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
무슨 일이든 주어진 일이 있으면 그것을 완료하기 위하여 어떤 식으로든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것이 얼마나 급박한 것인가 아닌가에 따라서 움직임 또한 빠르기도 느리기도 하다.
어느 일요일 낮에 빈둥빈둥 굴러다니다가 낮잠을 자고, 잠이 깨면 무의식이 시키는 대로 텔레비전을 켜고 내용도 모른 채 멍하니 지켜보는가 하면, 컴퓨터 오락에 빠져 시간을 죽이기도 한다. 실로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도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빈둥거림은 과연 무엇일까? 정신이나 몸의 어느 부분에서 간절하게 휴식을 원했기 때문에 스스로 빈둥거리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지만 알 수 없는 이러한 빈둥거림을 자연적인 현상으로 봐주는 것은 시간에 대하여 무책임한 자신을 합리화 시키는 것 외에 무엇이란 말인가? 어떤 사람은 일주일에 한 권의 책을 읽고 어떤 사람은 일 년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고 할 때 그 두 사람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당연히 책을 많이 읽은 사람에게 손을 들어 줄 것이다. 책 속에서 간접 경험을 해도 많이 했을 것이고 책 속에서 자신을 가다듬을 수 있는 이야기도 많이 읽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가 얇은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신념을 슬그머니 버리기도 한다.
우리들은 간접적인 경험을 통하여 많은 현상들을 경험할 수 있다. 진실이라고 생각되었던 현상이 어느 순간 거짓으로 바뀌는 것들. 이러한 무수한 변화 위에 놓여 있는 사회현상에 의하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생각이 바뀌어져 가고 있는 것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위 진리라고 이야기하는 많은 부분들이 사실은 어떤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라는 가면을 쓰고 몇 천 년을 이어오면서 사람들을 지배해 왔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자동차는 오른쪽으로, 사람은 왼쪽으로 가라는 약속은 사람이 오른쪽으로 가게 되면 제재를 하겠다는 이야기다. 혼잡을 막고 보다 질서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편이기는 하겠지만 빨리 가고 싶지 않는 사람도 빨리 가게끔 하는 논리는 아닌가?
세상에 태어나 천천히 가며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찾아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어느 누군가가 정해놓은 틀에 의해서 가기 싫은 길도 억지로 가야한다면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너무도 빠르게 변화하면서 의혹에 싸여있는 사회에 속수무책으로 놓여있다. 잘못이라고 규정된 틀 때문에 아무 잘못 없는 사람들이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간 것은 아닐까?
새벽 어스름 속으로 떨어지는 별과 함께 그 누군가를 생각하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스무 살에 대하여, 철없던 시절 철없이 뱉었던 말로 상처 입힌 가슴에 대하여, 죽어도 용서받지 못할 내가 저지른 죄에 대하여 투명하고 선명한 정신으로 생각해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나 자신을 용서하고 그들을 용서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은 것이다. 그들에게 잘못한 나를 용서하는 날, 나에게 잘못한 그들도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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