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 하면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세월이었다
그냥 나서기로 결심한 것은 눈소식 때문이다. 지리산에 눈이 왔다는 소식은
사람을 안절부절못하게 만든다
모든 상황을 접고 무조건 나선 길
언제나처럼 9시에 집을 나서 백무동으로 향했다.날씨는 따뜻하여 가는 길에 눈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백무동은 지리산의 뒷쪽이기 때문에 한 번 내린 눈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다
10시 40분에 백무동에 도착.
산길에 접어드는 백무교이다.
주민등록번호와 이름 그리고 전화번호를 남기고 산길로 접어든다
산길로 접어드니 차가운 기운이 온 몸을 감싸고 돈다
귓속으로 파고드는 찬기운에 머리의 한복판까지 송곳으로 찌르듯 고통이 스며든다
귀를 잡고 한걸음한걸음 옮긴다. 고통은 줄어들지 않는다
오르막에서는 아이젠을 끼지 않아도 견딜만하다.
추위때문에 쉬어갈 수 없다. 계속 길을 걷는다
땀이 나지 않고 팔목까지 시큰거린다
쉬지 않고 걷는 길에도 땀이 마중나오지 않고 방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있는 모양이다
걸음을 옮길 수 없어 전투장비를 갖춘다.
돌과 눈과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경쾌하다
길의 끝은 어디일까
다시 돌아오는 길도 어제의 길이 아니니 새로운 길일테고
걸음이 멈추는 그날이 길의 끝은 아닌지.
걸음이 멈추는 그날은 언제쯤일까 생각해본다
걸어서 걸어서 이 눈길을 밟지 못할 날을 향해 다만 걸을 뿐인가
아직도 걸을 수 있는 두 다리에 감사해야 하는가
한 편의 시를 완성시키기 위해 불면의 밤을 보내도
이토록 찬란한 시를 쓸 수 없을 것이다
시의 완성을 위해 길을 걷는 것일까.
영원히 완성될 수 없는 시와 영원히 끝나지 않는 길은 어쩌면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산의 정상에 도달했다고 하더라도 다시 내려가야 할 길이 기다리고 있으니
길 앞에서 사람들은 백전백패할 뿐이다
26년 전의 스무살 시절 소지봉과 지금의 소지봉 모습은 이정표만 바뀌었을 뿐 변함이 없다
그 나무들이 그대로 서 있는 것 같다.
산죽 사이로 난 길이 평탄하다. 긴 오르막길을 지나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오솔길을 지나면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길에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사람들이 지나간 자리와 지나가지 않은 자리의 대비
눈은 점점 많아지는데
날씨는 오히려 푸근하다
이마에 땀이 흐르면서 귓속을 파고드는 통증도 사라졌다
잠시 쉬어가는 곳에 새 한 마리
눈 속에서도 먹이를 찾는다
찬란한 하늘과 앙상한 나뭇가지들
그림으로 그릴 수 없는 것들이 사진 속으로 들어온다
자연을 그대로 그려내기 위한 끝없는 도전이 추상화로 표현되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자연이 이야기하는 것들을 붓으로는 그릴 수 없어서
자연의 이야기를 붓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기괴한 형상의 그림이 그려지게 되지 않았나 생각되는 것이다
산장에 도착한 시간은 1시 30분.
쉴 수 없어서 쉬지 못했다.
세 시간 동안의 발걸음이 또 하나의 장소로 사람을 이동 시킨다.
새로운 장소는 항상 시간이 해결해 준다.
끝없이 펼쳐진 시간 위에 사람들은 발걸음으로 자신의 생을 기록한다
끝이 나지 않는 시간의 평행선 위에 기록된 생을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지우고 다시 쓸 수도 없다
기록은 자유지만 수정할 수 없는 시간 위의 기록은 얼마나 중요한가
그래서 매 순간이 중요하고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라서 오히려 생은 풍요로운가 보다
실수들로 인하여 웃을 수 있고, 빈둥거리며 보내는 시간도 그리워지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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