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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제비를 기르다/윤대녕

by 1004들꽃 2009. 2. 24.

윤대녕의 소설집 “제비를 기르다”는 8편의 소설로 구성되어있다. “제비를 기르다”에서 어린 시절 누구나 겪었을 법 싶은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초등학교 때 첫눈에 반해버린 여선생님이 아니라 주인공 형우는 어린시절 아버지를 따라 작부집에 갔다가 만났던 문희를 35년이 지난 어느날 노파가 되어버린 첫사랑을 만나 긴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나그네처럼 쏟아져 내리는 눈물로 그간의 고독을 씻어내고 있다. 살아가다 고독이 엄습해 올 때 문득 생각나는 일들. 갑자기 만나고 싶은 사람. 하지만 찾을 수 없는 사람. 모두들 마음속에 문희를 한 명씩 숨겨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탱자”에서는 폐암진단을 받은 한 여인의 마지막 여행을 그렸다. 모든 가족이 차별하는 가운데 살갑게 대해주었던 조카를 찾아가 그동안의 인생여정을 회고하고 있다. 가족이란 가장 가깝지만 때론 가장 먼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편백나무숲 쪽으로”도 가족이야기다. 35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다. 손녀 밖에 없는 백부에게 나타나는 대를 이어야 하는 강박관념과 그 백부의 양자로 입양된 찬영의 아내와 아들, 그리고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던 찬영의 아버지. 결국 아버지를 찾기 위해 편백나무 숲으로 가는 찬영. “…… 거기에도 없다면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이다.”라는 백부의 말에 찬영은 “……그래도 그 숲 어딘가에 계시겠죠?”라고 이야기한다. 35년 만에 만나게 된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가 아닐까. 천주교에서 물로 세례를 받듯이 편백나무숲으로 가는 시간, 비가 내린다.

“고래등”에서는 왠지 가장의 고독함을 엿볼 수 있었다. 허름한 전셋집을 전전하던 가장이 어느 순간 남들이 보아도 번듯한 집을 가져야겠다는 결심을 했는지 식구들에게 빠듯한 생활비만 주고 모은 돈으로 집을 지었지만 아들에게 밝히지도 못한다. 다 된 밥을 밥상에 차려 놓고 먹는 것보다 모두 힘을 합쳐 만든 밥을 즐겁게 먹는 것이 보다 행복한 삶이 아닌가 느껴진다.

살아감에 있어 상처는 언제나 흉터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못구멍”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끊어진 줄은 다시 묶어도 매듭이 남게 마련이죠” “박힌 못은 빼 내더라도 그렇게 자국이 남게 마련이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같이 살아가는 가장 가까운 사람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적은 없는지? 못을 박은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 못을 계속 흔들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낙타 주머니”에서 볼 수 있듯이 그 모든 아픔을 시커먼 낙타 주머니 속에 팽개쳐 버리고 아무 일 없는 듯 태연하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3년 만에 출간되는 윤대녕의 소설집을 새해들어 만날 수 있어 즐겁다. 전체적으로 생의 모습들을 과장되지 않게 잔잔하게 표현하고 있다. “편백나무숲 쪽으로”에서 결코 만나지 않겠다던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것은 혈육이 끌어당기는 힘일 것이다.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지금껏 살아왔던 나의 가족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이제 음력 “설”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런 시기와 맞추어 출간 된 것 같다. 무뚝뚝하며 말이 없지만 그림자처럼 집안의 기둥 역할을 하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