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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위대한 칸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by 1004들꽃 2009. 2. 24.

잭 웨드포드 지음. 2005년 3월23일 1판 1쇄

몽골, 즉 고려시대 당시 원나라에 대한 인상은 고려를 3차에 걸쳐 침입하였으며 무리한 공물을 요구하였고 고려의 많은 처녀들이 끌려갔으며 그로인하여 조혼의 풍습까지 유행시키게 만든 좋지 않은 인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침입을 당한 입장과 침입을 한 입장은 상반되기 마련이니까.

부정적인 시각을 마음에 담고 칭기스칸을 대할 때 아시아와 유럽을 휩쓸어 버린 말을 탄 야만족들의 대학살이라고 까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잠든 유럽을 깨운 인류 문명의 개척자로 생각할 때 칭기스칸의 과업은 실로 대단한 것이고 기적에 가까울 정도다. 자신의 보호를 위하여 이복형을 죽여야 했고 아버지가 독살 당했으며 노예생활도 거쳐야했다. 또한 의형제를 맺는 의식을 두 번이나 거쳤던 친구로부터 배반을 당하고 끝내 그를 죽여야 했던 고독한 정복자였음에도 그는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으며 실로 이쪽 문화와 저쪽 문화를 합하여 제3의 문화를 만들었고, 최신형 무기를 만들었으며 나라와 나라를 통합하여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기도 하였고 그 국가를 이어주는 비단길을 개척하기도 하였다. 그로써 동양의 문화가 서양으로 서양의 문화가 동양으로 이동하였으며 몽고의 침입은 고려의 팔만대장경 축제를 이끌어내었고 칭기스칸의 영토를 찾기 위한 콜롬부스의 노력은 실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신대륙의 인디언 존재를 세상에 알리게 하였던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의 손자 쿠빌라이 치세에 그 당시 다른 나라에서는 보통교육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시기에 공립학교를 2만 166개를 세웠다는 것이다. 이는 서구에서 100년이 더 지난 뒤에야 작가들이 구어로 글을 쓰기 시작하였으며 정부가 공교육의 책임을 떠맡은 것이 거의 500년이 지난 뒤의 일이라는 것을 안다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몽골비사의 해석은 그동안 묻혀있었던 칭기스칸의 위업을 드러나게 하였고 새로운 역사가 우리들에게 다가오게 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정복자이면서도 항복하는 자에 대한 포용은 어느 시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광범위한 것이었고 지배의 개념보다는 문화의 교류였고 새로운 기술의 교류였음에 유럽을 바꾼 대혁명으로 생각할 수 있는 르네상스가 가능할 수 있었으며 칭기스칸 이후에도 거의 700년가량 그의 말발굽이 지나간 곳에서 후손들이 통치하면서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게 한 그를 단지 한사람의 정복자라고 보기보다 잠든 유럽을 깨운 위대한 영웅으로 이름하기에 부족하지 않으리라 본다.

복수심에 불탄 한 인간이 위대한 칸의 자리에 올라 그가 겪은 전철을 그의 추종자들이 걷지 않도록 배려하였으며 모든 재물을 공평하게 분배하였고 모든 인재는 신분의 차이에 의해서가 아니라 충성심과 능력에 의하여 선발하였고 중요한 사항에 대하여는 쿠릴타이를 소집하여 의사결정을 하였다는 점 등 그의 민주적인 방식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조차 교훈이 될만한 것이 아닌가.

그의 통치 방식이 드러나는 한 대목을 인용해 본다. “좋은 옷을 입고, 빠른 말을 타고, 아름다운 여자들을 거느리면 자신의 전망이나 목표를 잊기 쉽다.” 그런 사람은 “노예나 다름없으며, 반드시 모든 것을 잃고 만다.” “군대는 전술과 전력만 우월하면 정복할 수 있다. 그러나 나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야 정복할 수 있다.” “몽골 제국은 하나지만 그 신민이 하나로 통일되는 것은 결코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호수 건너편에서 정복한 사람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통치하여야 한다.”

칭기스칸에 대한 충성은 그가 죽은 뒤에도 변함없었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의 장례 행렬에 속한 병사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40일 동안 길에서 만난 모든 사람과 짐승을 죽였다고 한다. 비밀리에 매장을 마친 뒤에는 800명의 기병이 그 땅을 여러번 밟아 다져 무덤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이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야기에 따르면 기병들은 무덤의 위치를 발설하지 못하도록 다른 병사들에게 죽음을 당했고, 이 병사들은 또 다른 병사들에게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정복자의 최후를 이토록 신성시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존경할만한 것이 아닌가.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는 작가가 인류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이 칭기스칸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소설적 요소를 가미하여 설명해 나가고 있음이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영기를 나부끼며 광활한 초원을 지배했던 “영원한 푸른 하늘”의 숨결을 느껴봄은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