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산드라의 거울/베르나르 베르베르
책의 첫 문장은 <우리는 미래를 볼 수 있는가?>로 시작된다.
미래를 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어쩌면 사람들이 다급해진 상황에서 미래를 보고 싶어 할 지도 모른다. 그 모습은 <5초 후 사망 확률 : 63%>라고 문자판에 나타내 주는 회중시계에서 찾을 수 있다. 모든 예측 가능한 상황을 입력시킨 컴퓨터(프로바빌리스)와 연결된 회중시계의 문자판으로 5초 후 사망 확률을 알려준다. 가장 안정적인 상태는 회중시계의 문자판이 <5초 후 사망 확률 : 13%>를 나타낼 때다.
주인공인 카산드라 카젠버그는 자폐아 학교인 이롱델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도망친다. 13살 이전의 기억을 지워버린 17세 소녀다. 그 학교 교장인 파파다키스는 카산드라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 교장을 피해 도망쳐 나온 것이다. 도망쳐 나온 카산드라는 파리에서도 버려져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쓰레기 하치장으로 숨어든다.
지독한 냄새와 쓰레기더미에 둘러싸인 곳에서 만난 네 사람. 그들은 그곳을 대속이라고 하고 그들은 대속의 주민들이라고 자칭한다.
카산드라가 대속의 주민으로 받아들여지고 대속의 인구는 5명이 된다. 대속에서 5명이 살아가는 동안 카산드라는 꿈속에서 미래를 본다. 테러범이 사람이 많이 군집하는 장소에 폭탄을 설치하고 가는 것을 보게 되고 대속의 주민들은 내키지 않는 발길이지만 폭탄을 제거하러 파리 시내로 향한다. 폭탄은 안전하게 제거하지만 남루한 옷차림과 지독한 냄새가 나는 대속인들은 오히려 저주받은 사람들로 취급되고 지명수배 된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그럴듯한 옷으로 포장한 화려한 미사여구를 휘돌리는 세치 혀의 놀림에는 현혹되고 그렇지 못한 어눌한 말투의 혓바닥은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무시당하고 마는.
카산드라의 오빠 다니엘 카산드라는 인류를 구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느낀다. 잘못된 방향으로 몰려가는 레밍 떼처럼 사람들은 빙산을 향해 전속력으로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오빠는 그녀가 보는 앞에서 몽파르나스 타워 꼭대기에서 뛰어내린다. 210m 아래로 뛰어내려 땅에 닿는 시간은 6.54초. 그는 그녀가 보는 앞에서 산산조각이 난 채로 다가온다.
미래의 인간을 구할 수 없다는 오빠의 생각을 뒤집기 위해서 카산드라는 그 대안으로 대속의 주민들에게 “가능성의 나무”를 세울 것을 제안한다. 가능성의 나무는 <그리고 만약>이라는 질문에 대한 의견들을 가능성의 나무 잎에다 새기고 각 분야별로 정리하여 다시 그것들을 연결시킨다. 그래서 가령 전쟁이 알레르기성 질환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게 되는, 즉 하나의 예언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는 평화로운 미래를 보장받는 것이다.
대속의 주민들은 여러 가지 의견을 내 놓지만 그것은 그렇게 신통한 의견은 아니다. 대속의 주민이자 북한 출신인 김예빈은 자신의 컴퓨터로 <그리고 만약>에 대한 의견들을 올려놓지만 그에 대한 답글은 대부분 비판적이다. 미래의 시나리오가 담긴 가능성의 나무 잎사귀들은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지 않는 미래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미래를 보기를 원하지만 정작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알게 되면서 겪어야 할 대가가 두려운지도 모른다. 카산드라의 오빠 다니엘은 그 사실을 느끼고 더 구원할 가치가 없었기 때문에 210m의 몽파르나스 타워 꼭대기에서 뛰어내렸을 것이다.
카산드라는 이롱델 학교 교장 파파다키스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듣게 된다. 그 과거는 자신의 잘못으로 부모가 죽게 되었다는 기막힌 사실이다.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지른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용서”다. 그녀의 독백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이것은 내 안에 존재하는 이 모든 갈등들을 가라앉힐 수 있는 유일한 단어야. 용서. 나는 내 의향은 묻지도 않고 과학 실험을 한답시고 날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로 만들어 버린 나의 부모를 용서해. 난 날 내팽개친 나의 오빠를 용서해. 난 내 부모를 살해당하게 될 장소로 끌고 간 나 자신을 용서해……. 자, 이게 내게 부족한 말이었고, 이게 내가 해야 할 말이었어. 이제 모든 매듭이 풀렸어. 용서. 수천 번의 용서.
파파다키스는 그런 카산드라에게 선물을 내민다. 아무것도 없는 그저 평범한 시계. 현재시간 12시 12분을 가리키는 시계이다.
소설의 결론은 바로 이것이다. 현재시간을 가리키는 시계.
그녀는 그녀의 오빠가 뛰어내린 몽파르나스 타워 꼭대기를 김예빈과 함께 찾는다. 그곳에서 그녀는 김예빈이 켠 음악 플레이어를 통하여 베르디의 레퀴엠을 듣는다. 책 전체의 분위기는 베르디의 레퀴엠이 하염없이 흐르는 분위기다. 고금을 통해서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다는 바로 그 레퀴엠이다.
살아있기 때문에 의식은 너무도 광대하고 깊게 열려있으며, 놀라운 것들과 불안스러운 것들을 모두 포함한 이 세계를 사랑하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이 세계를, 그 모든 사소한 것들과 그 모든 모순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것.
그녀는 김예빈에게 “넌 미래를 어떤 모습으로 보지?”하고 묻는다. 김예빈은 “너와 같이 있는 모습으로”라고 대답한다. 그 말을 듣자 5초 후 사망확률을 알리는 회중시계는 9%를 표시한다. 행복감의 신기록인 것이다. 우리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가. 서로가 다른 단어로 같은 것을 말하고 싶어 하는 두 실체. 김예빈은 김예빈이고, 카산드라는 카산드라이지만 둘은 같은 것을 의미한다는 것.
미래는 볼 수 있을까? 볼 수 없겠지만, 미래를 만들겠다면 그것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
책의 결론은 용서하는 것이고, 이해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이다. 결국 현재를 사랑해야만 한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모든 것은 현재를 벗어날 수 없다. 현재가 있어야만 과거가 있고, 미래가 있는 것이다. 예지자적인 입장에서 현재를 신중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하면 너무나 부담스러운 말이 되는 것일까? 지금 이 순간 용서할 것은 용서해야 하고 이해해야 하며,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그 모든 사소한 것들과 그 모든 모순까지도 사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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