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
혈액 비중검사를 위해 따끔 찌르는 바늘에 깜짝 놀란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조그만 외부 접근에도 충격을 받는다
비중이 낮다고 할까
혈액이 탁하다고 할까
먼 길을 달려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생각했던
모든 일이 물거품이 되는 일이 생길까 싶어
긴장하고 긴장하는 것이다
앞으로 헌혈을 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이라고는 헌혈밖에 없는데
특별한 손재주도 말주변도 없고
도와줄만한 금전적 여유도 없어 오직
할 수 있는 봉사가 헌혈밖에 없어서
헌혈만은 할 수 있는 날까지 하기로 결심했었다
헌혈금지 명령이 내려지면
헌혈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도록
그동안 나를 소홀히 했던 일들
나와의 약속도 지키지 못한 자괴감
이 모든 인생의 실패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를 생각하면서
손가락 끝에 와 닿는 따끔 찌르는 바늘의 감촉에
온 신경이 곤두서는 것이다
오늘 혈액상태가 좋네요! 하는 말에
머리끝까지 치솟았던 긴장이 한꺼번에 내려앉는다
다음 헌혈 때까지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를 만들어가는 나날들은 나를 계속 긴장하게 할 것이고
봉사활동보다는 나를 지키기 위한 방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