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을 읽고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노희경

by 1004들꽃 2009. 3. 31.

책을 읽고 난 후에 소감을 적어 나갈 때 참으로 난감한 때가 있다. 책을 읽으면 나타나는 줄거리를 이야기 할 것이냐? 아니면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여 정리를 할 것이냐? 아니면 작가의 의도를 무시하고 책을 통하여 느끼게 된 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적을 것인가? 모든 것이 옳은 이야기지만 어쨌든 세월이 많이 지난 후에 자신이 적어 놓은 글을 읽어보면 그때 당시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여태껏 그냥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는 생각으로 쓰고 싶은 대로 써 왔는데 이번에는 독서통신학습이라는 과제를 스스로 떠 안았기 때문에 쓰고 싶지 않아도 써야만 한다는 부담감을 가져야 한다. 하긴 부담감을 가지든 말든 간에 책을 읽은 다음 느낌을 정리해 두는 것은 좋은 일이기 때문에 또 이렇게 적어 나간다. 문제는 점수를 매겨서 합격 불합격을 따지는 것이기 때문에 약간은 신경질이 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끌리는 것은 있다. 책을 공짜로 얻을 수 있고 어차피 읽을 책이니 다른 때보다는 신중하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번 느끼는 감정은 내가 쓴 독후감이라는 것이 형편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정리는 해 놓아야지............   

 

 

영원한 것은 무엇인가?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의 저자 바람의 딸 한비야를 알게 되면서 월드비전을 알게 된 것과 같이 이번 노희경의 에세이를 접하면서 기아, 질병, 문맹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국제개발 및 구호 NGO인 JTS를 알게 되었다.(도서 인세 30%를 JTS에 기부했다) 어쩌면 이렇게 글을 읽으면서 인종과 국가, 민족, 종교를 넘어서 봉사하는 단체를 알게 되는 것만 해도 큰 소득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니,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온 나 자신이 부끄럽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6.25전쟁이 막 끝나고 아주 못살던 시절에 우리는 다른 국가, 민족으로부터 구호활동의 혜택을 입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현재 경제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우리가 받았던 것을 돌려주어야 할 시기라고 이야기하는 한비야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 하다.


'2년간의 기획, 2달간의 집필기간. 일곱 번의 대본 수정, 50번이 넘는 퇴고. 나는 지금껏 이렇게 대본 작업을 해본 경험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자는 이 드라마를 두고 역겹다고 한다. 나는 그 사람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나는 이 드라마를 쓴 것에 대해 후회하진 않는다. 이 세상 사람들 어느 누구도 나와 다르다고 해서, 소수라고 해서, 소외되었다고 해서 손가락질 받을 이유는 없다.' 드라마 "슬픈 유혹"을 끝낸 후 작가의 심경이 드러난 대목이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열정 없이 그냥 대충대충 넘어가자는 식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그들이 사는 세상' 그와 그녀의 이야기가 책 속에 삽입되어 있지만 그보다도 전체적인 책의 내용에서 부모에 대한 사랑, 그리고 방황의 세월을 보냈던 20대의 삶을 40대에 와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통하여 치유해 나가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삶에서 잊고 산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메시지를 던져 준다고 하면 노희경의 에세이는 경험을 통하여 서서히 삶에 젖어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어쩌면 어머니가 못다 한 이야기를 배우 나문희에게 들으려고 한 것인지도 모른다. '늘 서민의 어머니로 살려면, 남들이 보지 않는 순간에도 잠자리에서도 길거리에서도 부엌에서도 서민으로 살아야 한다고, 핏속마저 살속마저도 거짓은 안 된다고, 그래서 늘 정말 낮게 낮게 모든 자릴 임하는 선생님을 저는 고작 흉내나 내며 따라 갑니다.'라는 독백은 오만했던 지난 시절에 대한 반성으로 들린다. '작가란 단어를 풀이하면 '만드는 자'란 뜻이다. 다시 말해 창조하는 자란 뜻이다. 창조를 하지 않으면 그는 작가가 아니다. 글을 본 땄다고 하는 것은 훔쳤다란 말과 다르지 않으며 따라서 훔친 드라마는 드라마가 아니다. 그건 도둑의 장물과 같다.'고 했던 30대의 드센 작가의 모습은 40대에 와서 '재해석을 하든 표절을 하든 그건 작가의 몫이다. 뭐가 나쁘다 좋다 할 게 없다. 표절작가에겐 작가로서의 자격박탈이 주어지니 그걸 달게 받을 일이다'라고 하면서 삶을 달관한 사람처럼 여유를 보인다.


현재의 삶에 대하여 만족하는 사람은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 '드라마의 결말처럼 모든 것은 행복으로 귀결되는 것일까? 하늘아래 별다른 드라마도, 별다른 사랑도 없는 것일까? 드라마와 삶도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데, 다만 나는 아직 너무 어려 그걸 모르고 있는 것뿐일까?'


사랑도 미움도 오로지 마음속에만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살아감에 있어 어떤 사람을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와 같이 있는 시간은 도대체 얼마나 되는 것일까? 생각 속에 그가 함께 있는 시간까지 모두 합해야 하는 것일까? 생각 속에서 그를 전혀 모르는 다른 사람이 그와 만난다면 그것도 다른 사람과 그가 만난 것으로 해야 하는 것일까?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생각하지 않는다면 만나지 않은 것이 되는 것일까?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할머니를 사진으로 만나면서도 꼭 만났던 것처럼 생각할 때도 있다면 그것은 만났다고 해야 할 것인가?


노희경은 아버지의 마지막 생의 3년 반 정도를 같이 지내면서 복수심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으로 시작했다가 애틋한 연민으로 변해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더는 미워할 수 없는 그래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를 만났던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부모에 대해서 도대체 얼마나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어쩌면 살아생전보다도 돌아가신 후에 더욱 애틋하게 다가올 것 같다. 맑은 공기 속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면서도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처럼 돌아가신 후에야 부모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지도 모른다. 부모는 어쩌면 상징으로 존재하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은 영원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분들과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아도, 평생을 보지 못하고 살아갈지라도 영원히 함께하는 존재.

 

'책을 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와 마릴린/이지민  (0) 2009.09.29
아름다운 마무리/법정  (0) 2009.05.11
개밥바라기별/황석영  (0) 2009.03.05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0) 2009.03.02
신/베르나르 베르베르  (0) 2009.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