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은 제발 술을 마시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마시게 되고, 토요일 아침은 엉망이 된다. 늦은 아침 시간 주섬주섬 주워 입고 길을 나선다. 노고단을 가 볼까 생각하면서 지리산의 서쪽 부분을 생각해 보았다.
정령치를 향해 가면서 네비게이션의 추천도로를 따라가다보니 88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중앙분리대가 없는 고속도로. 그래도 차들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2차선 고속도로를 경유하며 달린다. 간이 휴게소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숨을 쉬어보니 술 냄새가 난다. 단속에 걸리면 음주운전이다. 흰색 소나타, 나의 애마, 아름답다.
백두대간 1,172m 정령치 휴게소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30분. 단풍 구경을 나온 사람들로 붐볐지만 정작 단풍은 그렇게 아름답게 물들지는 않았다. 10월 18일이 지리산 단풍의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이틀만에 단풍은 모두 져 버렸나보다.
계단을 올라 걷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몸은 휘청거렸지만 한발한발 모아서 먼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대숲 사이로 난 길을 걷는다.
앙상한 나무가지는 겨울을 연상케하는데.
귀신 같은 나무는 어디에도 있는 모양이다.
저 멀리 뾰족하게 보이는 곳이 만복대이다. 만가지 복을 내려준다는 만복대.
주변의 나무들은 이미 잎을 다 떨쳐버린 가운데 소나무만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다
억새밭을 지나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길을 걷는다.
다시 오르막에서는 산죽이 사람들을 반긴다. 키가 큰 것은 어깨까지 올라와서 걷는 사람들의 옷깃을 스치며 사그락사그락 소리를 낸다
만복대가 가까워지는 모양이다.
정령치에서 만복대까지는 2.0km. 늦은 시간이라 성삼재까지는 아무래도 가지 못할 것 같다.
수많은 돌로 만들어진 탑은 복탑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저 돌 하나하나에 스며있는 복들은 누구의 복을 기원하는 것인지.
만복대를 지나 저 먼 곳까지 하염없이 내려가야 한다.
반대편 쪽의 마을은 논을 껴안고 어울려 있다.
뒤돌아보며 만복대 쪽을 바라보니 아득하기만 하다.
묘봉치에 도착. 묘봉치를 지나 얼마간 걷다가 다시 되돌아 온다. 해가 서산에 가까워지고 더 걷다가는 아마도 야간 산행을 해야될 성 싶다.
내려오는 길은 평온했으나 다시 돌아가는 길은 끝없는 오르막이다.
다시 만복대로 돌아오니 사람들이 모두 가고 없다. 만복대를 두 번이나 왔으니 복은 넘쳐날 것 같은데.
멀어져 가는 산하를 부여잡고 싶으나 사람의 힘으로는 저것들을 잡지 못할 것 같다. 산은 산으로서 아름답다. 저 멀어져 가는 산들을 불러모아 손바닥에 올려놓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고 사람들은 한걸음씩 한걸음씩 다가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시 억새밭. 산과 하늘과 나무와 억새.
멋지다.
바위도 멋지고
잎을 떨쳐버린 가난한 나뭇가지도 멋지다. 아름답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어느새 차들은 거의 빠져나갔다. 저 멀리 한 귀퉁이에 내 차가 보인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천왕봉. 이곳은 지리산의 서부능선이라기보다 약간 북쪽으로 치우쳐져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맑은날, 다시 천왕봉으로 가 보아야겠다. 왼쪽은 중봉, 그리고 천왕봉, 천왕봉 아래 푹 꺼졌다 다시 볼록하게 솟은 곳은 제석봉, 그리고 다시 꺼진 곳엔 장터목 산장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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