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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바다와 함께 걷는 길 - 저도 용두산 비치로드

by 1004들꽃 2011. 10. 5.

바다와 함께 걷는 길

 - 저도 용두산 비치로드를 찾아서

 

 


산길을 걷다보면 뭔가 채워지지 않는 것. 허전함이 있다. 먼 곳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은 이내 산들로 둘러싸인 곳에서 멈춘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꾸 높은 곳으로 올라가 먼 곳을 바라보는 모양이다. 산들은 구름을 타고 두둥실 흘러서 어느새 저 먼 곳의 하늘색과 같아져서 소멸한다. 눈에서 벗어나 소멸하는 것들은 내 시야에서일 뿐 그곳에는 산의 형상 그대로 존재할 것이다.


꽉 찼다는 느낌보다 비어있음을 느끼고 싶을 때는 바다로 간다. 바다는 수평선을 끼고 더 먼 곳을 보여주지 않는다. 어쩌면 수평선 너머에 있는 것들을 보고 싶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보이지 않는 곳에 대한 두려움. 그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사람들은 배를 만들어 먼 바다를 항해했다. 그래서 새로운 땅을 찾기도 하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길이 되기도 했다. 바다는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그 바라보는 것으로 답답한 가슴을 달래기에 충분하니까.


바다와 함께 길을 걷기 위해서 길을 나섰다. 연륙교가 생기면서 섬이 아닌 섬으로 되어버린 저도. 마산 합포구 구산면에 있는 저도에는 해발 202.7m의 용두산이 있다. 저도는 산보다는 일명 콰이강의 다리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했었다. 의령에서 진동을 거쳐 구산면에 있는 저도로 가면 철제로 된 연륙교와 새로 놓은 신연육교가 있다. 신연육교는 괭이갈매기를 형상화 하여 2004년도에 개통되었다. 사람들만 다닐 수 있도록 1987년에 개통한 연륙교는 안전상의 문제로 사람들만 다닐 수 있도록 했고 신연육교가 개통되면서 자동차도 왕복할 수 있게 되었다. 물류 이동이 원활하게 되자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저도의 삶도 그만큼 달라졌다.


철제 연육교를 지나다보면 연인들의 사랑을 자물쇠에 채워 놓으려는 듯 연인들의 다짐을 적은 자물쇠들이 줄지어 매달려있고 철제다리의 난간 빈틈마다 하트표시가 그려진다. 자물쇠에 새겨져 있는 글을 읽어 보면 그 옛날 가슴 설레던 날들이 주마간산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살아있는 동안 내 가슴에 담아 둘거야" 홀로 외로이 걸려 있기도 하고 팔짱을 낀 것처럼 자물쇠에 자물쇠를 달아놓은 것도 있다. 연인들의 다짐이 영원하기를 기원해 본다.


다리를 지나면 포장도로로 접어들고 몇몇 식당을 지나면 산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용두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가파르다. 곧장 치고 올라가 돌아보면 연육교 전경을 볼 수 있다. 바다에는 하얀 점들을 이어 놓은 듯 오밀조밀한 양식장의 풍경이 한가롭다.


정상에서 내려가면 비치로드로 이어진다. 바다를 끼고 돌기 때문에 육지의 산을 걷는 길과는 사뭇 다르다. 바다는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이고 하늘과 바다는 수평선에서 만나고 헤어진다. 먼 바다에는 구름이 바다 속으로 침몰하고 바람을 타고 떠오른다.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바다는 물비늘을 만들고 물비늘의 골마다 햇살이 내려앉아 사람들을 따라 이동한다. 소나무 사이로 비치는 바다는 한 폭의 수채화가 되고 사람들도 지나가면서 수채화의 배경이 된다. 제각각의 사람들이 제각각의 모습으로 지나가고 수채화는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바다체험장을 지나면 사각정자에 이르고 제2전망대를 거쳐 제1전망대로 간다. 곧장 내려가면 마을로 내려간다.


이정표를 따라 등산로 방향으로 들어서면 산길은 소나무 사이로 나 있어 향기롭다. 섬길이기 때문에 양쪽으로 바다가 보인다. 깊은 숲으로 들어가면 잘 보이지 않지만 이내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나오게 된다. 숲속에서 보이는 푸른색은 바다인지 하늘인지 착각하게 만들고 혼자서 걷는 길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발길을 재촉하게 만든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맑은 바닷물이 해안에 부딪히고 햇살은 부딪히는 물 속으로 깊이 파고든다. 투명한 물 속에서 햇살은 바닥까지 가 닿고 사람들의 마음까지 바다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먼 바다는 얼음이라도 언 것처럼 평온했고 바다 위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내는 모습은 너그러웠다. 멀리 정박해 있는 배들은 움직일 줄 모르고 하늘에 올라있는 구름은 긴 띠를 형성해 조화롭다.


제2전망대를 지나면 사각정자가 나올 때까지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섬에 있는 오르막과 내리막은 섬 속에 있기 때문에 거리에 있어서 서로 비기는 셈이다. 내려온 만큼 다시 올라가야 하는 것이라 내리막을 걸은 만큼 오락막을 감당해야만 한다. 군데군데 소원성취탑이 쌓여있다. 어느 산을 가든지 규모는 서로 다르지만 소원성취탑은 있기 마련이다. 다 비우기 위해 산에 와서 소원을 빌고 가는 것도 그렇지만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하나의 풍경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면서 걷는 길은 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흥미로울 것이라 생각된다. 거기에 바다까지 덤으로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비라도 내린다면 그 풍경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연육교가 개통되기 전에 섬사람들은 배를 타고 뭍으로 나왔다. 삶을 이고지고 뭍으로 통하는 길은 뱃길이 전부였다. 다리가 놓여지면서 섬사람들의 삶은 계속 변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변해갈 것이다. 섬사람들에게 있어서 다리는 단순히 이동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삶의 통로로 작용할 것이다. 섬사람들뿐만 아니라 뭍에서 사는 사람들도 섬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삶을 이어간다. 서로 공생하면서 변해가는 것이다. 뭍에서 오는 사람들을 받아내기 위해서 비치로드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비치로드를 걷기 위해 저도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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