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바깥으로 나간다
가끔 운전을 하며 일상을 벗어나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크리스마스라 그런지 산을 찾는 사람들이 뜸하다
눈이 있을거란 생각은 꿈에서도 하지 못했는데
길목에 눈이 버티고 있다
눈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눈을 바라보면 생각도 하얗게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누군가가 나그네들에게 선물을 남겨 두었다
마냥 둥글게만 만들 것이라 생각했던 눈사람도 이렇게 만들 수 있구나
눈길을 만나니 아이젠을 챙기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날씨가 따뜻하니 미끄럽지는 않겠다는 생각
그냥 계속 걷는다
먼 풍경들이 가까워지는 느낌
산들의 품에 안긴 흰색은 풍경들을 데리고 사람들에게 다가온다
바위 표면을 닮아가는 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녹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표면에 다시 눈이 내릴 것이고
다시 눈이 녹으면 언젠가 봄이 올 것이다
지난 수많은 날들 동안 지쳐 있었던 발을
눈으로 식힌다
저 눈처럼 그냥 흰색으로 살아가고 싶다
온 세상이 그저 흰색으로만 존재했으면 좋겠다
저 먼 산들을 다 덮을 수 있는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온 세상이 흰색일 때 그 속에 서 있고 싶다
견고하게 언제까지나 그대로 서 있을 줄 알았던 돌탑도 무너져 내리고
그 무너져 내린 돌들 위에 흰 눈이 쌓인다면
그 무너짐도 덮을 수 있을 것이다
자굴산에서 보았던 황매산의 풍경이다
병풍을 두른 듯 막아 선 모습이 장관이다
어떻게 뿌리를 내렸는지 알 수 없지만
기형적으로 뒤틀린 모습은 분명 바람의 흔적이다
눈과 비, 그리고 바람. 그들의 상관관계는 무엇일까
내려오는 길에 삼백초 차를 파는 아주머니가
차 한잔 하고 가란다
그냥 가려다 식혜 한 잔 달라고 하니 오늘은 식혜를 가져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차 한잔 그냥 줄테니 마시고 가란다
차를 다 마시고 1,000원을 놓고 도망치면서 다음에 오면 공짜 차 한 잔 달라고 했다
아주머니는 안된다고 안된다고 하면서 돈을 가져 가란다
다음에 오면 얼굴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삼백초 한 잔에 전날의 숙취가 가시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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