔숲 사이 내 집 가서 새벽달을 보자 하니
배 붙여라 배 붙여라
공산낙엽(空山落葉)에 길을 어찌 찾아갈꼬
삐그덕 삐그덕 어기여차
흰 구름 따라오니 입은 옷도 무겁구나

 

 


세연정을 한 바퀴 돌아 내려오면서 세연정 정자를 뒷배경으로 하여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밖으로 나왔다. 점심때가 다 되었는지 모두들 배가 출출한 모양이다. 배 타러 가는 도중 적당한 장소에서 점심 식사를 할 것인지 아니면 이곳에서 해결할 것인지 의견을 주고 받다가 모두들 윤선도 선생의 마음이 깃든 세연정을 가슴 속에 더 깊이 새기고 싶었는지 다수의 의견이 세연정 주변에서 점심을 해결하자는 쪽으로 몰렸다.
회원들은 세연정 맞은편의 가게 옆의 평상을 차지하고 앉아 식사준비를 시작했다. 점심 메뉴는 라면이다. 아침에 먹고 남은 밥과 함께 먹으면 그런대로 해결될 것 같았다. 라면을 끓이면서 깻잎, 김치 등 갖은 재료를 넣었고, 윤재환 회장이 잡아온 바다고동과 게도 함께 넣어 끓였다. 그런대로 해물맛이 나는 기분이다. 라면을 다 먹어치우고 커피 한 잔 씩 마시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한다. 다음 목적지는 보성 녹차밭이다. 네비게이션으로 경로를 탐색해보니 길이 표시되지 않는다. 바닷길이니 도로가 없을 수밖에. 섬을 떠나기 위해서 우리는 동천항으로 간다. 출발시간은 오후 3시 30분. 한 시간 가량 남았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낚싯대를 드리워 본다. 

 


보길도를 뒤로하고 다시 배에 오른다. 배는 물살을 가르고 바다로 나아간다. 단절이란 이런 기분을 두고 하는 말인가.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 그래서 소통할 수 없어지는 관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단절도 단절이라고 해야 하는가? 마음속에 간직되어 있는 형상이 있어도 단절은 단절인가.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한 소통의 방법은 듣고, 읽고, 쓰고 말하는 것인데 듣고 읽고가 같고 쓰고 말하기가 같다. 의사소통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나의 경우는 대개 듣고 쓰는 경우가 많다. 읽고 말하기는 소리를 통하여 동적인 의사전달을 하지만 듣고 쓰는 것은 정적이다. 읽기와 읽기가 부딪히고 말하기와 말하기가 부딪힌다. 소통 없이 떨어져 있는 것만이 단절이 아니라 알아듣지 못하는 사나운 말을 주고받을 때 그것은 단절보다도 더 지독한 소통의 부재를 가져오지 않을까. 소통을 위한 말하기가 단절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듣고 쓴다고 해서 단절이 일어나는 경우는 결코 없다. 그래서 의사소통의 방법 중 듣기와 쓰기를 선호하는 것이다. 고산 윤선도는 보길도에 머무르면서 세상과의 단절을 원했던 것일까. 소통을 원했던 것일까. 그의 시는 사람의 마음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작업을 시도했으리라 생각한다. 자연이 신이고 신이 자연이니 자연과 소통이 되어 하나가 되었다면 그도 또한 신과 온전하게 소통할 수 있는 신선이 되지 않았을까?

 

 

 

다시 길이 시작되다

 

화흥포 선착장에 도착하니 다시 길이 시작된다. 완도읍을 통과하여 보성 녹차밭으로 향한다. 지난 2002년도 문학기행 당시 보성녹차밭과 율포해수욕장을 방문하기로 되어있었지만 날이 어두워진 관계로 눈으로 보지는 못하고 몸으로만 보고 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김영랑 생가를 방문한다는 것이 기행의 가장 큰 목적이었는데 아직 이른 봄이어서 그런지 모란은 피지 않았었고, 생가를 돌아 나와 신입회원 환영회를 겸해서 점심식사 시간을 가졌는데 그때 나온 소주 이름이 ‘천년의 아침’이다. 그 천년의 아침이 그렇게 달콤했을까? 아직도 그 소주의 맛이 입 속에서 맴도는 듯하다. 신입회원은 안영도 회원과 장동재 회원이었다. 지금은 활동이 뜸하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의령문인협회를 찾아줄 것이라 믿는다.


차밭으로 가던 중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정영길 회원은 벌써 배가 고프단다. 라면을 끓여먹자고 하는 것을 그냥 간단한 요기나 하고 가자고 했다. 지금 생각하니 나만 생각한 꼴이 되었다. 남아있는 라면이 5개였고 충분히 끓여 먹을 시간이 있었는데도 남을 배려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생라면을 부숴먹었으니 아주 참혹한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눈앞에 보이는 잘못된 현상이 나로 인한 것이었으니 비참함은 말로 다 나타내지 못할 상황이다.


어쨌든 차는 다시 출발하였고 녹차밭에 도착했다. 차밭까지 오르막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최윤업 회원은 차에서 기다려야 할 형편이다. 문학기행의 특성상 먼 거리를 이동할 때는 차를 이용하여 이동하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걸어서 구경을 하거나 체험을 하게 된다. 지난번 정기총회 때 이번 문학기행은 걸어서 국토를 순례하는 것이 어떠냐고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었다. 어쩌면 문인협회의 가장 큰 행사 중의 하나인데 회원 모두가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회원을 배려하지 못했던 나 스스로를 원망하며 곧 철회하고 말았지만, 그 여파로 이번 여행 내내 심기가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걸어서 움직여야 하는 장소는 대부분 오르막이어서 다리가 불편한 최윤업 회원은 혼자서 대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마음이 힘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삼나무길을 따라 걸으면서 처음 나무를 심었을 사람들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이렇게 큰 나무가 되기까지 가꾼 사람들과 죽지 않고 견디어 낸 삼나무가 대견스럽게 느껴진다. 이곳의 삼나무는 대략 수령이 50년 정도 된다고 하니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한 가지 나무를 심고 그 나무들이 자연스럽게 터널을 이루어 산책길이 되기까지 참고 가꾸어내는 것은 사람이 할 일이다. 지금 당장 그러한 풍경이 없다고 하여 큰나무를 옮겨 심어 인공적인 산책길을 만드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50년 이상 된 나무들이 줄지어 있는 산책길은 오랜 세월이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50년 동안 다녀간 사람들의 추억이 스민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고장에도 그러한 풍경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인공적으로 만들 수는 없는 일이고 50년 이후를 내다보고 지금 당장 착수한다면 그리 늦은 일은 아닐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이 들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하지 않았는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시간

 

녹차밭의 풍경은 사진으로 하도 많이 보아서인지 새로운 맛은 없다. 회원들은 녹차밭을 한 번 돌아보고 이내 돌아 나왔다. 녹차밭 기행을 끝으로 여행 일정을 모두 소화했다. 마지막으로 회원들 모두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메뉴는 벌교에서 유

명한 꼬막정식이다. 지금까지 손수 식사 준비를 하면서 아꼈던 비용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재미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모두들 별 말이 없다. 그동안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더는 할 말이 없어서일까? 식사를 마치고 섬진강 휴게소에서 한 번 쉬어가기로 했다. 바쁜 사람은 쉬지 않고 가도 좋다고 했다. 어찌된 일인지 모두 섬진강 휴게소로 집결했다. 헤어지기가 아쉬웠던 모양이다. 커피와 음료수를 나눠 마시고 이제 작별하여야 할 시간.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다. 김성찬 회원의 택시는 의령을 거쳐 신반으로 갈 것이고, 박현철 회원의 차는 진주까지 윤재환 회장 일행과 동행할 것이고, 다시 윤회장의 차가 의령으로 올 것이었다. 우리는 처음 출발지인 의령 충익사로 가속페달을 밟았다.


의령에 도착하니 밤 10시 45분 정도. 진주에서 환승한 회원들은 11시 정도에 도착했다. 싸늘한 밤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이틀 동안의 여정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어떻게 하면 일 년에 한 번 뿐인 문학기행을 모두가 편하고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지나가지만 건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두 편하게 하는 방법은 각자가 집에서 조용히 쉬는 것이고, 성격이 제각각인 많은 사람들이 같이 여행을 하는데 있어 즐거운 여행이 되고자 한다면 참는 것밖에 아무런 도리가 없다. 한 사람의 주장이 강하다보면 전체의 분위기를 흐리게 할 수 있다. 배려란 것은 무조건적인 참음이 아니다. 진정한 만물박사는 머릿속에 지식만 가득 찬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지식을 활용하여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도출해 내는 사람이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반복되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끔직한 일이지만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찾아 헤매지만 정작 자기 곁에 있는 사소한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은 외면하고 만다. 많은 일을 벌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기 보다는 한 가지 일이라도 마음을 다하여 할 수 있도록 애써야겠다. 나도 모르게 나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이 있는지도 돌아보아야겠고 정성을 다하지 못하여 하다가 그만 둔 일들도 찾아보아야겠다. 여행이라는 것은 일상을 잠시 떠나 일상을 되돌아보기 위해서다. 영원히 떠나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일상은 먼 곳에 있지 않고 떠남 속에 있다. 떠남 속에서 상처받은 일상은 치유되고 치유된 일상은 다시 일상으로 돌려보내진다. 이처럼 여행은 인간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새로운 시작을 가져다준다.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무리에 섞여 있을 때는 몰랐던 것을 무리에서 떨어져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일상을 탈출하고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을 찾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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