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짐에 대하여
언젠가 전화번호를 지우면서도
망설이지 않았을 때와 같이
그렇게 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문득 낯선 얼굴들이 많아질 때도
그들에게 내가 낯선 얼굴이 되었을 거라고
먼 하늘을 보며 웃었지
웃는 것만이 잊는 것은 아니라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눈물 흘리기도 했었지
잊은 척 모르는 척
나를 잊게 만드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움직이지 않는 내 팔다리에 묻은 추억을 떨치며
하나씩 하나씩 벗어가는 것
손바닥을 촉촉이 적시던 초조함
등줄기를 휘감던 서늘함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순간들에 대하여
기억을 되살릴 그림자마저 사라져버리는
그런 잊혀짐에 대하여