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올 것 같다는 일기예보를 무시하고 길을 떠났다
9시에 출발하여 산 입구에 도착한 것은 12시
세 시간 가량 운전을 하여 도착한 곳은 월출산이다
거의 20년 정도 된 것 같다
밤기차를 타고 목포에 도착하여 버스를 타고 월출산을 찾았던 그 때
지금 생각하면 엄두도 낼 수 없을 것이고
그나마 밤기차가 없어져서 가자고 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도로 사정이 좋아져 세 시간만에 도착할 수 있었고
산행은 약 세 시간 정도로 잡았는데......
산의 초입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작년도 여름 휴가 때도 가는 곳마다 비가 내렸는데
올해도 예외는 없다
비는 방문객을 너무도 반갑게 맞이하여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리라
산의 형세로 볼 수 있듯이 오르막은 급했고 그 오르막마다 계단을 설치했다
그 20년 전에는 계단을 보지 못했는데 가는 곳마다 계단이다.
국립공원을 관리하다보니 돈 쓸 곳이 없어서 이런 계단에다 투자를 하는 모양이다
산은 처음부터 본 모습을 보여준다.
돌로 인하여 헐벗은 모습이라고 할까 헐벗은 몸에 나무들로 옷을 입혔을까
짐승의 형상을 한 바위에 뚫린 구멍을 눈으로 보아야 하나
콧구멍으로 보아야 하나
해발 809m의 산은 의령의 자굴산(897)보다 해발이 낮다
하지만 자굴산보다는 두 배 힘들다. 산길의 거리도 3.1km밖에 되지 않지만
3.2km인 자굴산보다 훨씬 멀게 느껴진다
웬만하면 손으로 기둥을 잡거나 기어가지 않는 나는 이 산에서 계단 난간을 잡고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엄살을 부린다면 암벽등반 수준이랄까.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 계단에서 점점 지쳐간다
머리위에 걸쳐놓은 구름다리. 하나의 관문을 통과해야하는 의식처럼 저 다리를 통과해야 한다
구름다리로 향하는 길은 거의 80도 정도의 경사다
한걸음 한걸음이 모아져 결국 저 다리에 닿을 것이다
서두를 필요도 없고 조바심 낼 필요도 없다
9시에 출발하여 12시에 산 입구에 닿았으니 시간과의 싸움은 애초에 없었다
희뿌연 하늘아래 돌산은 찬란히 빛난다
사람들은 산을 왜 산을 오르려고 했을까
산을 다니며 계속 생각을하지만 알 수가 없다
나는 그저 걸을 뿐 정상을 딛기 위해 가는 것은 아니었다
풍경에 취해 걷다보면 어느새 정상이라고 표시해 놓은 곳에 닿을 뿐이다
힘든 오르막을 걸어 닿는 정상은 그저 산의 어느 한 부분일 뿐
사람들이 정상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은
정상에 닿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힘든 길을 걸어서 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 생각해 보았다
자동차로도 닿을 수 없는 곳
오로지 내 두 다리로만 걸어서 닿을 수밖에 없는 곳. 그것이 산인 것이다.
그래서 지리산 천왕봉은 사계절 사람들이 붐빈다
제주도를 제외한 남한에서 가장 높은 곳이니 덤벼볼만 하다
하지만 산에 덤비는 것만큼 무모한 짓은 없을 것이다
산은 덤벼서 되는 것이 아니고
그저 산에 가서 걸을 뿐이다
걸으면서 생각하라는 것이다
어느 특수한 몇명을 제외하고 산을 뛰어서 다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몇 명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산 앞에서는 겸손해야 하는 것이다. 생각없이 걷다보면 산과 함께 산이 된다
오로지 산이 되어야만 산을 걸을 수 있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다리도 좋고
산의 높은 곳까지 나비가 올라와 있는 장면도 보고
발 아래 무서운 광경이 있는 것도 보고
그래서 사진도 찍어보는 재미
그런 황홀경이 없다면 누가 산을 찾겠는가
그래서 산은 오로지 산에 순응하는 자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갈길이 바빠서 모든 풍광들을 뒤로한 채 걷다보면
왜 산에 왔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비를 품으며 산은 긴 한숨을 토해낸다
얼마나 오랫동안 산은 이렇게
긴 숨을 토해냈을까
비와 땀이 범벅이 되고
덥다는 생각은 별로 나지 않는다
태초부터 그냥 이렇게 살아왔다는 느낌
사람들은 환경과 상황에 잘 적응하는 모양이다
어느새 지친 다리를 끌고 터벅터벅 길을 걷는다
비도 땀도 나의 일부가 되어 거추장스럽지 않다
비가 걷히고
채 가시지 않은 운무가 산의 이쪽과 저쪽으로 나뉜다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이다
통천문에 닿았다
하늘로 통하는 문
통천문으로 새어드는 빛이 예사롭지 않다
아마도 빛은 모두 저곳으로부터 발현되는 것인냥.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청설모에게 먹이를 주며 유혹한다
사람의 손을 두려워하지 않는 짐승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짐승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두려움 따위는 애초에 없었던 것일까
돌아서 내려오는 길에
구름다리의 모습이 보인다
돌아서 내려오며 걸린 시간은 5시간 30분
세 시간이면 될 것 같았던 산이었는데
너무 자신감만 충만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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