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진행되어가는 방법이 이건 좀 색다른 것이다 하면서 천연덕스럽게 다가온다. 기억을 다시 써 나가는 방법이라든지. 지워졌던 기억을 회생시키는 작업이라든지. 어쩌면 삶을 영위해 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시도하기를 포기해 버린 일들을 작가는 글을 통하여 시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면서 줄거리를 파악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최영미의 글들은 읽으면서 오히려 줄거리를 잊어먹는다는 것이 알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외삼촌이 먹다 남긴 라면에 총알처럼 달려들었던 이야기는 이렇게 표현된다.
“여태껏 맛본 어떤 음식하고도 비슷하지 않은 라면의 환장할 맛과 냄새는 하나의 혁명이었다.”
어린시절에 겪었던 일들을 삼십 년이나 지난 후에 동창생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듯 이야기는 그렇게 엮어져 간다. 이렇듯 환장할 만큼 푹 빠져서 책읽는 재미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하지만 주인공 하경이를 따라다니며 천방지축으로 들떠있다가도 가끔씩 침울해져야만 한다.
“그늘이 십리쯤 들어와 앉았던 어미의 황량한 눈가로부터 스무 해를 훌쩍 넘긴 어느날 잠자리에서 나는 깨쳤다. 당신의 딸내미가 생일날 고작 참기름에 비빈 밥을 원한다는 현실이 엄마는 기막혔으리라.”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태어났다는 이유로 남녀를 불문하고 어머니에 대한 연민을 가지게 될 것이다. 어머니라는 존재에게 하고 싶은 모든 것을 원할 수 있었고 또한 그곳으로부터 모든 것이 나왔음에도 표현방식에 있어서는 마음속에 숨어있는 것과 겉으로 표현되는 양식이 상이하게 나타난다. 당신으로부터 먹을 것, 입을 것, 자신의 하고 싶은 욕구가 모두 충족되는 절대적인 존재이다. 가장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내야 하고 잘못을 하고서도 박박 대들기도 하면서 나이를 먹어간다. 받기만 했을 뿐 주지 못했던 자신을 한탄하면서도 어느새 자신마저 어머니가 되어버렸을 때 어머니의 존재는 새롭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어머니라는 이름 하나로 어두워질 수도 밝아질 수도 있다. 엄마는 엄마이기 때문에 언제나 엄마인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다.
아버지라는 사람에게 순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고 벗어날 수 있었음에도 벗어나지 않았던 모순 속에서 새롭게 기억을 수정해야만 하는 것인가.
우리는 기억이라는 것을 만들기 전에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가정을 만들고 그에 맞는 틀을 만든다. 그리고 그 틀 속에 새롭게 만든 기억을 저장해 나가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 틀 속에 갇혀있는 기억을 사실이라고 믿고 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행동을 제약해 나간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가 없다. 오로지 고통만이 그 틀을 깨고 진실을 드러나게 할 수 있다. 세월은 지나간 기억을 새롭게 써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이 있었고 후일 그 사실이 드러나거나, 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사실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을 때. 20년, 아니 30년이 지난 후일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느끼는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많은 세월이 흐른 다음 침전되어 있던 기억이 부풀어 오르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과 섞여 전혀 다른 사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가.
생은 참으로 살아보고 싶은 것이라 생각이 든다. 흉터가 무늬가 될 수 있고 무늬가 흉터가 될 수 있다는 것. 자잘하게 부서진 기억의 파편들을 모아 지나버린 과거를 새롭게 한번 써 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작가가 이야기하는 흉터와 무늬는 다른 모습이겠지만 작품을 통하여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건질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써 중요한 사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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