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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그곳에는 눈물들이 보인다

by 1004들꽃 2009. 2. 24.

이상섭의 소설집 단편소설 7편을 읽고나면 어디서인가 많이 보아왔던 풍경들이 스쳐 지나간다. 아직 한번도 경상도가 아닌 곳에서 살아보지 못한 나에게 소설 속에서 이야기하는 경상도 사투리가 정겹게 들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상황과 함께 시장바닥 이야기(그곳에는 눈물들이 모인다)라든지 외국인 근로자 이야기(수평선, 그 가깝고도 먼) 등 낯익은 풍경들이 소설 읽기에 집중하게 만든다.

하지만 맨 처음 대하는 작품 “자장가”에서 매일 쓰는 경상도사투리가 이렇게도 어려운 것인가를 실감하게 되기도 하였다. 대부분의 책에서 맞춤법에 맞는 글을 대하는 것이 버릇이 되었기 때문이었는지 글로 풀어져 있는 경상도사투리가 낯설게 느껴진 것이다. 소설의 내용이 벙어리 어머니에게 하는 혼자만의 넋두리가 전부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소설의 전체적인 모습은 자본주의사회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해결점은 단편 소설의 특징상 독자들에게 남겨 두었는지도 모른다.

“고추밭에 자빠지다”에서 마지막 부분은 눈에 가시 같았던 시동생의 아이를 자기 엄마에게 보내면서 그것도 대신 데리러 온 이모에게 딸려 보내면서 따뜻한 밥 한 끼 먹이지도 못하고 고추밭에서 이별하게 되는 시원섭섭하면서도 “뭔가 꼬여버린 이별”같은 인간적인 면이라든지, “여태 입닫고 호칭 한번 않”던 조카가 “큰어매!” 하면서 이모에게서 도망쳐 달려와 그녀의 품속에 안겨버리는 장면 등에서 ‘드는 정’이 참으로 무섭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쩌면 텔레비전 등에서 보았던 장면을 연상시킬 수 있어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바로 인생은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인지 “그러나 머리 위에 매달린 고추를 보는 순간 또 눈앞이 아득했다.” 라는 말로 소설은 끝을 맺고 있다.

“그곳에는 눈물들이 모인다”에서도 도시에서 온 호리호리한 새댁이 시장바닥에서 이웃의 상인과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우면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렇듯 화려한 삶에서의 화려한 고독이 아니라 거친 경상도 사투리와 함께 치열한 삶의 고투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웨일맨 나의 아버지’에서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아버지를 통하여 사회고발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월마트라는 미국기업이 고래의 가면을 쓰고 자본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기존의 질서를 깨버리고 거대한 괴물에 동화되어가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어머니는 “큰애야, 너도 이리로 오렴. 여긴 모든 걸 다 판단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어머니의 표정이 진지했다. 표정이 하도 진지해 하마터면 물을 뻔했다. 혹시, 여기 외제 족발도 파나요?” 이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인가?

어려운 관계를 설정하고 그것을 설명하는 언어도 어렵다면 책을 읽기 힘들 것이다. 요즈음의 소설의 세태가 점점 어렵게 나가는 추세라면 이상섭의 소설은 쉽게 가려는 경향이 있다. 거기에다 재미까지 붙여서 말이다. 책은 먼저 재미있어야 한다고 본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1년에 50권도 읽는다지만 1년이 가도 책 한권 읽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혹시 재미없는 책들이 많기 때문은 아닐까. 읽어도 도무지 무슨 글을 읽었는지 뒤가 캥기는 책들보다는 혼자서도 키득키득 웃을 수 있는 재미있으면서도 사회현실을 반영한 책이라면 독자들을 끌어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