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굴산 둘레길을 걸으며
걷기에 대한 열풍이 제주도 올레길에서부터 시작되어 지리산으로, 그리고 의령의 자굴산을 지나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자굴산은 해발 897m로 인근 지역의 산에 비해 높은 편에 속한다. 자굴산 둘레길은 2010년도에 개통되었고 내조에서 오르는 코스를 힘겨워 하던 사람들이 둘레길을 찾으면서 예전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자굴산을 찾고 있다.
자굴산 둘레길은 쇠목재에서 정상으로 올라가 동쪽으로 하산하여 베틀바위를 지나서 연결되는 둘레길로 접어들어 절터샘과 자굴티재를 지나 다시 쇠목재로 돌아오는 방법이 있고, 쇠목재에서 곧장 둘레길로 접어들어 자굴산의 뒤쪽을 걸으면서 절터샘과 베틀바위를 지나 정상으로 향하거나, 내조에서 올라가 절터샘에서 베틀바위 쪽으로 돌아 정상으로 간 다음 쇠목재 방향으로 내려오다가 다시 둘레길을 따라 절터샘에 도착하여 내조로 내려오는 방법이 있다. 걷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편한 길을 택할 수 있고 내조에서부터 가파르게 치솟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을을 불러들여 가을색으로 물들어가는 자굴산 쇠목재에 도착하면 정상까지 가는 길은 가을꽃들로 가득하다. 쑥부쟁이, 구절초 등등 온통 가을꽃들이 피어나 길목에서 산을 찾는 사람들을 반긴다. 색깔로 따진다면 휜색은 구절초일 것이고 보라색은 쑥부쟁이일 것이다. 꽃이 피었기 때문에 가을인 것인지, 가을이 되었기 때문에 꽃이 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가을꽃을 보면서 사람들은 가을을 느낀다. 그 모든 것은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라 꽃을 통하여 계절을 맞이한다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해본다.
쇠목재에서 곧장 정상으로 향하는 길을 택하여 걷다가 숨을 돌리려 뒤를 돌아보면 군데군데 주황색으로 물든 한우산과 누렇게 익어가는 들녘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산으로 찾아온 가을과 동행하며 30분 남짓 걸어가면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 가파른 길은 몸속의 모든 기능을 활성화시켜서 속도를 높인 자동차의 엔진처럼 심장은 가쁘게 뛰고 숨은 턱까지 차오른다.
정상에서 베틀바위 쪽으로 걸어가면 가을바람에 흔들리며 푸른 하늘을 수놓는 억새가 사람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푸른 하늘에 흔들리는 억새 한 송이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작품이 된다. 흔들리는 모습을 카메라로 담을 수는 없지만 햇빛은 억새의 잎 사이로 적당하게 스며들어 하늘빛과 조화를 이루고 그 위로 드러난 잎의 색깔은 햇살에 눈부시다. 산들은 초록에서 하늘색으로 물들어가고 먼 산은 기어이 하늘과 맞닿아 자기 색깔을 버리고 하늘과 동화된다. 물이 흘러가듯 산에서부터 하늘까지 이어진 배경 속에서 은빛으로 하늘거리는 억새는 가을의 절정 속에서 찬란하다.
달분재로 가기 전에 오른쪽으로 새로 난 길이 보인다. 둘레길의 시작이다. 신작로로 접어들면 그동안 가려져서 보지 못했던 자굴산의 속살을 볼 수 있다. 먼 옛날 땔감을 구하기 위해 다녔던 길을 다시 정비하고 끊어진 길을 이어 새롭게 만든 길이다. 길을 따라 이어지는 바위들은 자굴산의 또 다른 풍경으로 와 닿는다. 바위의 형상들이 하나같이 새롭고 예사롭지 않다. 전망대까지 가는 길은 대부분 내리막이라 발걸음은 가볍다. 군데군데 낙엽이 쌓인 곳에서는 발이 파묻힐 정도다. 발에 채이는 낙엽은 산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음악으로 다가온다. 전망대에 도착하면 산의 이쪽과 저쪽을 함께 볼 수 있고 지친 발걸음을 내려놓고 쉬어가기에 좋다.
잠시 쉬었다가 절터샘 쪽으로 향한다. 절터샘에 도착하여 바람덤 쪽으로 올려다보면 두 사람이 껴안고 있는 듯한 형상을 한 바위를 볼 수 있다. 그 바위를 사랑바위라고 한단다. 자굴산에 자주 오는 사람들에게 사랑바위에 얽힌 전설을 들을 수 있다. 그것이 구전되어 오는 전설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니 그렇게 보인다. 자굴산 금지샘의 음기와 지리산 천왕봉의 양기가 충돌하여 사랑바위가 생겼다는 것인데 금지샘의 음기가 얼마나 세었으면 지리산의 양기를 정면으로 맞받고도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을까. 실제로 금지샘에 가까이 다가가보면 서늘한 음기를 느낄 수 있다. 그 깊숙한 곳은 음산하여 가까이 접근하기 어렵다. 간혹 사람들이 다녀갔는지 촛농을 바닥에 깔고 제 몸을 타 태우지 못한 채 구부러져 나뒹굴고 있는 초를 볼 수 있는데 무엇을 위해 빌었는지 알 수 없는 것이고 다만 산 속에서 저런 행동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산불의 위험도 있을 것이고,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행동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금지샘에 얽힌 이야기는 이렇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사가 침입하여 이곳에서 말에게 물을 먹이려고 하자 갑자기 물이 말라버렸다는 것이다. 아무리 퍼내어도 마르지 않던 금지샘의 물이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말라버렸다는 것은 샘물도 적군의 말에게 물을 줄 수 없다는 무언의 항쟁을 했다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청의 군사들은 자굴산에 진을 치지 못하고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또 굴의 깊이와 관련해서는, 어떤 사람이 명주실 끝에 돌을 매달아 실 꾸러미를 풀어 넣어서 굴의 깊이를 재어 보았더니 실 꾸러미 3개가 풀리고서야 겨우 샘의 바닥에 닿았는데 그 끝이 수십 리 밖인 정암진에서 나왔다는 말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굴 속에 연기를 피웠더니 그 연기가 정암진의 솥바위가 있는 곳에서 나오더라는 전설도 전해진다.
그리고 이곳의 풍광이 얼마나 좋았냐고 하면, 남명 조식 선생이 자굴산의 경관에 홀려 세월 가는 줄 모르고 풍류를 즐겼다는 명경대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남명이 자굴산 명경대에서 글을 읽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정작 명경대의 위치는 지금껏 고증된 자료는 없다고 하니 아쉽다.
다시 발길을 돌려 자굴티재 방향으로 걷는다. 오솔길은 반듯하게 나아간다. 얼마를 걸어가면 자굴티재를 만나게 되고 오솔길을 따라 계속 나아가면 자굴산의 뒤쪽으로 돌아들어간다. 뒤쪽에서 보는 풍경은 자굴산의 앞에서 보는 풍경보다 훨씬 좋아 보인다. 그동안 내조에서 올라오는 길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푸른 하늘과 단풍과 알맞게 조화를 이룬 바위들이 우뚝우뚝 솟아있는 모습은 가히 이국적인 풍광으로 다가온다.
무너져 내린 듯 기하학적으로 생긴 돌들이 개울을 이루어 흘리내리는 듯 보이는 곳 너드렁. 너드렁을 가로질러 길이 나 있는데 돌길에서 고개를 들어 산을 올려다보면 바위 세 개가 솟아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얼마간 거리를 두고 나란히 솟아 있는 바위를 보니 장난기가 발동한다. 바위에 대한 전설을 만들어 본다.
아주 오랜 옛날, 자굴산 아랫마을에는 두 형제가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이웃마을에 아주 어여쁜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두 형제가 모두 이 처녀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처녀 또한 두 형제를 한 치의 기울음 없이 좋아했다. 일부일처제를 법으로 정한 시절이라 처녀는 두 형제를, 두 형제는 한 처녀를 동시에 얻을 수는 없었다. 형은 장사를 위해 먼 곳으로 한 달씩 다녀와 한 달을 쉬고 다시 한 달 동안 장사를 나가곤 했고, 동생은 농사를 짓기 때문에 항상 집에 머물렀다. 궁리를 하던 끝에 두 형제는 아무도 모르게 이 처녀와 합동결혼식을 올린다. 형이 장사를 하러 나가면 동생이 이 처녀와 함께 살고, 형이 돌아오면 형은 이 처녀와 함께 살았다. 장사를 떠나면 돌봐 줄 사람이 있어서 든든하고 동생과 함께 농사일을 거들어 주니 좋고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런 생활이 영원히 숨겨질 수는 없었다. 이를 알아차린 세 사람은 아무도 몰래 자굴산으로 들어가 산나물과 약초를 캐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도망간 세 사람을 찾아 자굴산으로 들이닥친다. 인륜을 저버린 죄를 물어 세 사람을 덕석에 말아 때려죽이고 만다. 그러자 하늘도 노하고 산도 노했는지 천둥이 치고 폭풍우가 몰아쳐 산으로 들어 온 마을 사람들을 모두 쓸어내려가 돌무더기에 처박아 버렸다. 살아있는 사람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때까지 폭풍우가 치던 중 바위 세 개가 솟아오르니 바로 두 형제와 여인이 바위로 환생하여 지금까지도 오순도순 사랑을 나누고 있다는 이야기. 제일 오른쪽이 처녀 바위고, 옆의 바위 두 개가 형제 바위다. 왼쪽이 형이고 가운데가 동생이다.
어쩌면 그 옛날 사람들도 길을 걸으면서 이런 생각을 지어내고 그것이 진짜인 냥 이야기를 주고받던 것들이 구전되어 내려와 전설이 된 것은 아닐까. 전설 속에서는 귀신도 살고 구미호도 살아간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귀신도 구미호도 아무것도 없지만 그 옛날 긴긴 겨울밤을 나기 위해서는 꼭 필요했던 이야기들이 아니었을까? 그 전설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각색이 되고 살이 붙어서 제대로 된 문장으로 체계를 잡아 소설이 되고 시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바위를 지나 얼마간 걸어가면 둘레길은 끝이 난다. 걷는다는 것은 건강에 좋고 특히 산길을 걷는다는 것은 자연과 함께 할 수 있어 정신건강에 좋다. 둘레길과 같이 험하지 않은 길은 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산에 대한 흥미를 불어넣기에 안성맞춤이다. 반면에 산이 훼손된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는 없다. 각 지역마다 각각의 길을 만들어 가는데 자연훼손을 최소한으로 했으면 좋겠고, 가장 좋은 방법은 기존의 등산로를 이용하도록 하고 둘레길은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만들어진 길을 다시 되돌리기는 역부족이고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깨끗하게 사용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길을 만드는 것과 만들지 않는 것은 모두 사람들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인데 만들어진 길은 생각이 현실로 반영된 것이다. 생각 속에서만 있을 때는 어떤 것도 현실이 되지 않는다. 생각들은 서로 부딪히고 깨지고 다시 합류한다. 그 일련의 시간들은 많은 세월을 요구하지만 그 시간들도 사람들이 함께해야할 시간이라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부딪혀서 깨어진 생각들은 널브러져 있을 것이고 널브러져 있는 동안 다른 생각들은 그들만의 생각들을 만들어 내어 실행에 옮긴다. 널브러져 있던 생각이 정신을 수습하고 일어나면 다시 부딪힐 것이고 세상은 또 다른 길을 갈 것이다. 옳은 길이 어떤 길인지 알 수 없지만 길은 어디론지 갈 것이다. 그 길이 싫을 때는 다른 길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고 돌아서 가는 길은 지루하다. 그 지루한 길에서 나만의 길을 찾았으면 좋겠다.
의령문학 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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