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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흔적

경주 양동마을

by 1004들꽃 2012. 8. 3.

8월 2일. 휴가가 저물어가는 나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양동마을을 찾았다. 

 

 

 

 

 모두 둘러볼 수 없어서 7코스를 돌기로 했다. 약 두 시간 정도 소요되는 길이다. 

 문화관에 들어서면 마을 전체를 보여주는 사진이 방문객들을 반긴다.

 마을에 있는 집들은 대개 "ㅁ"자 형태다.

 

 

 양동초등학교 교정에서는 개관식을 기념하여 공연이 한창이다.

 기와집, 초가집들

 

 7코스를 선택하여 처음으로 가는 길. 서백당. 그리고 무첨당, 향단, 관가정을 둘러보기로 했다.

 서백당으로 가는 길에 사람이 살지 않은 듯 비어있는집. 한창 수리를 하고 있는 모양인지 어수선하다.

 

 한참을 올라가 서백당 앞에 선다.

 

서백당은 안골 중심의 산중턱에 자리잡은 규모와 격식을 갖춘 대가옥으로 양민공(襄敏公) 손소(孫昭, 1433~1484)공이 성종 15년(1454년)에 지은 월성(月城) 손씨(孫氏)의 종가이다. 서백당(書百堂) 또는 송첨(松詹)이라 부르며, 서백당(書百堂)은 하루에 참을 인(認)자를 백번 쓴다는 뜻이며 근래에 와서 굳어진 당호(堂號)이다.

 마당의 향나무는 거의 500년이나 된 것 같다고 한다.

 내려오는 길에 이색적인 담장. 솔가지를 깔고 그 위에 항토로 마무리했다

 배롱나무는 더위에도 불구하고 꽃을 피운다.

 기와집과 집들 사이에 초가도 제법 있다. 가난한 양반들은 기와집을 지을 수 없어 초가집을 짓고 살았다.  

 무첨당 가는 길이다.

 

 무첨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부친인 성균생원 이번(李蕃)공이 살던 집으로 1460년경에 지은 여강 이씨(驪江 李氏)의 종가이다. 무첨당은 이언적 선생의 다섯 손자 중 맏손자인 이의윤(李宜潤)공의 호이며 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한다는 뜻이다.

 

 주춧돌의 향상은 자연 그대로의 돌을 사용했다. 돌의 향상에 따라 나무를 깎고 기둥으로 세웠다.

 

 오른쪽 벽에는 대원군이 집권 전에 이곳을 방문해 썼다는 죽필(竹筆)인 좌해금서(左海琴書)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영남(左海)의 풍류(琴)와 학문(書)’이라는 뜻이다.

 

 

 

 

 

 

 향단. 향단은 양동마을의 여러 가옥 중 규모 면에서 가장 크고 지형적으로는 마을의 풍수 지형인 ‘勿(물)’자의 가장 앞자리에 위치해 있다. 아쉽게도 문이 잠겨있어 들어가보지 못했다.  

 관가정(觀稼亭).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보듯이 자손들이 커가는 모습을 본다는 뜻이다.

 

집들에는 향나무가 있는 것이 특징인데 대부분 집을 지으면서 향나무를 심었나보다. 향나무는 병원균의 온상이라고 집안에는 잘 심지 않는다고 하는데. 어느 것이 맞는지 알 수 없다. 

마을 대부분의 집들은 잠겨있었다. 내부를 볼 수 없었고 겉모양만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어쨌든 고가를 이렇게 보존할 수 있도록 힘쓴 자손들에게 고맙다고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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