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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공터에서 / 김훈

by 1004들꽃 2017. 3. 17.




마동수 마장세, 마차세 세 부자가 1910년대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온 몸으로 부딪치며 걸어 나온 이야기를 제3자적 관찰자의 입장에서 기술한 소설이다. 극적인 사건에 의해 절정에 이르고 화해의 과정을 거쳐 나가는 일반적인 흐름은 보이지 않는다.


마동수는 그의 아들을 장남이라 마장세로, 차남이라 마차세로 이름 지었다. 군복무 중 휴가를 나온 마차세는 거동불능인 마동수의 밑을 봐주고 수면제 두 알을 먹인 후 외출하여 박상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와 죽어있는 아버지를 보게 된다. 마동수는 혼자서 꼬부라져 죽었다. 휴가 연장하여 상을 치르면서 군 제대 후 동남아에서 정착하여 무역업을 하고 있는 형 마장세에게 전화하지만 마장세는 오지 않는다. 마동수의 아내 이도순은 마동수가 죽을 무렵 새끼줄에 연탄 두 장을 매달아 들고 얼어붙은 비탈길을 올라오다가 넘어져서 고관절에 금이 가 병원에 있었기에 오지 못했다. 복귀한 마차세는 봄에 병장이 되었고 그해 가을 제대했다.


저승의 문턱을 넘나들던 마동수는 생각한다. 일제 강점기 남산경찰서에서 고문을 받고 새벽에 풀려난 사내들은 피투성이가 된 채 남산경찰서 뒷골목 해장국집에서 국밥을 먹었다. 마동수가 밀고 나가야 할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이었다. 기억은 바래어져서 아무런 현실감이 없었지만 임박한 죽음보다 더 절박하게 마동수를 옥죄었다.


마동수는 상해에서 하춘파의 하숙방에 얹혀 지내면서 외항선의 갑판을 닦거나 상해 시내 전차 검표원 노릇을 했다. 하춘파는 도참비기를 받들어서 양백지간에 세거하던 유림의 잔반이었다. 권력에 의해 작동되는 인간관계의 비극은 세계사의 질곡이다. 이 비극의 사슬을 끊어낼 때 세계는 새롭게 태어나고 이 신세계에서 인간의 모든 위계적 관계는 소멸한다고 하춘파는 말하곤 했다. 하춘파는 밀정 김산림을 제거하고 신원이 노출되면서 상해를 떠난다.


마동수는 1945년 가을에 만주에서 서울로 돌아왔다. 하춘파와 헤어진 후 8년 동안 만주 동북지방을 떠돌면서 아편에 절어 있었다. 1950년 여름, 인민군대가 서울로 진주했다. 인민군대가 시가지를 행군할 때 사람들이 인공기를 흔들며 혁명 만세를 불렀다. 인민군은 대학병원에 수용되어 있던 국군 부상병들을 총살하고 사체를 병원 담장에 널었다. 사체는 여름내 비를 맞았다. 마동수는 원남동 로터리에서 스탈린 만세를 불렀고 인공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다. 가을에 국군이 서울에 들어왔다. 마동수는 원남동 로터리에서 국군 대열을 향해 만세를 불렀다. 겨울이 깊어가자 사람들이 피난길에 나섰고 마동수도 피난열차 지붕에 올라 부산진역에 도착했다.


부상병들이 부산으로 후송되었고 피에 절은 군복 세탁은 민간에 위탁했다. 빨래꾼은 3개월에 한 번씩 추첨했고, 마동수는 추첨에 뽑혀 시립병원 빨래꾼이 되었다. 흥남에서 남편과 딸과 헤어진 이도순은 겨울 추첨에 뽑혀 도립병원 빨래꾼이 되었다. 낙동강가 빨래터에서 마동수와 이도순이 만났다.


마동수는 우암동 피난민 수용소에서 잠을 잤는데 가축우리에 문짝을 달고 바닥을 깔아 만든 피난민수용소였다. 이도순도 거기로 거처를 옮겼다. 거기서 마장세와 마차세가 태어났다. 가축우리에서 어떻게 아이가 태어나는 것인지 이도순은 기억할 수 없었다. 마차세를 임신한지 넉 달이 되던 날 중절을 하기 위해 산부인과를 찾았으나 의사가 오지 않아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집을 떠난 마동수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집에 다녀갔는데 기침을 쿨럭이며 왔다가 하룻밤을 자고 기침을 쿨럭이며 갔다.


이도순은 마동수가 죽기 한 달 전 동네 성당의 젊은 신부에게 종부(병자성사)를 부탁했다. 마동수는 거절했고, 신부를 물리치고 혼자서 죽기를 원했다면 아버지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마차세는 생각했다.


퍼시픽 파라다이스 사장 마장세는 미크로네시아의 섬에 출장 왔다가 아버지의 죽음을 전해 들었다. 마장세는 육군 전투부대 사병으로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었다가 거기서 제대했다. 마장세는 한국으로 오지 않고 거기서 알게 된 미군 중령급 군속 문관을 따라 괌으로 갔다. 그 군속 문관의 자본으로 설립한 퍼시픽 파라다이스의 총괄 매니저로 일했는데 직원들이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마차세는 박상희와 결혼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결혼식장에 하춘파도 왔다. 차비를 달라는 하춘파에게 마차세는 마장세의 축의금 봉투에서 20만원을 세어 하춘파에게 주었다. 하춘파는 돼지머리 고기와 인절미를 싸가지고 돌아갔다. 언론통폐합 시절 마차세가 근무하던 주간 경제 잡지사가 월간 잡지에 합쳐지면서 마차세는 실직했고 박상희는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림을 배우는 중학생들을 공원으로 데려가 소나무를 만지게 했다. 느낌의 내용을 말로 타인에게 전할 수는 없었고 느낌을 느끼게 해주는 것만이 교사의 일이라고 박상희는 생각했다.


마장세는 베트남에 복무하면서 수색조가 적의 박격포 탄에 맞아 사지가 흩어졌을 때도 그 적개심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흩어진 사체들이 살아남은 자들의 적개심에 불을 질렀다. 애초에 적과 나 사이에 무슨 적대 관계가 있었기에 서로 죽여야 하는지를 적에게 물어 볼 수는 없었고 적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일 테지만 마주쳤을 때 죽지 않으려면 죽여야 하는 것은 적들도 마찬가지였다. 지나고 보니 이 답답함이 적개심의 근원이었다.


베트남 롱하이 지구에 공중 투입된 날 늪에 착지하는 순간 교전이 벌어졌고 총상을 입은 김정팔은 전장에서 대대로 철수하면서 더 데리고 갈 수 없다고 판단한 마장세의 총에 사살되었다. 마장세는 김정팔을 죽인 것이 아니라 생존자들 중의 선임자로서 전장을 마무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김정팔은 대대의 진격로 확보 작전에서의 전공이 인정되어 무공훈장에 추서되고 일계급 특진해서 국립묘지에 안장되었고 마장세도 무공훈장을 받았다. 김정팔의 형 김오팔은 국가유공자 유족에 대한 특혜로 고철무역을 따냈고 연매출 500억을 넘겼다. 마장세는 남태평양에 방치되어 있는 자동차 잔해를 거래하기 위해 김오팔에게 김정팔의 베트남 전우라고 소개하면서 국립묘지에 함께 참배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묘비 앞에는 김오팔과 함께 온 사내 양준석이 있었다. 김정팔을 사살하고 전장에서 철수할 때 동행했던 분대원이었다. 귀대한 후 양준석은 전황조사에서 김정팔은 헬기에서 착지한 직후 벌어진 교전에서 전사했다고 진술했다. 국립묘지에서 만난 양준석의 얼굴에서는 1972년 9월 25일 마장세가 김정팔을 사살했던 일은 지워지고 없었다. 마장세는 안도했다.


마차세는 1월 초부터 ‘고속물류’로 출근했다.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는 일에 대해서 박상희는 반대했지만 마차세의 고집에 이기지 못하고 오래하지는 말라고 한다. 마차세는 오토바이 배달을 마치고 설렁탕을 먹으면서 아파트의 유리창을 바라보다가 문득 어머니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요양원으로 가봤으나 어머니는 살아있었다. 중증치매로 기억상실증이 진행 중인 어머니는 흥남부두에서 잃어버린 딸 길녀를 찾았다. 어째서 한 평생 입 밖에 낸 적이 없었던 이름을 말년의 암흑 속에서 기억해 내는 것일까. 어머니는 커튼 뒤쪽을 들여다보았고 침대 밑을 들여다보았다.


마차세와 고등학교 때 친구였고 군에서도 같이 복무했던 오장춘은 현역병 시절 기름을 빼돌려 횡령한 범죄 사건에서 벗어나는데 5년이 걸렸다. 경찰수사가 시들해졌을 무렵 서울 외곽에서 고물 중개업을 시작했다. 사업이 커지면서 ‘장춘자원’이라는 법인명으로 사업체를 등록했다. 이듬해 동남아 쪽으로 사업이 확장되면서 ‘장춘무역’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오장춘은 김오팔을 통해서 마장세와 선이 닿았다. 오장춘은 마장세의 명함을 보고 마차세를 떠올렸고 마차세를 자기에게 보내보라고 한다.


박상희는 임신했다. 내 몸 안에서 남의 몸이 생겨나 내 몸의 일부로 자라면서 남의 몸이 되어가는 사실을 경험하면서 하얗게 눈이 내리는 날 딸을 낳았다. 마차세는 눈이 내리는 날 딸을 낳았다고 이름을 누니라고 지었다.


마차세는 팔로우 섬으로 출장가서 마장세와 형수를 만났다. 형수는 한국인 어머니와 미군 아버지의 혼혈이었다. 이름은 린다였다. 장춘무역과 파라다이스 사이의 거래물량은 계약 초기보다 사십 배 이상 늘어났다. 마차세는 장춘무역에서 인사부 차장으로 승진했다. 마장세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이도순은 마동수가 죽은 후 8년을 더 살았다. 마차세는 세상의 일을 이야기하면서 ‘사는 자리에 무슨 좋고 싫고가 있나? 선택할 수 없는 것도 있잖아’라고 세상을 남루하고 무의미하게 바라보지만 박상희는 늘 옆에서 긍정적으로 이야기한다. 박상희는 어려운 일을 쉽게 할 수 있는 여자였다. 무거운 것들이 박상희에 이르면 가벼워지는 비밀을 마차세는 늘 경이롭게 여겼다. 일상의 남루함을 받아들이는 마차세의 마음에 박상희는 문득 사랑을 느꼈다. 세상을 멀리 돌아서 다가오는 사랑이었다.


<아빠 오시는 날>에 마차세는 유치원에 가서 아이들의 장기자랑을 보고 오후에는 어린이 공원으로 갔다. 누니는 말을 타고 싶어 했다. 조랑말은 눈을 가린 갈기 사이로 앞을 내다보며 터벅터벅 걸었다. 말의 걸음은 힘이 없었다. 발굽이 땅에 닿는 소리 이외에 말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말은 가끔씩 입을 벌려서 하품을 했다. 말은 늙어 보였는데 태어날 때부터 늙은 말인 듯싶었다. 이 장면은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직장인들의 일상을 보는 듯하다. 직장인들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잠시 집으로 떠났다가 다시 직장으로 복귀하는 것처럼 보이고 그 뒷모습은 살아갈 희망이 없는 것처럼 적막하게 느껴지곤 했다.


마차세는 회사의 상무 이야기를 듣고 요양원 뒷산에 있는 극락암에서 사십구재를 올렸다. 어머니의 유품을 태우라고 해서 찾아보니 낡은 고리짝 하나가 나왔다. 거기에는 메칼린이라는 미군 중사 군복 상하의가 가지런히 접혀 있었다. 영도다리에서 남쪽 100리 밖에 살아있다는 글이 적힌 종이와 신약서서, 그리고 마동수와 이도순이 낙동강의 빨래통 앞에 서 있던 사진도 있었다. 마차세는 별것 아니라 생각하고 소각했다. 형수 린다의 어머니 김애순이 한국전쟁 때 부산에서 몸으로 미군을 받던 중 미군 중사와 눈이 맞았던 일과 이도순의 낡은 고리짝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지 소설에서는 이야기하지 않아 알 수가 없다.


마장세는 미크로네시아 지방정부의 경찰에 체포 되었다. 남태평양의 여러 섬에 버려진 폐차고철을 제거해 주기로 계약했으나 수거하기 어려운 것은 바다에 밀어 넣었는데 어부가 포구로 돌아오다가 고철에 보트가 부딪쳐 빠져 죽었다. 물밑을 뒤져보니 고철은 5천 톤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었고 마장세는 이 물량을 선적한 것으로 서류를 위조해 용역비를 받아냈다. 마장세가 체포되자 형수 린다는 마장세의 하인과 눈이 맞아 도망치고 말았다.


수사를 하던 중 노무자 한 명이 다른 사건으로 연행돼서 조사를 받다가 수사는 마약 거래 쪽으로 확대되고 오장춘이 마약의 일부를 받아서 중간브로커를 통해서 시장에 풀었다는 정황이 성립되었다. 마장세를 조사하던 중 베트남 전쟁에서 김정팔은 적과 교전 중 전사한 것이 아니라 대대로 복귀하던 중 마장세가 사살한 사실이 드러났고 군 당국에 통고했으나 군은 재조사하지 않았다. 경찰수사가 마약 쪽으로 확대되자 오장춘은 현금자산을 모두 인출하여 차명계좌로 분산시키고 잠적했다. 마차세는 무혐의로 처분하고 오장춘을 수배했다. 오장춘은 수배한 지 열흘 만에 동부전선이 가까운 강원도 소읍 여관방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타버린 연탄재가 식어 있었고 소주병 두 개가 쓰러져 있었다. 봄에 마장세는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


박상희는 아파트 단지 상가에 옷 가게를 열었다. 마차세의 퇴직금은 박상희의 개업에 투자되었고 가게의 이름을 누니라고 정했다. 마동수의 기일이 12월 20일이었다. 마차세는 박상희에게 떠밀려 처음으로 제사를 지내게 됐다. 마동수도 그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지 않았고 박상희도 집안 대대로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김훈은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 중에서 <광야를 달리는 말>에 아버지는 광야를 달린 것이 아니라 달릴 곳 없는 시대의 황무지에서 좌충우돌하면서 몸을 갈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평생 가족을 가난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한 아버지는 늘 피를 흘리는 듯했지만 그 피흘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삶의 안쪽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생활의 외곽에 겉돌고 있었던 마차세의 아버지와도 닮아있다. 마동수의 근원은 김훈의 아버지에 있을 것 같다. 마차세의 어머니가 두세 달에 한 번쯤 찾아오는 마동수를 보고 왜 집으로 오는지를 모르겠다고 하는 것과 김훈이 아버지를 찾으러 술집에 갔다가 보았던 아버지는 같은 아버지일 것이다. 아버지는 원고료 받은 돈으로 손님들의 술값을 다 계산해버리는 기분파였다.

사실 마차세의 가족 모두 그렇다. 그의 아버지는 환상이란 공터에서 헤매며 두세 달에 한 번씩 집으로 돌아왔고, 마장세는 한국이 무서워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으나 결국 사기협의로 체포되어 한국의 감옥으로 돌아온다.  공터는 아이들이 놀다가 헤어지면 빈곳이 되고 다시 해가 뜨면 아이들로 가득 찬다.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이어서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는 공터에 뭔가로 채워지기를 기다리지만 세상은 채워지지 않는 공터일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인간은 매일 허전하게 시작하고 매일 허전하게 끝나버리는 답답함이 연속되는 세상에서 자유롭게 마음껏 달릴 수 있는 광야의 축복을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김훈의 소설은 극적이지 못하다. 작가후기에서 ‘나의 등장인물은 늘 영웅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고 죄 없이 쫓겨 다닌다. 나는 이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하여 말하고 싶었다.’고 한 것처럼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을 스케치하듯 들여다본다. 그의 문장은 부담스러우면서도 부담이 없다. 어쩌면 신문기자 출신의 소설가이기 때문에 소설은 신문기사를 읽듯이 단문으로 전개되어 간다. 단문과 단문을 연결시키면서 사물에 대한 해부가 이루어진다. <공무도하>에서도 그랬고 <내 젊은 날의 숲>에서도 그랬다. 칼의 노래에서는 소설의 진행방향과 관계없이 이순신의 속내, 원균을 향한 거침없는 질책, 임금을 향한 원망 등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실패에 관한 기록을 담담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결국 공무도하에서 인간은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럽다고 진술한다. 이것이 당면 문제이며 시급한 현안문제라며 세상의 안쓰러운 모습들을 마치 그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처럼 제3자적 입장으로 이야기한다. <공터에서>도 인간들은 던적스럽기만 하다. 아무도 책임질 사람은 없고 그저 세상은 어떻게든 살아지는 것처럼 담담하기만 하다.


인민군대가 서울로 진주했을 때 사람들은 인공기를 흔들며 혁명 만세를 불렀고 가을에 국군이 서울에 들어왔을 때는 국군 대열을 향해 만세를 불렀다. 만주에서 밀정을 암살하던 하춘파는 마차세의 결혼식에 나타나 차비를 구걸하였고 돼지머리 고기와 인절미를 싸가지고 돌아갔다. 언론통폐합 시절 마차세는 근무하던 잡지사가 통폐합되어 직장을 잃었고, 양준석은 김정팔을 사살했던 사실에 대해 함구했다. 수사도중 마장세가 김정팔을 사살했던 사실이 밝혀져도 군 당국은 재조사하지 않았고, 한 번도 제사를 지내지 않았던 마차세와 박상희가 처음으로 제사를 지내게 됐다. 이 모든 세상의 남루하고 비루한 것들은 박상희의 긍정에 의해서 무마되는 듯 보인다. 박상희는 어려운 일을 쉽게 할 수 있는 여자였고 무거운 것들도 박상희에 이르면 가벼워졌다. 이러한 긍정의 힘에 의해서 삐걱거리는 세상도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고 세월이라는 큰 배를 함께 타고 항해할 수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