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 성석제
마치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이나 천명관의 <고래> 또는 <나의 삼촌 부루스 리>를 읽는 느낌이다. 사람은, 인간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주인공 김만수를 통하여 적나라하게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썰매를 타며 불장난하던 시절에서 월남전을 겪고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하는 한 인간을 통하여 사회를 고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한 사무실에 근무하지만 하루종일 말 한마디 없이 지내는 경우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선가 걸려오는 전화를 붙잡고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옆에 있는 사람, 앞에 있는 사람과는 대화가 없다. 옆에 누가 있는지조차 망각하고 하루를 지내는 모습들이다.
김만수는 어린시절부터 집에서 열심히 일을 하지만 존재감은 거의 없다. 동생으로부터 형 대접을 받지 못했고, 사회라는 큰 괴물에 어설프게 도전했다가 결국 투명인간이 되어 도망가 버린 동생의 아이를 키우지만 아이 역시 난장판이다. 부도난 회사에서 최후의 칠인으로 남아 투쟁하지만 결국 엄두가 나지 않는 빚을 안고 버림받는다. 일곱 명 중의 대장이라는 책임감으로 신문배달, 음식배달, 세차, 폐지줍기, 찜질방 청소 등등 하루 20시간씩 일하면서 악착같이 빚을 갚아나간다. 겨우 숨을 쉴 수 있을 정도가 되자 아내의 신장이 고장 나 버린다. 김만수는 혈액투석 등 병원비 때문에 다시 절망에 빠진다.
동생 석수의 아들이지만 만수의 아들로 살아가는 태석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따돌림 받는다. 지금 이 시대에서 이야기하는 왕따다. 인간이, 그것도 조무래기들이 이렇게 잔인할 수 있는가 생각이 들 정도다. 결코 헤어날 수 없는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투명인간이 되는 길 뿐이다. 태석은 옥상에서 뛰어 내린다. 어쩌면 학교에서의 왕따를 하소연하는 마음에서 키워준 엄마에게 못되게 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그렇게 못되게 굴었던 키워준 엄마에게 자신의 신장을 내준다. 그것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라고 부르면서.
70년대 기계공업고등학교와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가난의 한복판을 통과해 온 사람들은 김만수가 바로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 시대에 있어서 주변에서 볼 수 있었던 가장 평범한 인간상을 책을 통하여 읽음으로써 지나온 날들을 다시 생각해 본다.
어쩌면 스스로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우월하지 못한 자들에게 투명인간이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태석의 아이큐가 165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 학생들이 태석을 따돌리게 되는 이유는 극복할 수 없는 아이큐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그들이 넘어설 수 없는 환경을 무시하고 따돌려버리는 것으로 극복해 나가는 방식일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피지도 못하고 떨어져 버리는 꽃들은 얼마나 많았던 것일까.
그들에 의해서 투명인간이 되어버리는 일도 있지만 나 스스로 그들을 투명인간으로 만들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보기 싫은 사람은 보지 않겠다는 의지가 충만하여 스스로 눈이 머는 사람들이다. 구세군 냄비를 스쳐지나가고 하나만 팔아달라고 사정하는 장애인의 좌판을 무시하고, 어떻게든 부모를 멀리 떠나기 위해 노력하는 자식들. 서울의 신축 아파트에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름을 붙이는 것이 시골에 있는 부모가 찾아오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란 웃지 못할 농담.
어쩌면 왕따와 같은 투명인간보다 타인을 투명인간을 만들어서 자기 눈으로 보지 않겠다는 투명인간 제조기가 더 많지 않을까 생각된다. 하기는 대기업을 이끌어가는 중역들의 눈에 파업을 하는 노동자가 눈에 보이겠는가? 노동자들은 단지, 대기업이 그럴듯하게 서있게 만드는 최소한의 장치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노동자는 단지 노동자일 뿐, 그들 개개인의 이름은 없다. 그들의 가족은 몇이고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은 어떤 것이며 그들이 출퇴근은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단지, 그들은 노동자이기 때문에. 이제 노동조합 간부들조차 투명인간이 되어간다. 어용노조가 되어 자기 앞가림에 바쁜 사람들. 그들도 투명인간이며, 그들의 눈에도 일반 노동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투명인간이다. 우리가 어디에서 누구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하여 문득 궁금증을 느낄 때 우리는 이미 투명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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