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궁류면 일붕사 세계 최대 동굴 법당과 봉황대
한우산을 내려와 궁류로 향하는 국도를 달리다 보면 도로 오른쪽으로 병풍처럼 펼쳐진 멋들어진 바위 절벽이 나타난다. 경남 의령군 궁류면 평촌리에 자리잡고 있는 바위. 한우산의 찰비계곡을 따라 약 4km를 흘러내린 넓은 개울을 쳐다보고 서 있는 이 바위를 봉황대(鳳凰臺)라 부른다. 봉황산 자락을 타고 내려와 하천을 만나 절벽을 이루며 만들어진 봉황대에는 불법(佛法)의 터전이 이룩된 신라시대에 신선들이 하늘에서 봉황을 타고 내려와 약수를 마셨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기상이 천태만상으로 기기절묘한 봉황대가 있는 궁류면은 의령군의 북쪽에 위치하는 면으로서 합천군과 경계를 이루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봉황산에는 봉황의 머리를 닯았다는 봉황암(일명 봉두암)을 비롯하여 봉황단, 봉황루, 석문, 사무천 등의 명소가 즐비하게 늘어 서 있다.
봉황대 콧대바위는 그 옛날 초등학생들의 소풍장소로 많이 이용해 온 곳이다. 콧대 바위 위에 정자가 하나 있는데 사월초파일이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모였으며 봉황대에서 행사가 있는 날이면 주민들이 모여 봉황대 누각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한다. 엄청나게 큰 바위가 위는 크고 아래로 가면서 좁아져서 넘어질 것 같이 위태롭게 보이는 것이 절경을 이루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 절경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봉황산 아래 병풍처럼 둘러 선 봉황대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특이한 절집으로 이어진 광경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일붕사이다. 천혜의 자연요건을 갖춘 봉황산에 소재한 이곳은 대한 불교 일붕선교종 총본산이다. 일반 대웅전과는 달리 동굴 법당이 2개 있는데 세계 최대 동굴법당으로 영국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
서경보 스님의 유품이 마련된 기념관도 있으며, 서기 727년에 신라의 혜초 스님이 창건한 성덕암이 현재 일붕사의 전신이다. 동굴 법당 외에 바위틈에 자리 잡은 나반존자와 병풍바위 밑의 약사여래불, 삼천불의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는 지장전이 있으며, 80여 과의 일붕존자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고 대웅전, 무량수전, 조사전, 약사전, 나한전, 산신각, 종각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일붕(一鵬)은 조계종 불국사 주지를 지내고 동국대 불교대학에 있던 서경보 스님으로 1988년 대한 불교 일붕선교종을 새로 열어 75세의 나이로 초대 종정으로 추대된 바 있고 79세의 나이에 세계불교 법왕청을 만들어 초대법왕이 되었다가 1996년 입적한 분이다. 세계 최대 동굴법당으로 영국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고 하는 동굴법당은 이름 그대로 봉황대 절벽 아래 부분을 넓게 파내어 부처를 모셨다. 모셔진 불상은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는 광명의 부처 비로자나불이다. 지권인은 좌우 엄지를 속에 넣고 다른 네 손가락으로 주먹을 쥔다. 다음에 왼손을 가슴까지 올려 들고 검지를 풀어서 세우며 오른손 주먹 중의 소지로써 왼손 검지의 첫째마디를 잡는다. 그리고 오른손 주먹 속에는 오른손 검지 끝과 왼손 검지 끝을 서로 대는 것인데, 오른손은 불계를, 왼손은 중생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일붕사가 소재한 봉황산은 신라시대 삼국을 통일한 태종무열왕 김춘추 장군의 첫 요새지로서 신라 최고의 군부대였던 봉황대의 이름을 따 봉황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약 1330년 전에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할 때 최고의 격전지였으며 당시 왕군이 봉황대 영역 안에 이 지역의 수많은 영령을 위로하기 위하여 사찰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태종 무열왕의 삼왕자가 계셨던 궁소 봉황대의 사찰에 비로자나불을 안치하여 호국 일념으로 성덕대왕의 덕을 기렸고, 성덕대왕이 봉황대 산세의 빼어남과 선당의 얼이 배인 곳을 천추만대에 전하고자하는 뜻에서 자신의 왕호를 내려 성덕사라는 귀족적 사찰을 지었으니 과히 그 명성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덕사도 조선 성종 25년 국령으로 불사 33개소를 회합함에 따라 그 영향으로 승려를 학대하고 사찰을 파괴함으로서 봉황대 성덕사는 어쩔 수 없이 사찰을 궁류면 운계리 팔사곡 자사산으로 옮겨 정수암으로 그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그 후에 장사곡 출신의 어떤 인물이 들어와 승을 축출하고 암자를 파괴할 때 쇠망치로 수없이 내려쳐도 미륵불상 한 불이 도저히 넘어가지 않는 것을 보고 주승이 범상치 않은 일이라며 그 불상을 업고 합천군 연호사로 도망하였다고 한다. 지금의 연호사 불상 중 일부분이 성덕사 불상이라고 전해져 온다.
정수암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암자로 있다가 1934년 8월 26일 당시의 면장이 산주와 더불어 봉황대의 덕경을 도우기 위하여 벚꽃나무를 심고 관세음보살상과 여래불상을 모셨으나 소실되어 다시 이야용 스님이 법당을 짓고 성덕사라 하였다. 그러나 1984년 10월 24일 누전으로 인하여 또다시 성덕사 법당이 완전 소실되었으나 1986년 7월 26일 사단법인일붕선종회(지금의 재단법인 일붕선교종) 창종주 일붕 서경보 종정 큰스님이 혜운 주지스님을 부임케하여 이 산 이름이 봉황산이라 산의 기가 너무 세어 사찰이 부지 못하니 기를 줄이기 위해 굴을 파야 한다고 하시므로 주지스님이 불사를 이룩, 사찰명을 일붕사로 명명했다. 제1동굴법당인 대웅전은 그 넓이가 1,260㎡에 이르고 높이가 8m로 기네스북에 오른 동굴법당이며, 제2동굴법당인 무량수전도 300㎡에 이른다. 현재는 세계 최대의 동굴법당과 동굴무량수전은 불자들의 소원성취를 위한 기도 도량으로 자리 잡아 하루 평균 2백여 명의 불자들이 방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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