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월을 시작하는 첫날. 지리산 둘레길로 지정해놓은 길은 아니다. 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에서 시작하여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공원에서 시작하여 고동재까지 걸어서 수철마을로 걷는 것이 아니라 고동재에서 오른쪽 임도로 들어가서 오봉계곡을 따라 내려와 다시 추모공원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거리는 약 13km정도 될까. 휴가기간이라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섰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데 물소리는 여전하였으나 더위 때문인지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상사폭포까지 가서야 아들을 데리고 길을 나선 중년의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상사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시원하게 보였으나 손을 담궈보니 그렇게 차갑지는 않았고 장기간의 가뭄으로 인하여 물의 양도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은 어디에서 생긴 것인지.
자연의 신비는 신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 항상 계곡의 물을 생각할 때 일정하게 흐르는 저 물이 일정한 두께로 흘러내려 가는데 산에 숨겨져 있는 물의 양은 도대체 얼마나 되는 것일까? 비를 받아서 품고 있다가 서서히 흘려보내는 물이라고 하지만 도대체 그 양을 짐작할 수 없다.
국수, 막걸리 등을 팔고 있는 가게. 안을 들여다보니 서너 명이 앉아서 국수를 먹고 있었다.
쌍재를 지나 숲길을 접어드니 호젓한 기분이 든다. 둘이서 걷는 길을 방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연리지라고 하나. 두 나무가 너무 그리워하여 자라면서 하나가 된다는 이야기. 이 나무를 볼 때 한 나무에서 뻗어나와 너무도 갈등이 심하여 저렇게 세 갈래로 뻗어 나가는 현상을 무엇이라고 해야 하나. 이 구간을 걸으면서 자주 저런 현상을 볼 수 있다. 서로 옳다고 우기면서 반만년 동안 끊임없는 투쟁을 벌이고 있는 정치판을 상기시켜준다.
계곡은 이미 사람들로 진을 쳤고, 아이들을 지켜보는 부모들의 모습은 지루하게 느껴졌다.
시원한 계곡의 물소리도 뙤약볕을 걷는 사람에게는 와닿지 않는다. 섭씨 35도에서 38도를 넘나드는 더위의 한가운데를 마냥 걸어가는 사람.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무상무념. 그것이 걷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아닐까.
세족식. 열을 받아 뜨거워진 발을 식힌다. 계곡의 물은 그렇게 차지 않다.
저 물과 같이 어디론가 끝없이 흘러갔으면.
국군에 의해서 학살된 주민들. 누구를 위한 전쟁이며, 누구를 위한 희생인지.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더란 말인가.
방곡마을 주민 희생터를 알리는 비석만 쓸쓸하게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학살은 일어나고 있지 않을까. 서로 죽이고 살리고 끝없는 전쟁 속에서 무지몽매한 사람들은 그저 희생될 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