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대하여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거리를 생각해 본다.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해야하는가. 사람에 따라서 그 거리는 각각 다를 것이다. 그 거리를 어떻게 계산하느냐는 주관적이다. 그 주관에 대하여 상대방은 또, 다른 거리를 생각할 것이다. 그 거리가 상이할 때 둘 사이의 거리는 겹쳐지고 비켜나서 아득하다. 서로 다른 꿈을 꾸면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의사소통 수단으로서 말을 할 수 있도록 신이 배려했지만 말은 단순히 의식을 대변하는 소리일 뿐이며 그 소리조차 그 사람의 생각을 온전하게 대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생각이 소리로서 뱉어내려는 말을 다른 생각이 가로막고 말로서 소리 내지 못하게 할 경우도 있을 것이고 의식에 반하여 제멋대로 흘러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제멋대로인 말도 그 사람의 의식에 새겨져 있는 정리되지 않은 말인 것은 분명할 것이다.
얼핏 책의 제목에서도 그런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도 있다. 냉정을 잃지 마라, 혹은 열정을 가지라고 하는 말들을 들을 때는 그 냉정의 무게와 열정의 온도는 피부로 느껴지는 것 같지만 냉정과 열정사이라고 할 때 그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 아득하여 차라리 혼란스럽다. 이처럼 거리라는 것은 주관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은 모양이다.
가족간의 잴 수 없는 거리도 있다. 아들이 군 입대를 한 경우다. 아들은 청춘의 절정기에서 집에 붙어 있을 시간이 없다. 바깥으로만 싸돌아다니는 것이 직업인 것처럼 얼굴 볼 시간도 없다. 그런 아들이 영장을 받고 군 입대를 한다. 아들이 입고 간 옷과 신발이 우편으로 도착하고 얼마 후 부모님 전 상서가 도착한다. 갑자기 효자가 된 아들을 서면으로 만날 수 있다. 그동안 아들이 쓰는 필체도 몰랐었는데 아들이 직접 쓴 글씨가 우편으로 날아온 것이다. 아들이 있는 군부대는 아득히 멀어서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지만 그 거리는 편지 한 통으로 인하여 사뭇 가깝게 다가온다. 그리고 편지 속에 들어있는 아들은 벌써 마음속으로 들어와 버린 상태다. 그 사이에 거리는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제대를 한 아들은 다시 멀어진다.
다시 글로 돌아온다. 내가 쓴 글과 나와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글을 오랫동안 써왔는가, 글을 쓴지 얼마 되지 않았느냐를 거리로 계산한다면 그 거리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모든 글들이 나의 생각과 나의 눈을 통하여 경험하게 된 일들이지만 낯선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심경의 변화 때문일까. 순간순간 변해가는 환경 때문일까. 아무튼 당시의 생각으로 쓴 글이 세월이 많이 지난 후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게 느껴지는 것은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만일 나의 컴퓨터에 저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곳에서 그 글을 보았다면 그 글은 내가 쓴 글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 분명하다. 내가 쓴 글임에도 다가설 수 없는 글. 그 아득한 거리는 도대체 설명할 수 없다.
자로 잴 수도, 시계로 잴 수도 없는 거리는 항상 변화한다. 변화에 즉각 반응하는 일은 쉬우나 그 변화를 멀리서 지켜본다는 것은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거리의 멀고 가까움에 따라 자신에게 다가올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 달라짐의 결과가 본인에게 상당한 손해나 아픔을 주게 된다면 사람들은 바뀐 결과물을 얻기 위하여 분주할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본인의 노력에 의하여 결정되어 진다기 보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인과관계에 의하여 결정지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어쩌면 그 인과관계의 한복판에서 모든 거리를 좁히는 노력을 했다면 결과는 예측될 수도 있겠지만 혼자만 그 속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관계와 관계는 부딪히고 깨어져서 난장판 속에서 사람들은 속수무책이다.
결국 거리의 문제는 스스로 조절해야 한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항상 인내심을 가지고 먼 곳에서 초연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초연함에서 거리는 거리로서가 아니라 생의 과정으로 다가온다. 생은 직선으로 뻗어있는 탄탄대로가 아니다. 때로는 굽어있고 때로는 끊어져 있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서 보면 그것들은 한낱 큰 길 속에 드러나 있는 돌멩이나 웅덩이에 불과하다. 멀리 떨어져서 보면 돌아서 갈 수 있는 길도 보인다. 항상 자식들이 마음대로 안 된다고 불만을 품지만 그들이 가고자 하는 길에 훼방꾼이 되지 말고 초연히 지켜본다면 가장 적당한 거리가 될 것 같다. 모든 것을 정면돌파하지 말고 적당히 떨어져서 본다면 편하게 갈 수 있는 길들이 수없이 보일 것이다. 그 거리가 멀다고 해서 결코 멀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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