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고를 깬 광대는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나』라는 사람이 전체적인 소설의 구도를 이끌어 나가는 형식에 익숙해 있던 터라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면서 또 다른 장르가 생겼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에도 수많은 『나』가 이끌어 나가는 개밥바라기별을 만나게 되었다.
결국 준이라는 황석영의 분신이 이끌어 가기는 하지만 소설 속에 등장하는 영길, 인호, 상진, 정수, 선이, 미아는 모두 『나』가 된다. 식구들이 저녁밥을 다 먹고 개가 밥을 줬으면 하고 바랄 즈음에 서쪽 하늘에 나타난다 해서 이름 붙여진 개밥바라기별. 어쩌면 먼 길을 돌아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살던 집이 아득하게 느껴지는 기분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고등학교 시절 멋모르고 반항심만이 들끓었던 청소년기를 되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다. 준은 고등학교를 그만두면서 그나마 신뢰를 할 수 있었던 국어선생이자 담임선생에게 쓴 편지에서 “내 인생의 대부분이 이런 충족된 시간들이 아니라 제도를 재생산 하는 규율의 시간 속에서 영향 받고 형성된다는 것에 저는 놀랐습니다. 이것이 나의 성장기라니요. 고등수학을 배우는 대신 일상생활에서의 셈을 터득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느 책에서 보니까 인식은 통일적이고 총체적인 것이며 이것저것으로 나눌 수 없다고 하던데요. 자유로운 독서와 학습 가운데서 창의성이 살아난다고도 합니다. 결국 학교교육은 모든 창의적 지성 대신에 획일적인 체제 내 인간을 요구하고 그 안에서 지배력을 재생산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편지에 대한 담임선생의 답을 영길에게서 듣는다. “편지에 나온 주장은 너희가 이담에 어른이 되어 능력이 생긴 뒤에 학교를 세우거나 교육제도를 바꿔야 가능한 일이며 이탈한 뒤에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무척 힘든 노릇이라고.”
지금의 학교는 어떠한가? 소설이 이야기하는 것은 수십 년이 지난 일이라지만 과연 그 옛날의 풍속도를 읽고 향수에 젖도록 하기 위하여 소설이 씌어진 것이겠는가. 작가는 성인이 되는 길은 독립운동처럼 험난하고 외롭다. 대부분 그 무렵의 연애는 첫사랑이라고 불리면서 애처롭게 좌절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
젊은 시절 무작정 떠나기를 좋아했으며 소설처럼 무전여행을 하지는 못했지만 차비와 쌀과 버너만 가지고 완행열차를 타고 종종 떠난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반항심리를 표출하는 유일한 통로는 집을 탈출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지리산을 찾아 골짝을 헤매고 다니며 젊음의 열기를 식히기도 했다. 어쩌면 용기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완전하게 집을 떠나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돌아갈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편안하게 여행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누군가가 정해놓은 일탈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많은 죄를 저지르고 있다. 하지만 그 일탈은 우리들에게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오줌이라도 시원하게 갈기고 나면 답답하던 속이 내려가는 느낌이다. 또한 들키지나 않을까하는 두려움도 어느 정도 작용하기 때문에 더욱 긴장감이 넘친다. 정해져 있는 사회구조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은 누구든지 한 번쯤은 해 보았을 것이다. 남들이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내가 생각하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준은 이야기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자신의 또 다른 존재에 몰두해 있었다. 그것은 언제나 내 몸 근처의 한 걸음 곁에 따로 떨어져서 나를 의식하고 관찰하고 경멸하거나 부추겼다. 나는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안과 바깥이라는 불완전한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누구인가.
자신을 찾는 작업은 언제까지나 계속될지 모른다. 나와 또 다른 이성은 나를 벗어난 일정한 거리에서 항상 감시하면서 감정적인 내가 가려하는 길을 막으려 한다. 그는 제도적인 틀이 제시하는 통일되고도 억압적인 행동방식일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담배꽁초를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땅바닥에 던져 버리거나 길거리에 침을 뱉기도 하고 캄캄한 밤이면 노상방뇨도 서슴지 않고 행하는지도 모른다.
다른 일을 더 잘하게 될지도 모를 아이들을 획일적인 틀 속에 가두어 놓고 그 안에서 지배력을 재생산한다는 것.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결국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책을 화제 삼아 이야기를 할 때만 그렇고 학교로 돌아가면 다시 정해져 있는 틀 속에서 아우성치고 있는 우리들의 불쌍한 자녀들. 개밥바라기별은 이들을 구원할 수 있는 책은 아닌가? 물론 실천이 따라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노래를 부르며 거문고를 연주하던 광대가 거문고를 깨버리고 나서 진실로 오랜만에 평화로운 잠을 잘 수 있었고 그는 노래로부터 놓여났다. 그는 이 죽음과 같은 휴식 안에서 비로소 노래만을 사랑하고 모든 것을 미워했던 자신의 모습이 변화된 것을 알았다.(245P)
우리를 가두어 놓고 한 방향으로만 보게 하는 틀을 깨버린다면 모르고 지냈던 많은 새로운 세상이 보이지 않을까?
'책을 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름다운 마무리/법정 (0) | 2009.05.11 |
---|---|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노희경 (0) | 2009.03.31 |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0) | 2009.03.02 |
신/베르나르 베르베르 (0) | 2009.02.27 |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오히라 미쓰요 (0) | 2009.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