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길. 새가례 등산로를 탐방하기로 했다. 일년에 몇 번씩 오는 독하고도 독한 독감의 기운이 있었는데 집에 있어도 드러누워 있을 것이고, 나가면 길에 드러누워야 하는 경우도 생길지 모르나 그대로 강행한다. 주차장 앞에 서 있는 은행나무 색깔이 곱다.
어쩌면 습관이나 취미 같은 것도 하나의 중독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는데 그게 정말 맞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몇 년되지 않은 결심이었지만 자꾸 하다보니 이처럼 불덩이 같은 머리를 이고 편두통을 껴안고 길을 나서는 것이다. 책을 읽는 습관도 몸에 달라붙어 하루에 한 페이지라도 읽고자하는 모습이 보인다. 책 한 권을 독파한다기보다 책과 함께 생각을 즐기는 일이리라. 그 생각들이 어떤 방식으로 흘러가든 나에게 맡겨진 일이지만 그 생각들의 파편이 문득 한가지 낱말을 던져주고 길게는 하나의 문장을 던져주기도 하는 것이다. 머리를 쥐어짜는 일보다 문득 던져진 문장을 눈 앞에 두고 생각해보는 일은 한결 수월하다.
청명한 가을하늘아래 아직도 새파란 저것은 무엇인가? 가까이 가보니 도토리가 열려있었는데 상수리나무인가? 사철나무인가?
어느새 들판에는 추수의 흔적으로 이빨이 빠진 듯 군데군데 추수 뒤의 황량함이 드러나 있다. 사람들도 계절로 치면 나 같은 경우 이러한 가을의 추수 광경이라고 보아야 할 터인데, 정착 추수를 끝낸 곳간에는 아무것도 없다. 빈 곳간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처량하기 그지없다.
가례 우회도로로 진입하는 길목엔 잣나무가 일렬로 늘어섰고 바람이 불 때마다 솔향기를 선사해 준다.
잔화? 잔설과도 같이 아직도 남아있는 꽃이다. 같이 뿌려진 꽃씨들 중에서 만생종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만생종으로 태어난 인간들은 얼마나 될까. 언젠가 저렇게 모두 시든 가운데 우뚝 서서 찬란한 꽃을 피울 수 있는 존재. 그것들은 다만, 아름답다.
새가례 등산로 앞에 섰다.
7.5km라고 써 놓았는데, 산은 저 숫자를 오류로 만들게 한다. 사람들에 의해서... 재어진 거리가 모두 다르다.
어제 내린 비로 인하여 깨끗하다. 아직도 여름인냥 푸른 이파리들이 지천으로 널렸고, 계절의 구분은 잠시 저편으로 밀어 놓았나보다.
빛이 숨어 들어온 숲은 찬란하다.
이런 길들은 영화를 찍어도 될만한 길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가는 도중 남자 두 명, 쉬고 있는 여자 세 명. 그게 모두다. 이렇게 긴 길을 만들어 놓고도 사람들이 찾지 않는 것은 사람을 끌만한 풍경이나 볼거리가 없는 탓인가 생각해 본다. 오로지 걷기가 목적인 사람들에게 적합할 것 가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일 것이다. 소나무 숲길을 걷는 일은 행복하다.
처음 만나는 이정표. 진남재.
그리고 호박재.
샘터, 누군가 "3"자를 지웠다. 여기서 340m라는 것은 해발을 말하는 것이다.
나무들은 희안하고
숲은 평온하다.
이렇게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길은 소나무 냄새가 나고
꿀밤나무 숲에서는 꿀밤 냄새가 난다. 쉼터라고 하지만 앉을 자리가 없다.
이 나무는 사람들에게 호되게 당한 모양이다.
벼륙콧등이다.
달분재까지는 900m.
벼룩콧등 위에서 보이는 전경.
저 멀리는 운암마을 같고
이곳은 도대체 어딘지, 처음엔 벽계저수지인줄 알았으나 그럴리는 없었다. 그냥 지나친다.
잠시 쉬어가는 곳에서 소나무 사이로 드러난 하늘을 본다.
이곳에 오면 사람들이 만든 오류가 드러난다. 새가례에서 정상까지 7.5km였는데, 이곳에서 새가례 5.8과 정상 1.4를 더하면 7.2km가 나온다.
정상에는 양 사방으로 사진을 박을 모양이다. 정상에서 보는 주변의 산들을 알려주는 그런 사진들 말이다. 정상 아래 정자 쪽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 고개를 푹 숙이고 올라왔다. 혹시라도 아는 사람이 있으면 술을 마실 수 있는 확률이 있기 때문이다.
단풍은 서둘러 가 버린 모양이고, 앙상한 나무엔 아직 떨어지지 않은 나뭇잎이 애처롭게 달려있다.
내려오는 길에 억새도 거의 옷을 벗고 몇 남지 않은 보푸라기를 부여잡고 있었다. 가례를 넘어 칠곡으로 내려오는 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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