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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글쓰기에 대한 고민

by 1004들꽃 2012. 11. 13.

글쓰기라는 것은 말을 하는 행위와 같다. 의사를 전달하려는 것이다. 무엇을 전달하려는 것인지는 몰라도 그 어떤 무엇인가를 전달하려는 의도는 분명하다. 글쓰기를 생활화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사물들에 대한 관찰은 보통 자신의 경험과 관련을 짓게 된다. 먼저 자신의 내면을 내보이고 가족의 생활을 내보이고 나아가 주변의 인물들을 등장시키게 된다. 그 모든 것들이 결국 자신과 직접적으로 맞닿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주변의 모든 사고나 사상은 자신의 생각 속에서 시작되고 스스로 내린 결론으로 끝을 내려한다. 결국 글들은 자연스럽게 자전적인 소설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혹에서 쉽게 벗어날 수가 없다. 사람들이 살아감에 있어 모든 가치관을 습득할 수가 없을 것이고 그리하여 지금까지 믿어왔던 <진리>라는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교과서에서 배워왔던 정직, 착하게 살기 등 교과서적인 일들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너무도 아득해서 먼 나라의 일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스스로에게서 벗어나기 위하여 글자를 잡고 몸부림친다. 많은 경험들과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집적하여 그 속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을 찾으려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것이다. 공통의 선. 공통의 악. 그런 것은 애초부터 없었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기 위하여 공통분모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아주 밝은 글을 써 놓으면 주변에서 “요즈음 기분이 좋은 모양입니다.”라고 하고, 우울하고 고독한 글을 써 놓으면 “요즈음 무슨 일이 있습니까?”라고 물어본다. 하지만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저 사회적 현실을 관찰한 결과 그렇게 썼을 뿐이지 않은가.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를 두고 자전적 색체가 강한 소설이라는 평가를 한다. 린저의 생애가 그와 비슷한 환경에 처해 있었다고 할지라도 사랑이나 희망, 그리고 절망이라는 인간이 부딪힐 수 있는 그 모든 상황 앞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그 상황들을 헤쳐 나가는가에 대하여 작가는 쓰고자 했는지 모른다. 죽음이든 도피든 정면으로 부딪히든 어떻게든 생의 한가운데를 관통해 나가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려 했을 것이다.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자신의 삶에서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 사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 스스로에게서 놓여날 수도 없고 객관이라고 하는 것들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는 지겨운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환상 속으로 탈출해 버리는 것이다. 날아갈 수 없는 사람이 날아다니고 영혼과 영혼이 만나고 심장을 도려내 집어 던지고 가벼워지는 일들. 그렇게 환상 속에 떠 있으면서 자유를 느끼는 일. 그것이 글쓰기의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책 속에 빠져서 신이 되었다가, 정신병자가 되었다가, 개미도 되는 일, 물 위에 사랑해라고 쓴 글이 떠내려가다 징검다리에 걸려 떠내려가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세계. 그렇게 정신을 쏙 빼놓고 나로부터 해방되는 일들을 경험하는 일. 그것은 읽기와 쓰기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축복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온전하게 그 환상의 세계 속으로 떠나지 못하는 것이 고민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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