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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한비야

by 1004들꽃 2009. 2. 24.

월드비전 긴급구호 팀장으로 일해 왔던 5년간의 긴급구호 현장 보고서는 지금까지의 내가 상상했던 긴급구호에 대한 생각을 변화시켰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면서도 어쩌면 여성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었던 세밀함까지도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여행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긴급 상황에서 남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은 어쩌면 신의 선택받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기아에 허덕이는 사진들을 가끔씩 보아왔지만 그저 그러려니 생각했었는데 ‘너무 오래 먹지 못해서 뇌 속에 있는 단백질까지 영양분으로 다 써 버렸기 때문’이라는 대목에서 그들의 무표정한 모습이 다시 보이게 된다.

‘전쟁이나 전염병, 쓰나미 같은 특수한 긴급구호 상황에서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는 걸까? 물론 아니다. 단지 먹을 것이 없다는 일상적인 이유로도 세상 어딘가에서 7초에 한 명씩 목숨을 잃고 있다. 2주일이면 쓰나미로 인한 사망자 수를 훌쩍 넘어간다는 계산이다.’ 2004년 12월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해일 쓰나미로 인한 피해는 재난 발생 14일 차 발표된 숫자에 의하면 사망 15만 6천 60명, 실종 10만 여명이다.

산다는 것은 희망이 있기 때문 아닐까.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했나? 생명의 반대말도 역시 죽음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아프리카의 주민들에게 씨앗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 ‘한정된 구호자금 때문에 한 마을은 씨를 배분하고 그 옆 마을은 주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비가 오지 않아서 파종한 씨앗은 싹을 틔우지 못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씨를 나누어 준 그 사실 하나만으로 수확기까지 한 명도 굶어 죽지 않았는데 옆 마을은 아사자가 속출했다고 한다. 이곳에서의 씨앗이란 존재만으로도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 있었다.’

특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내전에 대해서는 여태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을 접하게 되었다. 2000년전 로마제국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팔레스타인에 들어가 국가수립을 선포하였고 예루살렘의 성지를 다시 찾자고 하며 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지역 내에 정착촌을 짓기 시작하면서 그곳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강제로 추방하고 땅을 몰수하였다. 수천 명도 되지 않은 정착민을 위하여 수백만 명의 생존권이 완전히 무시당했던 것이다. 또한 열 세 살짜리 여자아이가 등교길에 20발 이상의 총알을 맞아 즉사한 사건 등 섬뜩하기까지 한 일들을 과연 누가 했는가. ‘미국이 석유로 세계 패권을 장악할 수 있는 중동 지역을 이스라엘을 이용해 효과적으로 장악하려는 것이다.’ 60억 세계 인구 중 30억이 굶주리고 있는 마당에 미국의 대외 원조 총액의 1/3이 1인당 국민소득이 1만4천 달러인 이스라엘에 지원되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이스라엘 측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테러리스트라고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우리도 그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릅니다.”

책읽기를 끝내고는 기쁨을 얻기보다는 좀 시무룩해졌다. 그동안 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무심했던 곳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는 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무엇이 진실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왜 전쟁을 해야만 하는지. 그리하여 왜 수없이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야 하는지. 누가 옳고 그른지 보다 모두 같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