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장편소설 2005.5.11 1판 4쇄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작가는 이야기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비밀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게 과연 모두가 진실일까. 어쩌면 객관적 진실보다 그렇게 믿도록 만들어진 진실이 더 진실할는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이 믿는다면 그럴만한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진정 그렇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니 느껴진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짓눌려 진실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사람들은 어쩌면 숨겨둔 진실을 드러내는 것보다 튀어 나오지 않도록 곱게 감싸두는 것을 삶의 미학으로 삼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 아는 것보다 모르고 지나가는 게 더욱 많으리란 생각이 든다.
그토록 짧은 지식을 방패삼아 세치 혀를 휘둘러대는 세상이다. 금방 드러날 비밀. 비록 드러나지 않고 묻힐지라도 아는 사람은 알 것이고 그것이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소설의 전개과정은 여러 가지 상황들과 연계되면서 서서히 비밀을 드러내게 된다. 이야기의 전개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하는가? 아버지라는 한 인간의 비밀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단순히 불륜의 현장을 목격하는 것뿐인가.
아버지의 두 아들 영준과 영우의 성장과정에서 영준의 근친상간과 그를 지켜보는 영우, 그리고 아버지라는 거역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항하지 못하고 언제나 제자리에 있어야만 하는 두 아들은 마음속에 각각 다른 형태로 아버지에 대한 피해의식을 침전시키며 성인이 되어간다. 그로 인하여 사회에 적응하는 것도 적응하지 못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존재로 중년의 나이인 마흔을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존재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소설의 제목 “비밀과 거짓말”은 책을 읽고난 후에도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현재 마흔 정도의 세대라면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알지 못할 적대감이 무의식 속에 존재하리라 본다. 지금처럼 따뜻하고 필요한 것은 모두 해 주는 아빠가 아니라 근엄하고 무서울 지경인 아버지였던 것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새마을 운동과 함께 아버지는 그 시대의 권위주의적인 권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하지만 권력에서 소외된 자들에게 사회는 “인간을 치사하고 비굴하게 만들었으며 그곳에서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소수의 싸움꾼과 매사에 막무가내인 갓난아기들 정도였다.”
결국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세월뿐이다. 세월은 해결할 수 없을지라도 잊혀지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객관적 진실보다 그렇게 믿도록 만들어진 진실이 더 진실할는지도 모른다.”는 메시지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곱씹어보아야 할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작가는 “다른 일도 아니고 글을 쓰기 위해 내 몸과 마음을 이토록 귀하게 여겨본 적이 또 있을 까 싶었다.”고 하는 반면 은희경은 이야기한다. 기존의 소설에서 새롭게 변신하기 위한 고독한 과정을 걸었던 탓이었는지 “너무나 힘들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겠다. ... 그러는 동안 몇 개인가의 병을 얻었으며 마음이 허약해져 자주 소침했다.”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작가는 기나긴 고독의 터널을 걸어야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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