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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37

by 1004들꽃 2017. 9. 6.


시 37


주사기에 마음을 담아 그의 심장에 비수처럼 꽂았으면
내 마음의 반이라도 전할 수 있었을까
기다림은 오직 그 사람을 위해 있었고
어쩌면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내가 태어난 것만 같고
그 사람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며
겸연쩍어하던 나날은 대책 없이 지나갔다
그 사람 생각 때문에 늦잠을 자
그 사람이 지나가는 길목을 지키지 못했던 날에는
비어있는 길을 하염없이 걷는 것밖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 속에서만 그 사람은 그 사람이었고
그 사람에게 나는 그저 스쳐가는 풍경이었다
그 사람이 나를 생각할 아무런 이유도
찾지 못한 채
혼자서 술을 마시며 혼자서 그와 이야기했고
시를 쓰며 그 사람을 생각했고
시에서 그 사람과 함께 걸었다
무심코 그 사람의 옷차림까지 닮아가던 날
나는 혼자서 얼마나 더 걸어야 할까를 생각했다
내 마음이 그 사람에게 아무것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때
세상은 비로소 미친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미친 나날들은 나의 무의식에 침전되었다가
허공을 헤맬 때 불쑥 불쑥 튀어 나왔고
과거와 현재는 뒤죽박죽 되었다
버릴 수 없었던 나날들은 버려지지 않았고
등에 지고 가야할 버릴 수 없는 그 사람은
언제까지나 데리고 다닐 나의 풍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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