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을 쏴라 / 정유정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정유정의 장편소설이다. 운명이 내 삶을 침몰시킬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작가의 말을 생각해 본다.
운명에 맞서 새로운 인생을 향해 끊임없이 시도하는 두 남자의 치열한 정신병원 탈출기를 그린 작품이다.
어린 시절 겪었던 트라우마에 갇혀 자신만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명. 수명은 여덟 살 때 엄마를 잃는다. 그 후 10년 동안 엄마는 가끔 나타났다 병원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수명은 열여덟 살에 엄마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다. 단지 그 사실만을 알고 있으나 그 사실이 누구 때문인지는 기억할 수 없다. 모든 것은 아버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정신적 작용이 아니었는지.
세상과 단절된 곳을 전전하다가 ‘수리 희망병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아내의 병이 자식에게 유전되었을 것이라 생각한 아버지로서의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식을 보호하고 싶은 생각 때문이었는지 유언으로 평생 수리 희망병원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고 죽는다.
망막세포변성증으로 비행을 금지당한 패러글라이더 류승민은 시력을 잃어가는 와중에 아버지의 사망 소식과 아버지가 자신에게 많은 유산을 남겼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한국으로 들어가게 되면 유산 싸움에 휘말리게 될 것이라는 충고를 무시하고 한국으로 들어오지만 방화범으로 몰려 이수명과 같은 날 ‘수리 희망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실명을 하기 전에 마지막 비행을 하고 싶어하는 승민은 계속 탈출을 시도한다. 매번 실패하지만 그 과정에 함께하게 된 수명 또한 승민의 삶 깊은 곳으로 빠져들게 된다. 둘은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통과하여 탈출을 감행한다. 결론은 성공이다. 소설에서는 어디에서도 승민의 소식을 이야기해 주지 않지만 글라이딩에 성공한 것으로 승민의 삶은 성공으로 향했을 것이고, 수민 역시 마지막 심판 위원회의 결정을 얻어 병원 밖으로 나오게 된다.
사실 우리는 자기 합리화에 깊이 빠져 있다. 진정 이 세상을 올바르게 직시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하는 질문을 우리들 자신에게 던져주는 책이라는 생각이다. 수많은 거짓말과 계산적인 말. 자신의 길을 방해하는 그 무엇도 용서할 수 없어 과감하게 자신마저도 속일 수 있는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소설이라는 생각이다. 책읽기에 빠져서 엄마의 방에 자해도구를 두면 안 된다는 생각을 잠시 망각한 틈에 가위와 열쇠를 그대로 두고 내려와 계속 책에 빠져버렸던 그날. 그날은 세상에서 없어져야만 하는 날이었고, 그날을 은폐하기 위해 인생을 송두리째 버려야 했던 날이었다.
정신병원에서 생활하는데 적응하기 위한 ECT를 받게 되면서 그 전기적 충격에 의해 잃어버렸던 과거를 기억해 낸다. 결국 엄마를 죽게 만든 것은 그토록 원망했던 아버지가 아니라 자신이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 사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숨기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하지만 끝내 밝혀지는 사실들. 그 사실 앞에서 경악했던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알지 못하게 도움을 받는 일도 많은 것 같다. 소설은 승민과 수명의 탈출을 돕기 위해 그 둘에게 신경 쓰지 못하도록 엉뚱한 일을 벌이는 소동들을 열거한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 정신병원에 있는 사람들이기에 더 진하게 진심이 묻어나오는 것 같다. 가끔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져야겠다. 하나의 잘못을 가리기 위해 인생을 통째로 덮어버리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겠다.
운명이 내 삶을 침몰시킬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침몰로부터 탈출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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