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둘레길 걷기
남산 둘레길을 걷기 위해서는 남산천에 걸쳐있는 의병교 너머 충익사를 지나 남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충익사는 1976년 9월 14일 대통령의 의병전승지 성역화사업 지시로 1977년 10월 5일 정화사업에 착공했으며 1978년 12월 22일 고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을 개최했다.
의병의 발상지인 의령은 지난 1971년 11월 17일 의병기념사업회를 조직하여 국회와 청와대에 의병의 날 제정을 청원하였으며 1972년 4월 22일에 의병의 날 제정을 염원하는 제1회 의병제전 행사를 개최하는 것을 시작으로 2010년까지 38회 의병제전을 개최했다.
2002년부터 의령군민의 염원을 앞장 세워 의병기념일 제정을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이 있었고, 이후 국가기념일 제정의 타당성 검토, 국회 심의 등을 거쳐 2010년 5월 25일, 6월 1일을 국가기념일로 하는 의병의 날을 제정․공포하게 되었다. 기념일을 정하는 과정은 지난했다. 무려 39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군민들의 염원은 지속되었고 그 염원이 비로소 현실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동안 충익사를 둘러싸고 있는 돌담길은 덕수궁의 돌담길처럼 의령인들의 가슴에 위안으로 남아있었는지 모르겠다.
충익사 돌담길을 따라 걷다가 수월사로 향하는 산길에 접어들면 가파른 오르막이 방문객들의 발길을 막아선다. 그것도 잠시, 5분 정도 오르면 완만한 길을 만나게 되고 수월사로 향하는 길은 순탄하다. 수월사를 지나면 동산 모양의 고분군이 나타난다. 의령 중동리 고분군이다. 1997년 12월 31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189호로 지정된 고분군으로 의령읍 남산 정상 서쪽 경사면 660㎡에 일렬로 늘어선 4기의 대형 봉토분이다. 소나무와 잡목으로 우거져 있던 주변이 1993년 건강한 국토가꾸기사업(문화유적 알리기)으로 정비되면서 고분군이 복원되었다. 1, 2, 3호분은 수혈식 석곽묘, 4호분은 횡혈식 석실묘이며, 규모는 1호분이 동서 17m, 남북 21m, 높이 3.6m정도로 대형급이며, 2, 3호분은 1호분과 크기가 비슷하고, 4호분은 약간 작은 편이다. 이곳의 유물은 도굴로 인해 대부분 유실되었으며, 잔존유물은 토기 몇 점과 철기편 몇 점에 불과하다. 다행히 봉분에 포함되어 만들어진 1호분에서 일부의 토기들이 출토되었는데, 이들을 통해 본 고분군은 6세기 전엽에서 중엽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의령군 홈페이지 문화관광 편 참조)
고분군을 지나 잠시 걷다보면 왼쪽으로 새로 난 길이 보인다. 남산 둘레길의 시작이다. 새로 난 길은 신작로처럼 펼쳐진다. 봄이면 둘레길을 둘러싼 산의 속살은 진달래 분홍꽃빛으로 물들어 황홀경을 이룬다. 하늘을 받치고 있는 소나무는 사람이 가는 길을 따라 나서고 숲길은 솔향을 은은하게 풍기며 한적한 산길로 사람들을 안내한다. 봄을 맞는 연분홍 꽃잎은 너무 맑아서 투명하기까지 하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화면은 온통 분홍빛으로 물든다.
둘레길을 걷다보면 의령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옛날 초등학생들은 자금처럼 컴퓨터가 없는 시절이라 학교를 나서면 남산을 찾는 것이 일이라 남산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고, 없는 길도 만들어서 다니곤 했다. 겨울이면 토끼몰이를 한답시고 남산을 종횡무진 뛰어다녔지만 지금 생각하면 토끼를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남산은 놀이기구가 없던 시절 초등학생들이 찾아가기 좋은 그런 장소였던 것이다. 그만큼 남산은 의령사람들이 마음의 위안을 받는 장소이자 휴식처였던 것이다.
길을 따라 잠시 가다보면 대밭이 나온다. 대밭을 가로질러 길을 만들었다. 어린 시절에는 대밭을 수직으로 뚫고 내려오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뱀도 많았을 텐데 생각 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뱀에게도 물리지 않았었나보다. 지금은 그 당시보다 대숲이 짙어져서 가로질러 내려갈 엄두를 못 낸다. 대숲에는 항상 서늘한 바람이 있다. 그 바람은 어쩌면 대숲에서 스스로 생기는 것이어서 주변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같은 바람이 불어도 대밭을 통해서 나오는 바람은 항상 서늘하다. 혼자서 걸어가면 등이 오싹한 느낌이 든다. 그것은 바로 대숲만이 불어내는 숨결일 것이다. 밀집해 있는 대나무들은 서로 부대껴서 제 색깔을 내지 못하고 희뿌옇게 흐려져 있다. 대나무 숲을 잘 가꾸면 좋은 휴식처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서늘한 대밭길을 지나면 인공으로 만든 다리가 나온다. 둘레길에는 다리를 총 여섯 개를 만들었는데 대밭을 지나 만나는 다리가 둘레길에서 처음 만나는 다리다.
세 번째 다리를 지나면 사거리를 만날 수 있다. 위로 올라가는 오른쪽 길은 체육공원 쪽으로 가고, 왼쪽으로 내려가면 구룡마을이 나온다. 곧장 앞으로 둘레길은 이어져있다. 산의 뒤쪽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참나무가 늘어서 있고 약 15년 전 산불로 인하여 새로 조림한 곳에는 잣나무가 들어 서 있다. 지나가는 길에는 길 쪽으로 반쯤 누운 소나무도 보이고, 가끔 길섶에는 다람쥐가 철지난 도토리를 찾느라 두리번거린다.
둘레길 공사의 마지막 부분에 도달하면 오른쪽으로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 나 있다. 둘레길의 마지막 부분은 이미 개설된 임도가 만나게 되는데 임도를 따라 얼마간 걸으면 다시 정상으로 향하는 길을 만날 수 있다. 일반 도로와는 달리 비포장도로로 차량 통행이 거의 없어서 한적한 옛길을 걷는 기분이다. 임도를 걷다보면 1998년에 개봉한 이광모 감독의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마지막 부분 촬영지였던 궁류 벽계의 임도가 떠오른다. 대숲 사이로 난 길은 강물처럼 굽이쳐서 흘러간다. 임도를 따라 계속 가면 임도가 끝나는 곳과 연결된 산길을 넘어 의령읍 중리에 있는 홍의수련원과 연결된다. 거기서 다시 돌아오는 길은 하천과 연결되어 싱그러운 물소리와 함께 걸을 수 있다.
임도를 따라 대숲 사이를 걸으면 옛날 완행버스가 다니던 길처럼 그 옛날 아련한 추억을 상기시켜 준다. 길에서 쳐다보면 저 멀리 남강이 흘러가고 그 옆으로 친환경 골프장 전경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길을 따라 걷다보면 다시 정상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온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소나무 숲으로 이어지고 계단을 올라가는 길은 가파르고 힘겹다. 정상은 자못 초라한 모습이지만 가파른 길을 올라오며 흘린 땀을 식힐 수 있고, 동동들의 전경을 한 눈에 넣을 수 있다. 잠시 쉬었다가 하산길로 접어들면 다시 소나무 숲길이다. 소나무 숲길은 체육공원까지 이어져 있다. 체육공원은 한가한 오후를 즐기려는 사람들의 휴식처로서 안성맞춤이다. 체육공원에서 얼마간 내려가면 다시 둘레길 입구를 지나 고분군을 지나고 수월사를 지난다. 수월사를 조금 지나면 길 왼쪽으로 난 길을 만날 수 있다. 그 길로 곧장 가면 남산천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를 만난다. 구름다리는 가례쪽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와 벽화산에서 발원하여 내려오는 물줄기가 만나 삼각지를 이루는 “의령의 서천”이라 불리는 곳인데, 서천 발원지에서 솟구치는 용출수 수증기가 서남풍에 따라 흘러간 남산의 동쪽에서 아홉용(龍)이 노닐고 갔다하여 그곳을 구룡마을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구룡마을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만 공업단지의 매연으로 인하여 공기가 좋지 않아 마을 전체를 이주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모양이다.
이곳 구름다리 주탑에서 동쪽으로 남강 정암진 솥바위가 있는데, 솥바위를 중심으로 반경 20리(8km) 안에서 부자가 난다는 전설이 있다. 우리나라 경제인 가운데 삼성그룹 호암 이병철(의령군 정곡면), 효성그룹 만우 조홍제(함안군 군북면), LG그룹 연암 구인회(진주시 지수면)선생이 그 실제인물이다. 이곳 구름다리 주탑에서 해 뜰 무렵 동쪽 솥바위 쪽을 바라보고 기원하면 아홉용(龍)의 기운을 받아 부자가 된다는 전설이 있다. 2005년도에 의령군에서 공원화사업으로 이곳에 구름다리를 건설했다. 출렁이는 구름다리를 지나 서동생활공원으로 가면 게이트볼을 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 주의 피로를 씻기 위한 방법으로 산을 찾는다. 산은 늘 기다려 주고 내려가는 사람을 잡지 않는다. 언제나 그대로인 듯 하지만 산은 늘 변한다. 그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산은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맞는다. 그 사이에 사람들도 한 해에 하나 씩 나이를 먹어간다. 꽃부터 피우는 나무들도 세월 따라 옷을 갈아입는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에 산은 온통 푸른색으로 변해있다. 푸른색으로 찬란한 남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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