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엄마가 살아온 길
항상 그 자리에 있었고 또 그렇게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어머니의 존재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자식들에게는 여자로서가 아니라 단지 어머니라는 존재로만 인식되었던 엄마가 세상 밖으로 나온다.
전쟁이 끝나고 미처 도망가지 못했던 북한군이 밤마다 마을로 내려와 짐승들을 훔쳐가고 처녀들을 끌고 가던 상황이라 채 초경이 시작되기도 전에 결혼을 해서 다섯 아이를 낳고 어머니 자신은 여자이기를 포기하고 자식들의 뒷바라지에만 전념하면서 무너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엄마의 실종으로부터 시작된다. 지하철에서 남편의 손을 놓친 노친네가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 실종으로 인하여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위치가 아닌 여자로서의 삶을 딸과 아들과 남편, 그리고 엄마 자신의 회상을 통하여 이끌어낸다. 흥미로운 것은 지금까지의 소설과는 달리 『나』라는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이자 엄마의 큰딸은 『너』가 되고, 큰아들은 『그』가 되고 남편은 『당신』이 된다.
글자를 읽을 줄 모르는 엄마가 첫아이를 학교에 보낼 때 글자를 읽지 못한다는 사실이 들킬 것 같아 고모에게 딸려 보냈던 엄마. 직장에 필요한 큰아들의 졸업증명서를 직접 들고 난생 처음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갔던 엄마. 그 동사무소 숙직실에서 같이 잠들었던 엄마. 항상 그림자처럼 곁에서 지켜주고 보살펴주었던 그런 엄마가 사라졌다.
그 모든 것들은 엄마를 잃어버린 후 아들과 딸, 그리고 남편의 회상에 의해서 드러난다. 그냥 없어져 버리고 말 기억들이 하나의 사건을 통하여 드러나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한번도 해보지는 못했지만 엄마를, 아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엄마의 부재를 통하여 알게 된다. 아버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너』는 끝내 소 울음소리를 내며 오열하게 된다.
엄마의 뇌졸중은 서서히 진행되어왔다. 머리가 아플 때면 딸아이가 보내온 책을 쌓아둔 방안에서 고통을 참았고 가끔은 혼절하기도 했던 엄마. 그러면서도 아프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고 마침내 치매증상으로 나타나고 그 증상은 점점 심해지게 된다. 그랬기에 지하철을 타는 순간 남편의 손을 놓쳐버리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성인이 되면서 어쩌면 우리들의 어머니를 돈을 대주는 사람, 방황의 끝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밥을 챙겨주는 사람으로 치부해 버렸는지 모른다.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을 얼마나 찾아뵈었는지. 휴가를 받아 며칠이나 부모님과 함께 지냈는지. 작가는 화자를 통하여 세상의 모든 아들, 딸을 대신해서 반성하고 있다. 남편은 또 어떤가. 자신에게 주어진 짐을 덜기 위하여 끊임없이 방황하고 다시 돌아오면서 항상 그 자리에 있어 주었던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용서받고 싶은 마음들이 눈물이 되어 쏟아진다.
아직까지 생각해 본적이 없었던 우리들의 『엄마』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소설이다.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오는 부유한 집안에서는 결코 읽을 수 없는 우리의 현대사를 환기시켜보고 그 시절을 보내며 끈질기게 삶을 이어왔던 우리들의 부모님들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또한 엄마이기 이전에 남편이 아닌 다른 한 남자를 사랑했던 여자로서의 삶을 회상하는 부분에서 우리는 엄마도 여자라는 사실을 모른체하고 단지 엄마이기만을 바랐던 이기심으로 뭉쳐진 방관자가 아니었는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엄마도 옹알이를 하는 해맑은 아이였고 냇가로 들로 뛰어다니던 꿈 많던 소녀였고 사춘기를 벗어나지도 않은 나이에 시집가기 싫어 엄마에게 떼를 쓰던 엄마의 딸이었다. 작가는 마치 공룡의 발자국을 발굴이라도 하듯 이 시대를 살아온 엄마를 발굴해 낸 아름다운 작업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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