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말
평소에 말을 하면서 그것이 욕이 되는가, 아니면 상대방의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가를 생각하면서 하지는 않는 것 같다. 말로서 상대방의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는 것은 배려다. 욕을 듣게 되면 분노가 생성되고 칭찬을 듣게 되면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한다.
한글날 특집으로 방송 프로그램에서 실험을 한 것이 주목을 끈다. 일전에 물로 실험을 한 예도 있지만 이번에는 똑같은 상황에서 밥을 유리병에 넣어 한 달 동안 실험했다. 한쪽은 “고맙습니다”라는 병이고 한쪽은 “짜증나”라는 병이다. 각각의 병에 헤드폰을 씌우고 “고맙습니다”병은 고맙습니다와 같은 칭찬의 말을 들려주고 “짜증나”병에는 짜증난다는 등 욕설과 같은 거친 말을 들려주었다. 한 달 후 “고맙습니다”병에 들어 있는 밥은 누룩냄새가 나는 하얀 곰팡이가 슬었고, “짜증나”병에 들어 있는 밥에는 푸르고 검은색을 띠는 곰팡이가 슬었다는 결과다.
요즈음 대중매체가 전달하는 내용들을 보면서 차라리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아는 것도 좋겠지만 알아서 병이 되는 것도 없지 않을 것이다. 대중매체로부터 습득하는 정보는 아름답고 좋은 정보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신문지면이나 TV방송 뉴스를 보면 정치인들이 서로 싸우는 장면이나 각종 사건사고 등이 주류를 이룬다. 뉴스를 보는 사람들에게 공개적인 마당에서 무차별 공격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악한 말이나 악한 정보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생기는 분노나 비참함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실험에서 사용되었던 밥의 상태를 보더라도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서로 비방하는 내용에 더 흥미를 느낀다. 그것은 곧 폭발 없이 불특정 다수에게 가하는 무차별공격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대화의 과정에서 어려운 용어를 쓰게 될 때 그것을 잘 모르는 사람은 금방 싫증을 느끼게 된다. 어려운 단어나 용어, 외국어 등을 쓰면 유식한 것처럼 보이게 된다고 오해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영국의 맨체스터에서는 “어려운 영어를 버리고 쉬운 영어쓰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이 운동을 하게 된 경위는 1970년대 어느 겨울, 난방비 신청서를 작성하지 못하여 노부부가 얼어 죽고 말았는데 이를 계기로 쉬운 말과 글을 쓰자는 운동이 퍼지게 되었고 쉬운 글을 쓰면서 정책을 홍보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이 줄어 경제적 효과로는 500만 파운드의 정부예산이 절감되었다고 한다.(MBC 한글날 특집 다큐멘터리 “말의 힘”)
말(글)은 수평적 상호 소통을 위한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라고 하는데 그 위대한 발명품을 공격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권위주의적인 사회는 수직적인 소통을 원칙으로 한다. 수직적인 말은 곧 명령이요, 듣는 사람에게 무기로 작용한다. 무기에 공격을 당한 사람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장구, 북, 징, 꽹과리를 주악기로 하여 연주하는 우리 고유의 놀이를 사물놀이라고 한다. 하나의 악기라도 어긋나게 되면 듣는 사람들의 귀에는 불협화음이 들리게 된다. 사물놀이는 어쩌면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끼리의 소통이고 대화로 이루어진다. 장구의 리듬을 받아 꽹과리를 치고 꽹과리의 리듬을 하나의 단위로 묶어주는 징이 있고 부드러운 소리로 전체를 아우르는 북이 있다. 정해진 장단에 따라서 일률적인 소리를 내다가 일순간 엇박자로 관객들을 긴장시키기도 한다. 사물놀이는 흥겨운 리듬으로 서로의 흥을 이끌어내고 끌어낸 흥을 다른 악기에 전해준다. 흥과 흥이 겹쳐져서 더욱 신명나는 음이 나오고 절정에 이르면 신이 들린 듯 연주하는 사람과 악기의 소리는 하나가 되고 듣는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기분이 좋아진다는 의미다. 이렇듯 좋은 말과 좋은 소리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삶에 활력을 준다. 좋은 연주를 들었을 때 그 여운은 오랫동안 지속된다.
거친 말을 할 때 그 거친 말이 상대방에게만 가는 것은 아니다. 정작 그 거친 말은 자신에게 더욱 또렷하게 각인된다. 자기가 한 말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귀에 잘 들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을 뱉어내기 위해서 한마디 한마디에 의미와 강약의 조절까지도 생각해서 만들어진 말이 비로소 입을 통하여 나오기 때문에 그 과정을 모두 겪은 자신은 상대방에 비하여 더욱 강한 내상을 입을 것임에 틀림없다. 결국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 한 말이 자신을 더 망치게 하는 꼴이다.
정치인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이야기가 인터넷을 떠돌고 있는데 그 중 뇌의 색깔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흰색에서 회색을 거쳐 검은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뇌를 판매하는 노점상에게 뇌의 색깔에 따른 직업을 물어보니 가장 검은색은 연구에 몰두하는 학자들의 뇌이고 흰색은 아무 생각 없는 정치인의 뇌라는 것이다. 말과 관련하여 생각해보면 거꾸로 되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다. 비방을 주고받는 것이 일상인 정치인들은 몸 자체가 썩어가고 있으니 뇌 또한 검은 곰팡이가 피어있지 않을까.
말을 하는 것도 그렇지만 글쓰기 또한 다르지 않다. 의사를 전달하는 입장에서 말을 하는 것과 글을 쓰는 행위는 똑같다. 글을 읽어서 마음에 새기고 말을 들어서 마음에 새기기 때문에 읽기와 듣기 또한 똑같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자세는 쉬운 글을 써야한다는 것이다. 읽기와 듣기가 쉬워야 한다는 것이다. 어렵게 써서 읽는 사람들의 마음에 가 닿지 않는다면 그 글은 쓸데없는 글이다. 어쩌면 쉽게 쓰기가 더 어려운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왕에 글을 써서 독자에게 다가가고자 한다면 쉽게 쓰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글 쓰는 사람들의 의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쉬우면서도 가슴에 와 닿은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글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 우리말, 우리글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잊혀져가는 우리말, 우리글을 기억 속에서 끌어내야 할 것이다. 산은 쉽게 사계절을 가는데 사람들은 자꾸 어렵게 살아가려 한다.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좀, 느리게 살아갈 수 없을까 (0) | 2012.09.19 |
---|---|
백제 고도 부여를 찾아서 (0) | 2012.06.14 |
자굴산 둘레길을 걸으며 (0) | 2011.10.28 |
바다와 함께 걷는 길 - 저도 용두산 비치로드 (0) | 2011.10.05 |
가을단상 (0) | 2011.09.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