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가있는풍경

비 오는 날 새를 쳐다보며

by 1004들꽃 2019. 2. 19.


비 오는 날 새를 쳐다보며



비 오는 날 비 맞은 나무에
새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큰 새 작은 새 모두 제각각
이제 막 겨울을 넘긴 열매가 촉촉해진 틈을 타서
큰 새 작은 새 구분 없이 열매 먹는데 정신이 팔려있다
가끔 젖은 날개를 부르르 떨기도 하고
차 지나가는 소리에 잠시 전깃줄로 옮기기도 하지만
이내 말랑해진 열매의 유혹을 견디지 못한다
차분하게 비가 내리는 날에는
바람도 차분해져서
나뭇가지를 움직이는 것은 새들의 날갯짓밖에 없다
나뭇가지가 움직이려나 한쪽 눈을 찡긋해보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새의 부리는 씹을 수도 없어
열매는 젖힌 고개를 넘어 꿀떡꿀떡 넘어간다
배가 고파서 침을 삼켜보지만
새의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는다
상한 열매라고 해도 듣지 않고
창문을 두드리니 잠시 날개를 파닥할 뿐이다
새와 나는 소통하지 않고도 세상을 살아간다
새가 날아가는 것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새와 소통하면 내가 새가 될 것 같아서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친다
배가 고파도 씹을 것이 없어 침만 꿀꺽 삼킨다



'시가있는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샘추위  (0) 2019.03.26
다시 그곳에 가면  (0) 2019.03.06
오후 단상  (0) 2019.02.12
전정  (0) 2019.01.25
선택  (0) 2019.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