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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고질병

by 1004들꽃 2008. 5. 28.

고질병


  뭔가 하고자 하는데 제대로 되지 않으면 마음에 열병이 난다. 그 열병이 퍼져 몸 전체가 잠식당한다.
  언제부터인가 손가락과 어깨죽지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컴퓨터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부터이다. 일종의 신경통이나 관절염 같은 것이 붙었나보다. 비가 올 때면 더욱 욱씬거린다. 일종의 직업병이기도 하고 취미에 집착한 나머지 그 대가로 받은 훈장이기도 하다. 심할 때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럴 때는 잠자는 아내를 깨워서 안티푸라민 마사지를 부탁하기도 한다. 조금 나은 기분이 들긴 하지만 완전히 치유되지는 않는다. 어쩌면 인생에서 얻은 상처라고 볼 수 있겠다. 이전부터 조금씩 컴퓨터를 배우고 연습했으면 이런 정도는 아닐 것이라 생각이 드는데 나이 들어 한꺼번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단번에 무엇을 얻고자 했던 게으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고질병이란 생각이 든다.
  이렇게 한 번 얻게 된 병 아닌 병은 비가 올 때마다 나의 육체를 자극하겠지. 어쩌면 남들이 모르는 나만이 마음속에 간직할 수밖에 없는 부끄러운 기억이 될 것이다.
  나의 주변에서도 게으른 모습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한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자신은 두 시간에 할 수 있다면 그 만큼 빨리 시작하거나 늦게까지 시간을 투자해야할 것이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고 남들과 똑같이 행동한다. 따라가지 못하는 시간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매일 매일 조금씩 더 투자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다. 미루다보면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들여야만 하고자 하는 일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 또한 배가될 수밖에 없다.
  얼마 전에 딸아이가 눈이 잘 안 보인다면서 안경을 써야겠다고 했다. 그래서 저쪽에 있는 간판에 뭐라고 씌어져 있냐고 물으니 간판에 씌어져 있는 대로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그렇게 눈이 나쁘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문제는 안경을 쓰고 싶은 마음이다. 손녀가 눈이 나쁘다고 하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난리다. 안과에 가서 시력검사를 해보니 안경 쓸 만큼 눈이 나쁘지 않으며 약간 근시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거짓 눈 나쁨 증세”를 보일 수 있다고 하여 눈에 약을 넣고 약 한 시간 기다렸다가 하는 정밀검사를 하기로 했다. 정밀검사 결과도 마찬가지로 안경을 쓰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딸아이는 영 개운하지가 않은 모양이다. 안경을 써야 하는데 안경을 쓰지 못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우린 어린 시절 부잣집 아이들만 안경을 쓰는 줄 알았다. 그래서 장난감 안경을 사서 끼고 다니곤 했다. 정작 안경을 쓰는 아이들은 진짜 눈이 나쁘기 때문에 불편함을 무릅쓰고 안경을 쓰고 다니는데.
  결국 안경을 쓰고 싶은 마음이 강하여 일시적으로 눈이 잘 보이지 않게 된 경우다. 할 수 없이 거의 도수가 없는 안경을 맞추어 주었다. 신이 나는 모양이다.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안경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것인지.
  주제에서 벗어나 마음이 신체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 했다. 어떤 일이든지 자신에게 닥친 것은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만 다음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닥친 일을 미루는 것도 마음가짐에 달렸다. 미루다 보면 끝내 하고자 하는 일을 못할 지도 모른다. 무모한 일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던져 놓고 보면 일단락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완벽한 일이 없다고 본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10퍼센트라도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잘되는 일도 있고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다. 몸살을 앓을 정도로 집착하다보면 보다 큰 것을 놓칠 수도 있다. 인생은 길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렇게 긴 것만도 아니다.
  이젠 불혹을 넘은 나이.
  산 날보다 살 날이 적을 수 있겠지. 남은 생을 어떻게 엮어가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있다. 게으름도 줄여 가면서 생을 더욱 알차게 꾸려 나갈 수 있도록 흥청망청 살아왔던 나 자신부터 추스르고 게으름의 소치로 스스로 만들어 왔던 고질병을 더는 만들지 않도록 노력해야지.
  싱그러운 오월의 하늘아래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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