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에 도전한다고 하면 과장이 너무 심하다고 할 수 있고, 어쨌든 길을 떠나기로 작정했다. 어디로 가야할 것인지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생각 없이 무작정 떠나기로 하면서 나선 길이다. 2009. 3. 7. 토요일. 배낭에 캔맥주 3개, 김 3개, 매실주 약간, 물 한 병을 넣고 길을 나섰다. 천천히 걸어가면 힘든 일이야 있겠냐고 생각하면서 집을 나선 시간, 오전 10시 45분.
화창한 봄날을 느끼게 하는 햇살과 적당히 부는 바람에 발걸음은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듯 상쾌했고 산들산들 부는 봄바람과 함께 의령군 종합사회복지관 쪽으로 향했다. 의령읍을 벗어나는 방법은 동쪽으로 신반이나 군북 방향을 향해야 하고 서쪽으로는 가례면이나 화정면 방향으로 가는 방법이 있다. 대구 방향으로 갈 경우 의령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고, 군북은 자주 가 본 길이라 식상할 것 같은 생각도 들어 진주 쪽으로 가는 방향을 잡았다. 하리, 중리, 상리를 지나 화정 장박교를 지나간다. 자동차로 지나다닐 때는 몰랐는데 장박교를 지나니 포장마차가 있고 포장마차 주변에는 개를 사육하고 있었는데 내가 지나가니 잡아먹을 듯이 짖어댄다. 그 중 한 마리가 줄이 풀렸는지 나를 향해서 달려오고 있다. 모른체하고 지나가니 입술을 뒤집고 이빨을 드러내면서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하다. 돌을 집어서 던지는 시늉을 하니 눈 깜짝할 사이에 50m 쯤 줄행랑을 친다.
한참을 걷고 또 걸었지만 이정표도 없고 어디까지 얼마를 걸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안내표지판도 없다. 그럭저럭 시계바늘은 12시를 지나고 있었고, 집을 떠난 지 약 한 시간 30분 정도. 하지만 도대체 몇 킬로미터를 걸었는지 알 수가 없다. 길의 끝으로 가면 길은 다시 나타나는 것일까? 길이 끝나는 곳에서 지나온 길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밀려올 때 얼마나 아득해졌던가. 길은 대문 앞에서 끝이 났고 돌아오는 길은 대문 앞에서 시작되었다. 대문 앞에서 머뭇거리는 것은 대문을 넘어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집착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린시절 술래잡기를 하다가 막다른 골목 안의 굳게 닫혀있는 대문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던 기억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보았을 기억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계속 걸었지만 이상하게도 배고픈 줄은 모르겠다. 그렇게 지수면 사무소가 있는 면 소재지에 도착했다. 간이승강장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 승강장 안에 마련되어있는 의자에 앉았다. 사방이 고요하고 지나가는 사람도 없다. 도시의 혼잡스러운 백화점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데 국도를 따라 걷는 내내 논 갈고 있는 농부 몇 명을 보았고 가끔 차들이 지나갈 뿐 사람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면소재지라고 하지만 사람이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들판들이 봄이면 청보리의 푸른색으로 물들고 어느 순간 헐벗은 들판이 되었다가 어린모들이 줄지어 서 있는 논으로 변하고 여름이 지나면 어느새 황금빛으로 빛나는 들판이 된다. 벼 수확을 어떻게 할까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해 보지만 잠시 한 눈파는 사이에 들판에는 아무것도 없다. 여전히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모두 도시로 가버리고 농촌에는 노인들만 남아 뼈 속 깊이 박혀있는 흙의 향기를 토해내고 농작물들은 그 향기를 받아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말없이 흙과 소통하며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배낭에서 물을 꺼내 한 모금 마시고 점심 대신 맥주를 꺼내 마셨다. 허기는 해결되는 기분이다. 다시 일어나 걷다가 시계를 보니 집을 떠난 지 세 시간 정도. 이대로 다시 돌아가면 오늘 걷는 시간은 약 여섯 시간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같은 길을 계속 걷는 것은 신통치 않은 일이다. 군북IC 쪽으로 가서 태화휴게소를 지나 정암다리를 건너 돌아가기로 했다. 자동차로 다닐 때는 금방 도착하던 길도 걸어서 가는 길은 예상을 초월하여 멀고도 멀었다. 잠시 걸어가면 남강 휴게소가 나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가도가도 끝이 없다. 고속도로 8차선 확․포장공사 때문에 길은 먼지와 텀프트럭으로 가득했고 고속도로에는 어디로 가는 차들인지 쏜살같이 달리는 차들로 가득했다.
마침내 남강휴게소에 도착했다. 뒷문으로는 차는 들어갈 수 없고 사람은 드나들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진주에서 마지막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가끔 들렀던 남강휴게소는 밤기운이 내려 쓸쓸했고 고독한 사람들은 말없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휴일이어서 그런지 휴게소에는 사람들로 벅적거리고 있었다. 자동판매기에서 커피를 한 잔 빼들고 의자에 앉아 신발을 벗어보니 양말이 발에 들러붙어 엉망이 되어 있었고 이미 다리와 골반은 제각각 놀고 있었고 더 걸어가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발바닥에는 불이 난듯했고 어쩌면 이미 물집이 생겼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담배를 피우며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배꼽 아래쪽의 살과 뼈는 나의 것이 아닌 것처럼 제멋대로 굴었다. 다시 맥주를 꺼내어 김과 함께 씹었다. 맑은 하늘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많이 마시면 움직이지도 못할 것 같은 생각에 약간의 마취효과만 누리기로 했다. 이 상태에서 휴게소에서 풍기는 갖가지 음식 냄새는 나와는 멀리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입 안은 모래를 씹은 것처럼 버석버석했고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그 옛날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 천리를 걷고 걸었던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걸었을까? 그리고 낙방 후에 다시 돌아오는 길은 그 얼마나 처량하고 허무한 길이었을까? 그 길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일들이 전설의 고향을 만들었고, 그러한 이야기들은 낙방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짐작케 한다.
2009년도 의령문학기행에 대해서 올 초에 환경도 생각하고 비용도 절감할 겸 걷기 여행을 하면 좋겠다고 제안을 한 바 있었다. 하루 동안 걸을 수 있는 만큼 걸어가서 적당한 곳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다시 걸어서 돌아오는 것으로 문학기행을 한다면 참으로 유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회원 중에 걷기가 불편한 회원이 있다는 것을 깜박했고, 만약 도보 여행을 강행할 경우 다리가 불편한 사람은 오지 말라는 일방적인 통보가 되어 버린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곧 없었던 일로 하고 말았지만 혼자서라도 걷기 여행은 꼭 한 번 해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던 터였다.
휴게소에서 약 30분가량 쉬었다. 시계는 오후 3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도대체 이 길을 걸어야하나 말아야 하나? 무엇 때문에 이 길을 걷고 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떤 일을 하다가 갑자기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를 망각해버리는 순간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 어쩌면 왜 사는지조차 의심이 갈 때가 있다.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자기 의사와 반하여,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들과 많이 부딪힌다. 직장 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절대적인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필요에 의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도 너무 많으면 살아가는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는 현상이 일어난다. 친구가 좋아서 모임을 만들고 그 모임이 자꾸 늘어나게 되면 친구를 만나는 것보다 모임을 위한 모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많은 시간을 걷다보니 이 길을 걷는 목적을 망각한 셈이다. 택시를 타고 갈까? 조금 더 걷다가 버스를 타고 갈까? 온갖 갈등이 밀려왔지만 몸은 이미 길을 걷고 있었다. 군북IC 주변에 있는 태화휴게소까지 그렇게 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길도 만만치 않았다. 이제 몸에 대한 모든 것을 잊고 산을 보며 길을 따라 정처 없이 걷는 것밖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다. 나의 발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이렇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지금 다리가 아픈 것은 그만큼 걷기를 소홀히 했었고 멀지도 않은 장소로 이동할 때도 자동차에 의지해 움직였기 때문일 것이다. 무작정 지리산으로 떠나 2박 3일 동안 잠자는 시간과 끼니를 해결하는 시간만 빼고 산길을 걸었던 때를 생각해 보면 세월 속에서 너무 나태해져 버린 나를 질책하는 것밖에 탓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저 멀리 군북 I.C 1㎞라는 고속도로 이정표가 보인다. 낯익은 장소라 그런지 반가운 기분이 든다. 태화휴게소를 지나 학창시절 통학을 할 때 버스가 지나다니던 길을 걷기로 했다. 길가의 코스모스는 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파도처럼 흔들렸고 버스는 다시 그 파도에 떠밀려가는 듯 했다. 4차선 우회도로가 생기면서 이젠 차들도 거의 다니지 않고 사람들도 다니지 않는 쓸쓸한 길이 되어 버렸다. 간간히 의령과 마산을 왕복하는 노선버스가 지나간다.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버스가 뿌옇게 되도록 담배를 피워대던 날들이 생각난다. 요즈음 같으면 맞아 죽을 일이겠지만. 그 때는 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마치 의무적인 일처럼 생각한 것 같기도 하다.
집이 가까워지는 만큼 쉬는 시간도 많아진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도 자꾸 쉬고 싶다. 길가에 우두커니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으니 지나가는 자동차들이 나를 쳐다본다. 터벅터벅 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주황색으로 칠을 한 옛 정암다리가 보인다. 솥바위가 제방과 가까이 붙어있어 운치가 없다. 초등학교 시절, 솥바위까지 걸어와서 낚시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곤 했는데 지금은 제방 때문에 솥바위가 쓸쓸한 독방에 갇힌 죄수 같은 느낌이 든다. 관문 옆에는 산을 들어내느라 분주하다. 의령으로 들어오다 보면 관문 오른쪽 산은 관문 지붕과 비슷한 높이만큼 들어낸 상태다. 왼쪽 부분도 들어낼 것이라고 한다. 재해 위험지구라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오지만 애초에 관문이나 도로를 설치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었더라면 어떠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 옛날 홍의장군이 왜군을 교란시키면서 승리를 이끌어낸 정암진 전투장면이 스쳐지나가는 듯하다. 도로도 없고 관문도 없었던 그 시절 병사 한 사람이 횃불을 서너 개씩 들고 병사가 많은 것처럼 교란을 시켰던 그 장소. 차라리 산을 절개하지 않고 터널을 뚫었으면 어떠했을까? 산의 형상을 그대로 두고 그 옛날의 정암진 전투를 생각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산 위에서 북을 치며 함성을 질렀던 그 장소는 이제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개발이라는, 주민복지라는 이데올로기로 자연은 훼손되고 가진자들의 정치적 이상은 정당화된다. 모든 것은 정부에서 해야만 하고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하는 일들은 성공할 수가 없다. 성공하는 듯 보이지만 곧 망하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문화예술 진흥을 위하여 민간 주도로 붐이 일어나야 하는데 정부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으니 민간은 어디에도 끼일 곳이 없다. 정부 주도적으로 공연장을 만들고 복지회관을 만들어 의식개혁을 하듯이 강제적으로 문화예술을 보급한다.
황석영은 소설 개밥바라기별의 주인공 준을 통하여 이야기한다. ‘자유로운 독서와 학습 가운데서 창의성이 살아난다고도 합니다. 결국 학교교육은 모든 창의적 지성 대신에 획일적인 체제 내 인간을 요구하고 그 안에서 지배력을 재생산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지배력의 재생산을 위해서는 정해진 틀 속에서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보이지 않는 철창을 쳐 놓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과연 어떤 철창 속에서 나부대고 있는 것인지?
저 멀리 의령공설운동장으로 이어지는 공단교가 보인다. 화창했던 날씨가 흐려져 있다. 서쪽하늘이 어둑어둑하다. 다리는 이미 마비상태다. 생각과 다리는 따로 움직인다. 집에 도착해보니 다섯 시 오십 분이다. 집을 떠난 지 거의 일곱 시간째다. 그동안 점심때가 되었는데 어떻게 할 거냐고 집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은 것 빼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생각만으로 이렇게 긴 시간을 보낸 것에 대하여 만족감을 느낀다. 말을 많이 하는 것도 일종의 소유에 속한다. 말을 통하여 남의 관심을 얼마나 많이 소유하느냐에 따라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결국 욕심과 직결될 것이다. 말이란 것은 많이 하면 할수록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그 오해를 풀기위해서 또 얼마나 많은 말이 필요했던가?
얼마나 걸었을까?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알아보았다. 집에서 장박교를 건너 지수면사무소까지 11.463㎞, 지수면사무소에서 남강 휴게소를 지나 군북IC까지 8.142㎞, 군북IC에서 집까지 7.687㎞ 총 27.292㎞를 걸었다.
몸을 학대한 죄로 온 몸이 불덩어리다. 몸살기운도 없고 콧물도 흐르지 않았지만 속에서 일어난 불이 바깥으로 쏟아져 나오는 기분이다. 거울을 보니 눈동자까지 벌겋게 달아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제대로 걸음이나 걸을 수 있을까? 걱정 반, 포만감 반으로 잠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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