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내가 교통사고로 죽고 그 아내가 49재 때까지 장모와 남편의 꿈에 나타나는 아내. 그날따라 운전대를 그녀의 후배에게 넘겨 준 아내와 운전을 하던 그녀의 후배는 교통사고로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각자 다른 집으로 갔다는 이야기. 그래서 아내는 밤마다 꿈에 나타나 왜 자기를 한 번도 찾아주지 않았느냐고 통곡했다.(서러운 한은 내게 두고 가오)
6.25때 마을을 습격한 공비들에게 유린당하고 임신을 하여 태어난 아들. 빨갱이의 자식이라며 평생을 외면당했던 아들은 어린시설 심한 녹내장을 앓다가 눈의 신경이 터져 장님이 되었다. 머리가 터질 듯한 아픔에 마당을 뒹굴며 울부짖는 아들을 엄마는 외면했고, 끝내 알지도 못하는 장님부부에게 맡겨져야 했던 아들. 그 아들이 장님 여자와 결혼하여 안마사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던 중 그 엄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내려온다. 엄마를 앞에 두고 허공을 쳐다보며 그렇게 서럽게 우는데,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앞을 볼 수 있는 사람보다도 더 많은 눈물을 흘리는 것을 처음 보았다고.(어머니를 위한 마지막 기도)
가난과 씨름하며, 엄마가 아버지에게 매를 맞는 것을 지켜보며 자란 남자가 결국 돈(빚)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 하지 못하고 마음에도 없는 사람과 결혼한다. 하지만 옛 사랑은 다시 눈앞에 있고,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란 게 존재한다면 그것은 이미 당위가 되거든. 사랑은 그저 현상이지 당위가 아니”라는 그는 다시 옛 애인과 불타는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불륜에 빠진 그녀는 심리적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공황장애 증세를 보인다. 결국 다시 헤어진다.
공황장애를 일으키고 부산으로 내려간 그녀가 보낸 편지다.
그곳으로 달려가는 내내 담담한 척 차창 밖만 내다봅니다.
1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벌써 10년이 된 것 같습니다.
애써 외면하며 찾지 않았던, 아니 차마 발걸음할 수 없었던 곳입니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시내 방면으로 접어듭니다.
어쩔 수 없이 안절부절. 손발까지 저려옵니다.
물어물어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이제는 차라리 마음이 편합니다.
길 건너 소방서 앞에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이제는 지척입니다.
거리낌 없이 길 건너 저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 사람은 약간은 놀라는 표정으로 나를 반겨 맞아줄 것만 같습니다.
목이 맵니다.
병원 소식을 알리는 문구가 커다란 광고판을 어지러이 지나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들어갑니다.
아마도 저 문을 열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에 나 하나뿐인가봅니다.
공황도 잊은 채 뙤약볕에서 한참을 그렇게 서 있습니다.
뒤돌아서며 “차라리 여기서 쓰러져버렸으면…….”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마저 해봅니다.
또다시 차창 밖만 내다봅니다.
초조한 듯 지루한 듯 의과대학 잔디밭에 앉아 있다 내가 도착하자
“왔다!”라고 외치며 환한 얼굴로 버스 앞으로 달려드는
그 사람이 10년 전 모습 그대로 저 안에 있습니다.
그날 내가 타고 떠났던 택시 승강장도 보입니다.
그땐 내가 너무 순진했나봅니다.
그 사람이 태워준 차를 타고 순순히 집으로 돌아왔으니 말입니다.
안 가겠다고 한번이라도 말해볼 것을…….
모든 것이 후회고 그리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잊을 수 없고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에 아내에게 사실을 고백하는데, 집에서 아버지가 엄마를 때린다는 전화를 받고 집으로 간다. 말리다가 아버지가 떠밀려 유리창과 함께 마당으로 쓰러지고 깨진 유리파편이 아버지를 덮쳤다. 아버지가 병원으로 실려 가고 텅 빈 집안에 홀로 남은 그의 마음은 ‘지금의 삶이란 아무리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쳐도 빠져나올 수 없는 늪과도 같은 삶’이었다. 결국 그는 자신이 만든 올가미에 목을 걸었다. 삶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고자 스스로 만든 올가미에 목을 걸었다.(사랑아, 사랑아, 즈려 밟힌 내 사랑아)
동네 아주머니가 귀한 버섯을 채취했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팔았다. 그것이 독버섯인줄도 모르고 먹은 그 마을 이장은 독에 중독되어 자리를 보존하고 누웠다. 그 아들도 학교에서 아이들 다툼에 휘말려 목뼈가 부러졌고 아들과 아버지는 한 방에서 대소변을 받아내는 신세가 되었다. 얼마 후 남편은 사망했고 아버지의 사망으로 충격을 받은 아들은 정신적인 이상 증세를 보였다. 그 딸은 수녀원에 갔다가 일 년 만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 들어 집으로 돌아왔다. 딸아이는 밤마다 원인모를 고통으로 땀을 흘렸다. 인간의 삶에서 이렇게 철저히 무너지는 삶을 찾을 수 있을까.
그러던 중 이웃에 두 살배기 아이를 혼자서 키우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 아이가 눈에 밟혀 딸아이와 상의해 집에서 키우기로 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는지 딸아이의 몸이 차츰 회복되었고 얼마 후 어린 아이는 입양되어갔다. 그 후 세 사람은 이사를 갔고 거기에서도 계속 아이들이 눈에 밟혀 데려다 키우다가 입양을 보냈는데 그 중 손가락이 하나 많고 지능이 떨어진 아이는 입양되지 못했다. 딸아이와 상의하여 딸의 아들로 입양했다. 할머니의 호적에 입양하면 주워온 아이라고 놀릴까봐 딸아이의 호적에 입적한 것이다.
또 그 이장댁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들은 이야기지만, 쌀을 모아서 남들이 모르게 캄캄한 밤중에 가난한 사람들의 집에 몰래 갖다 주곤 했는데 얼마 전에 그 사실이 알려졌고 그 사실을 안 시청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대통령상을 받았다고 한다.
살아서 천당을 만들지 못하면 죽어서도 천당이 없다는 그녀의 말이 한참 동안 가슴에 여운으로 남는다.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없는 것 없이 살아가고 있는 나는 도대체 무엇이 불행하단 말인가?(나는 진짜 행복합니다)
작가는 “사람은 삶에서 맞닥뜨린 수많은 우연의 연속으로 오늘이라는 필연적 결과를 얻게 된다.”고 했다. 모든 병든 사람들이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의사를 만날 수는 없다. 살아가는 과정들이 모두 감동적이고 행복한 순간순간이지만 그것을 세밀하게 표현하지 못해 무심코 일상으로 흘려보내는 일들도 많을 것이다. 시를 쓰는 입장에서 시를 쓰지 않는 사람보다 일상들을 세밀하게 관찰한다. 그 조각조각들을 엮어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이야기에서 감동이 일건 아니건 쓰고자 하는 생각이 만들어 낸 이야기는 흘러가는 강물처럼 그저 흘러가 버리는 것이 아닌 것으로 남는다. 의사들이 매일 겪는 일들도 그 속에는 각각의 사연이 있다. 의사가 무심코 지나가는 일이더라도 치료를 받는 가족들에게는 심각하고 걱정스러운 일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제각각 제 갈 길을 간다. 우연에 의해서 타인의 일이 나의 일로 다가올 수도 있고 나의 일인 줄 알았던 일들이 다른 사람의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아가야 미안하다"에서는 다문화 가정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무려 18세나 차이가 나는 베트남 출신. 우리 사회에서도 보편적으로 되어가는 다문화 가정의 표본이다. 대부분 스무 살 정도 차이가 나는 외국인 여자가 한국의 결혼하지 못한 농촌 총각에게 시집을 온다. 그 먼 거리를 날아와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사랑도 없는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농사일을 하면서 말도 통하지 않는 시어머니와의 갈등도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핏줄이라고는 한국에 와서 낳은 아기가 전부인 베트남 여인인 아내에게 그 남편은 아내가 감기에만 걸려도 제일 좋은 영양제를 놔달라는 애처가다. 하지만 부인은 한국에 온 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한국말로 의사소통을 하지 못했고, 그래서 아이가 아프면 항상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가야만 했다. 그러던 아이가 알 수 없는 병으로 죽게 된다. 하나밖에 없는 혈육이 여인의 눈앞에서 죽었다.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여인이 한국말을 배우지 못했고, 아이가 어떻게 아픈지를 설명하지도 못했다. 남편의 지극정성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한 여인의 마음은 무슨 마음이었을까? 사실 그 여인이 처한 상황을 우리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 한국땅에 왔으면 한국이라는 나라에 최대한 빨리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았을까? 부부관계는 사실 부부 이외의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들의 문제는 그들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단지 그러한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수도원에서 생활하다가 파계를 하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사람의 사랑을 우리는 무슨 형용사를 사용하여 표현할 수 있는가. 즈려 밟힌 내 사랑에서 그 사랑의 강도를 우리는 어떤 식으로 느낄 수 있는가.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어 다음 세상에서는 제대로 만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그 사랑. 말로써 표현해 버리면 다시는 그 만큼의 강도와 마음을 담은 말을 할 수 없을까봐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없는 가슴 아픈 사랑을 우리는 매순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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