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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흔적

자전거길, 자굴산

by 1004들꽃 2012. 7. 8.

2012. 7.7 자전거길, 7.8 자굴산

 

남산천은 남산을 받아내어 물그림자를 만든다. 눈으로 보아서는 이렇게 드러난 윤곽을 보기가 힘들다. 물에 비춰지면서 스스로 윤곽을 만드는 것이다. 멀리 의병박물관의 모습이 보이고, 자전거길은 백야에서부터 가례까지 이어진다. 하천변으로 이어진 길은 여름의 푸른 숲길을 걷고자하는 사람들에게 풍요로움을 준다. 여름에는 집안에 있어도 더위를 피하기 힘들고 차라리 나서는 것이 올바른 피서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천의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다리. 올해 의병의 날에 앞서 만들어진 것이다. 다리를 건너 곧장 걸어가면 의병박물관으로 갈 수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홍의정 자리, 활을 쏘는 곳이었는데, 박물관으로 변신을 했고 옆의 충익사와 연결되어 의병 테마를 만들어 낸다.

하천가에 먹이를 기다리는 왜가리 한 마리. 너무 투명하지도 않은 물에는 산의 모습이 보다 뚜렷하게 투영된다. 이파리의 모습과 굴곡 부분이 선명하다. 왜가리는 떼를 지어 다니지 않고 저렇게 항상 혼자서 고독을 씹는다. 의령의 하천가에는 저런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올여름에만 특별하게 개망초가 많이 핀 것일까. 지금 들판엔 온통 개망초로 만발하다. 그동안 여름의 들판을 관찰하지 못한 탓일까. 올해는 유난히도 가는 곳마다 개망초 모습이 눈에 띈다. 자전거길은 꺠끗하게 정비되어 있지만 그 옛날 초등학교시절 경운기가 지나 다니던 제방이었다. 그 길을 자전거를 타고 혹은 걸어서 의령에서 서산밑으로 물놀이를 가곤 했던 시절. 나무 한 그루 없는 땡볕을 땀을 뻘뻘 흘리며 오고갔던 길이 이렇게 나무와 양탄자같은 우레탄 길로 바뀌었다.둑길을 걸어서 갔다 다시 돌아오는 길은 똑같았고, 단지 물 속에 있는 시간만 시원할 뿐이었다.

개망초 흐드러진 호젓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기분, 걷다보면 어느새 걷고 있다는 생각을 잊어버린다. 발걸음은 그저 스스로 가는 것이고 눈은 카메라 줌을 당겼다 밀었다 하는 듯 혼자서 바쁘고 몸은 자연 속에서 자연이 된다. 기분좋게 흐려진 여름의 한낯 풍경이다.

다음날 흐린 날씨를 머리에 이고 자굴산을 찾았다. 날씨는 맑다고 하였으나 아직 덜 깬 아침이어서 그런지 시계는 거의 10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산은 아직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기지개를 켤 준비를 하는 중이다. 실로 오랜만이라는 말이 걸맞겠다. 거의 한 달 정도만에 산을 찾았다. 길가에서 패랭이 꽃이 반갑게 맞이한다. 한 송이는 시들어가고 한 송이는 활짝피었다.

흐릿한 산길은 한여름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안겨준다. 앙상했던 나무들은 어느새 초록의 옷으로 바꿔 입고 사람들을 반긴다. 빈 하늘은 하늘색이 아니고 흰빛으로 물들어 있다. 그렇다면 비어있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청명한 하늘색일 때 비어있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면 하늘은 여태껏 한 번도 비어 있질 않았다는 것이다. 시어로 "빈하늘"이라는 단어를 선택할 때 무슨 마음으로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오롯이 비어 있는 마음에서 선택할 수 있는 시어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도 그 비어있음이란 도대체 어떤 상태인지?

지난 비바람에 무너졌을까. 소원성취탑은 한귀퉁이가 흘러내리며 무너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소원이 무너져 내렸다는 것인데 산신도 너무 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기엔 벅찼던 모양이다.

이파리에는 물기가 머물러 있고, 짙은 안개와 아침이슬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숲속에는 이처럼 물기에 번득이는 잎들이 소리없이 흔들린다. 바람도 불지 않는 숲속에서 그 움직임을 감지하기란 쉽지 않다. 조용한 숲속에서 눈을 감고 자연의 소리를 들어보라. 한 때 산에 오는 사람들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다니는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래, 산에 왔으면 산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어야 마땅한 것이 아닌가. 미세한 그 울림이 가슴을 뚫고 지나간다.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리면 산은 온전하게 가슴 속으로 들어온다. 

외로운 꽃 한 송이 안개를 등지고 산길을 걷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가 바라보는 것인지 내가 바라보는 것인지. 아직도 꽃의 언어를 들어보지 못했지만 꽃은 스스로 태어나 스스로 생각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것이다. 어쩌면 지나는 사람들에 따라그 생각들은 수시로 바뀔지도 모른다. 꽃만이 알고 있는 그 수없는 생각들.

단픙잎에도 아직 이슬은 머물고 있다. 후레쉬가 터져서 더욱 빛을 발한다.

목조 계단에도 안개가 내려와 저쪽 끝은 아련하게 손짓을 하는데

아마도 산수국이지, 바람덤으로 가는 길목엔 옹기종기 꽃들이 모여있다. 

저 멀리 안개 속에 묻힌 산들은 나그네들의 마음을 울적하게 만든다. 비오듯 떨어지는 땀을 씻을 수 있는 곳. 잠시 쉬면서 담배 한 대 피운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곳. 그곳에서 담배연기는 안개와 하나가 되고 차라리 보이지 않는 저 먼 곳은 그대로 안개 속에 있었으면 좋겠다.

예상외로 정상에는 안개가 희미하다. 미리 짐작하여 안개 속에 파묻힌 표지석을 생각했는데 시야에 들어온 표지석은 그야말로 청명하다고 해야 할까? 예상 밖의 일이라 당황해서인지 사진의 한 귀퉁이가 시퍼렇게 멍들었다.

꽃과 하늘.

산의 중턱까지는 그래도 안개에 덮여있는데

산을 다 내려오니 햇살이 반긴다. 숲은 햇살로 빛나고 사람들의 마음에도 한 줄기 햇살을 전해주는데, 어쩐지 내려가기 싫은 마음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실없이 담배를 붙여문다. 그저 이렇게 산속에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인지. 세파에 던져져서 하고싶지 않는 일들을 해야만 하고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상처주는 일들을 해야만 하는 세월들이 야속하다. 어느 순간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시간들, 그 시간들의 연속선상에서 세월은 줄기차게 뻗어가고 있을 뿐이다. 
산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할 것이라는 국가의 정책은 어디쯤 오고 있는 것인지. 아무도 없는 산중에서 땀을 씻으며 담배연기를 뿜어내는 것은 잠시나마 피로를 씻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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