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 찾아온 더위가 문학기행의 발목을 잡는 듯하다. 하지만 떠나는 사람들에게 기상상황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나선 발걸음을 거두기보다 떠나는 것이 오히려 홀가분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떠나는 사람들에게 여행의 설렘은 항상 다가오게 마련이다. 이번 여행은 여러 곳을 방문하는 것보다 천천히 생각하는 여행으로 알차게 보내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처음 쉬게 된 곳은 섬진강 휴게소. 휴게소에 들르면 으레 커피를 마셔야하는 것처럼 무의식은 벌써 커피 판매 창구로 간다. 그만큼 커피는 사람들의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급기야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두통에 시달려야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문제는 앞으로 커피 생산이 줄 것이고 그에 따라 커피 값이 천정부지로 솟을 것이라는 거다. 커피 대체수단을 시급하게 마련해야하지 않을까.
그동안 휴게소에 들르면서도 휴게소마다 세워진 기념탑이나 공원 같은 장소에는 잘 들르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호남남해고속도로 준공기념탑을 구경하러 갔다. 승리의 여신상과 25m 높이의 탑이 세워져 있다. 주변 공원은 관리가 되지 않아 잡풀이 뒤엉켜있다. 기왕에 만든 탑이라면 깨끗하게 관리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휴게소에서 음식점과 주유소만 운영할 것이 아니라 주변의 경관도 정비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 탑에서 내려오면 화합 상징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돌을 쌓아서 만든 조형물은 특이했지만 주변 경관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여유를 가지고 떠난 여행은 이렇듯 휴게소에서도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순천에 도착하여 기사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민박집에 짐을 풀고 나서 맨 처음 목적지인 순천만으로 갔다. 순천만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는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장소는 입장료를 지불해야만 목적하는 땅을 밟을 수 있게 되었다. 지방자치라는 이름으로 일반 국민들이 너무도 많은 희생을 당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통행료 지불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속도로를 잘 다니지 않는 나로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이러한 상술이 못내 아쉽게 느껴진다.
지난번 왔을 때는 11월 이었다. 갈대꽃이 만발했고 갈대 사이로 부는 바람소리는 꽃들의 이야기를 귓전에 실어 날랐다.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나눔에 있다고 했다. 많은 것을 나누고 비싼 물건을 나누라는 것은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나누고 친절을 나누고 남이 먼저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갈대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갈대 그 자체인 것이다. 사람을 모으기 위해서 인위적인 장치에 매어있는 갈대로서가 아니라 자연 그대로 제멋대로 이루어진 갈대숲이면 되는 것이다. 갈대가 숲을 이루는 것으로 새들이 날아들고 짱뚱어와 게가 숨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무수한 이야기들이 오고가고 그 이야기들은 갈대숲을 스쳐 나오는 바람을 통해서 들을 수 있다. 마음을 열고 바람결을 가슴에 안으면 아득한 수평선 너머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갈대숲을 지나 전망대로 가면 개펄 위로 아득하게 펼쳐진 갈대와 칠면초의 조화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초여름의 여물지 못한 푸른 갈대와 칠면초가 어울려 묘한 조화를 이룬다. 둥근 공처럼 군락을 이룬 갈대는 여의주라고 한다. 용의 형상을 한 용산의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전설을 만들었으리라.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갈대숲의 형태를 둥글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했는데 안내원의 이야기로는 원래 갈대의 성향이 둥글게 군락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나니 참으로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염분의 농도가 짙을수록 칠면초의 색깔은 더욱 붉은빛을 띤다고 하니 여름이 깊어갈수록 더 짙어질 것 같다. 가을이 되면 절정을 이루지 않을까. 순천만의 갈대숲은 봄이 되면 짙은 안개에 싸인다고 한다. 그 풍광은 순천사람 김승옥으로 하여금 무진기행을 쓰게 했다. 봄에 안개를 보러 다시 한 번 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김승옥 작가는 현재 중풍으로 쓰러져 투병 중이라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순천문학관은 순천만 매표소에서 걸어서 약 7분 정도 거리에 있다. 2010년 10월 22일 개관했는데 순천에서 유년기를 보낸 무진기행의 작가 김승옥과 순천에서 태어난 동화 오세암의 작가 정채봉 두 작가를 만나볼 수 있다. 정채봉은 <생각하는 동화>를 발표하면서 성인동화라는 새 장르를 개척하여 어른을 위한 동화작가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한 때 정채봉의 동화에 푹 빠져 헤어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정호승 시인이 쓴 정채봉이라는 제목의 시다.
정채봉
정호승
동화를 쓰면서
촛불처럼 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차가운 겨울바람이
촛불을 훅 꺼버렸습니다
고맙습니다
촛불은 꺼진 뒤에야
꺼지지 않는 촛불이 됩니다
2009. 8. 10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집을 떠나는 것은 꼭 보고 싶었던 장소나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특별한 곳에서 밤하늘을 쳐다보며 사색에 젖기 위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낯익은 사람들을 떠나 낯선 곳에서 낯선 만남을 갖고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흉볼 사람이 없는 곳에서 마음껏 떠들고 마셔보자는 비장한 결의에 차서 길을 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산더미처럼 쌓였던 술이 바닥이 나서야 하루를 마감할 수 있었다. 하루는 마감될 수 있기 때문에 그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 마감되지 않는 하루가 있다면 그 하루를 붙들고 우리는 어디까지 가야하는 것일까? 길고도 짧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잠시 머물다 떠났던 하루들은 기억 속에 침전되고 바람이 불 때마다 부상했다가 가라앉는다.
바람을 제어할 수 없는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지나간 기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드는 기억들은 생을 이어나가는 세월의 한가운데서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았고 그저 하루를 술로 마감하는 것으로 이끌어갔다. 어쩌면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은 술에 의해 가라앉는 모양이었다.
아침에 덜 깬 정신을 붙들고 일어나면 세상은 똑바로 서 있지 않은 것 같고 손으로 밀면 무너질 것 같은 모래성처럼 헐겁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로 밤새 찌든 생각들을 씻어내면 주위는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간다. 상쾌한 아침 공기를 폐 속 깊숙이 받아들이고 다시 하늘을 본다.
새벽의 순천만은 고요하다.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갈대숲과 용산은 안개에 싸인 것처럼 희미했고 무진교는 그 속에서 조화롭다. 서늘한 순천만의 기온은 습기를 머금은 공기로 온몸을 싸고돈다. 아직 채 어둠을 털어내지 않은 갈대숲에서는 새벽의 정적 속에서 누군가가 숨죽여 울고 있는 소리가 들린다. 갈대가 새벽이슬을 털어내고 일어나는 소리인지, 갓 깨어난 새들의 몸짓인지, 먹히지 않으려고 진흙 구덩이로 숨어드는 짱뚱어의 소리인지, 그저 실바람이 흘러가는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순천만의 풍광을 다 보기 위해서는 순천만에 눌러 살아야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이야기들은 얄팍한 상술로 치부하고 만다. 어쨌든 낯선 곳에서 낯선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언젠가 다시 찾게 되더라도 다시 낯선 풍경이 될 것이니 축복이 아닌가.
낙안읍성 민속마을은 넓은 평야지에 축조된 성곽이다. 보통 성곽은 산을 중심으로 가장 효율적인 방어를 위해 축조되는 것인데 낙안읍성은 평야지에 축조되었다. 성곽을 따라 돌면서 성 안을 보면 관아와 초가들이 서로 이마를 맞대고 있다. 그 시절 성 안의 사람과 성 밖의 사람들은 어떻게 달랐을까? 생각의 방식도 달랐을 것이고 행동의 제약에도 차이가 났을 것이다. 성 안에 살기 위해서 노력한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오히려 성 밖에서 살고자 했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신분사회에서 마음대로 할 수 없었겠지만 이동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주인이 바뀌고 삶의 방식조차 바뀌어버린 성 안의 집들은 대부분 영업을 하거나 빈집으로 남아있다. 초가집들 사이로 군데군데 자가용이 보이기도 한다. 전통문화의 보존은 그 선이 어디까지일까.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아무도 강요하지는 못한다. 그 선은 각자 개별적인 가치관에 의해 개별적으로 전승될 것이기 때문이다.
선암사 승선교는 보물 제400호로 길이 14m, 높이 4.7m, 폭 4m로 조선시대 때 축조됐다. 속세에 사는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나라는 이상세계일 수밖에 없었고 그곳에 가려면 무지개다리를 건너가야 합당한데 무지개는 아무 때나 뜨는 것이 아니니 선지식인들이 궁리하다가 용 한 마리 잡아다 두고 건너올 사람이 있으면 서기를 뿜어내 무지개를 만들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돌다리를 놓으면서 적용했다. 아치 모양의 승선교 아래 가운데를 보면 용의 대가리가 달려있다. 승선교를 돌아 건너서 가면 선암사가 나온다. 선암사는 선암사 특유의 화장실로 유명하다. 정호승의 시에 표현되어 있다.
선암사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김훈의 자전거 여행에서 선암사 화장실에 대한 묘사는 똥의 완성처럼 보인다.
선암사 화장실은 배설의 낙원이다. 전남 승주 지방을 여행하는 사람들아, 똥이 마려우면 참았다가 좀 멀더라도 선암사 화장실에 가서 누도록 하라. 여기서 똥을 누어보면 비로소 인간과 똥과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있다.
선암사 화장실은 3백년이 넘은 건축물이다. 아마도 이 화장실은 인류가 똥오줌을 처리한 역사 속에서 가장 빛나는 금자탑일 것이다. 화장실 안은 사방에서 바람이 통해서 서늘하고 햇빛이 들어와서 양명(陽明)하다. 남자 칸과 여자 칸은, 서양 수세식 변소처럼 철벽으로 가로막힌 것이 아니라, 같은 건물 안에서 적당한 거리로 떨어져 있다. 화장실의 남녀 칸을 철벽으로 막아놓은 것이 문명이 아니다. 화장실 남녀 칸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는 선암사 화장실에 정답이 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선암사 화장실은 변소의 칸막이 담이 높지 않다. 쭈그리고 앉은 사람의 머리통이 밖에서 보인다. 똥을 누는 일은 드러 내놓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파트 변소처럼 감옥 같은 공간에 갇혀서 해야 할 일도 아닐 성 싶다. 똥을 누는 것은, 배설물을 밖으로 내보내는, 자유와 해방의 행위다. 거기에는 서늘함과 홀가분함이 있어야 한다.
똥을 안 눌 때 똥누는 사람을 보면 혐오스럽지만, 똥을 누면서 창살 밖으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은 계면쩍고도 즐겁다.
이렇듯 선암사 화장실은 글을 쓰는 사람들의 소재나 주제로 쓰이고 있다. 그렇기에 기를 쓰고 선암사 화장실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기어이 그 화장실을 보고서야 마음이 놓이는 심정은 도대체 무엇일까. 어쨌든 선암사 화장실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은 선암사 화장실을 눈으로 직접 보아야만 할 터이다. 선암사 화장실 앞에는 수곽이 있고 다시 더 올라가면 정호승 시에 나오는 등 굽은 소나무가 나온다. 세 가지 상징물이 일직선상에 있다. 선암사 화장실에서 근심을 풀고 나오면 두 갈래로 갈라진 나무에 홈을 파서 수곽에 걸쳐 놓았는데 수곽이 나무 물받이를 받쳐 들고 있는 형상이다. 거기에서 물을 받아먹으려면 등 굽은 소나무를 향해 몸을 굽혀야 한다. 몸을 굽히지 않으려면 옆으로 가서 물을 받아야 하는데 물이 흘러나오는 나무 물받이를 사진 찍기 위해서는 수곽 앞에 서야만 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고개가 숙여지는 것이다. 수곽으로 흐르는 물을 받아 목을 적시면 몸의 먼지를 털어낸 듯 개운하다. 그런 다음 등 굽은 소나무 앞에 서야한다. 등 굽은 소나무는 세상의 모든 근심을 혼자서 짊어진 듯 힘겹게 누워있다.
선암사 뒤편으로 가면 편백과 삼나무 숲이 있다. 울창한 나무는 대략 60년에서 70년 정도 된 나무들이다. 편백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는 사람의 병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어느 암 환자가 편백숲으로 요양을 가서 날이면 날마다 편백나무를 붙잡고 울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우는 동안 암이 치유되었다고 하니 그 효과를 짐작할만하다. 정호승의 시처럼 선암사 화장실에 갔다가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고 선암사 뒤편 편백나무를 안고 통곡한다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었던 갈등과 잠 못 이루는 불면의 밤들이 눈물로서 치유될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행은 많은 이야기를 남긴다. 더러는 잊어버리고 더러는 영원히 잊어버리지 않을 추억으로 남는다. 모두가 배려하고 도우면서 함께한 여행은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면서 끝을 맺었다. 그렇지만 그 아쉬움이 다시 여행을 떠날 빌미를 제공한다. 여행의 목적은 떠남에 있다고 했다. 떠나는 자체가 즐거운 것이지 목적지를 향해 행군을 하듯이 하는 여행은 재미가 없다. 여유를 빼앗긴 여행은 스트레스로 남는다. 일상을 떠나 여유를 찾으려 했던 일이 스트레스로 다가온다면 얼마나 혼란스러운가. 여행을 같이했던 사람들이 모두 같은 느낌을 갖지는 않을 것이다. 제각각 보았던 것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 같이 갔던 사람들의 느낌을 글로 써서 한데 모은다면 다양한 생각들을 읽을 수 있어 흥미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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